대평원농상(주)에서(창업1996-현재)

대평원’이 잘나가니, ‘대평원’ 주변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소개해보고자 한다. 세상일 참 재미있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5. 26. 14:40

/‘대평원’이 잘나가니, ‘대평원’ 주변에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소개해보고자 한다. 세상일 참 재미있다.

(이번 장에는 간단하게 '요약'하는 수준에서 정리하고 , 다음 장부터는,  일어났던 일들을 생각나는대로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1.종합상사들이 Mr.Park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조사하고 직원들을 회유하기도 하고, 또 ‘입찰담합’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2.입찰담합이 되지않자, 입찰보증금5%/계약이행보증금10%, 몇억?을 국내대리인이 납부하게 입찰조건을 바꾸어버렸다..‘대평원’을 죽이려 하였다.

3.해외법인을 동원하여 FOB로 수단참깨를 선구매하고 한국산공업제품과 물물교환을 시도하였다....

4.내친구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돈빌려달라고 줄을 섰다 누구는 떼어먹고 누구는 불평하였다.

5.오피스테를 샀는데 부도가 나고말았다

6.저축은행(가락오피스텔 건물주) 전환사채에 투자하였는데 또 부도가 났다

7.주식투자를 하였는데 간신히 본전을 하였다

8.빌딩을 하나 사려하였는데 ‘식자우환’으로 사지못하고 대신 빌라를 사게되었다.

9.입찰비즈니스는 최고였지만 재태크는 빵점, 사무실을 10여년간 임대사용하여 빌딩을 샀어야하는데...

10.국내상인들이 ‘대평원’에게 은밀한 ‘유혹’을 하였다. 그들은 추석등 성수기 국내참깨시장가격을 조작하려고, 참깨선적지연을 요구하며 거금을 내걸었다. 그러나 직원들은 거금을 챙기자하엿지만 나는 고민끝에 거절하기로 하였다. 공짜는 없고 그들의 마수에 한번 걸리면 결국 헤어날 수 없다 판단하였다. 내가 오늘까지 살아있는 원칙이요 상식이었다.

 

‘대평원’이 참깨시장의 ‘떠오르는 태양’, ‘뉴스타’ ‘최강자’가 되자, 국내상사들은 ‘대평원’의 움직임에 촉각을 세웠다. Mr.Park의 동정이 그들의 주요관심사가 되었던 것은 물론, 우리직원들에게도 ‘수단산참깨에 대한 입찰정보’를 입수하려고 혈안이 되어갔다. 심지어, 모 종합상사의 부장은 노골적으로 ‘대평원’의 내비서에게 입찰정보를 흘려달라고 추태를 부리기도 하였다.(일본의 종합상사들 이야기 ‘불모지대’를 연상케하는 국내상사들의 정보싸움의 현장이었다. 그 중심에 ‘대평원’이 자리잡고 있었다.)

 

정부의 참깨입찰이 뜨고, 입찰결과가 발표되면, 낙찰자는 수단산참깨를 공급하는 Huyton과 ‘대평원농상(주)’가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어느새 한국시장의 참깨는 Huyton과 ‘대평원(주)’이 정부입찰물량중 거의 70%(8만톤중 5-6만톤?)를 점유하는 수준이 되었다.

 

중국산과는 달리, 수단산참깨는 아직 수단에 시장경제가 활성화되지않아서, 일반적인 국제상거래원칙들이 적용되지않고 있었다.

국내종합상사들은 물론 유럽의 International trading house들도 수단과의 거래는 위험요소가 많기 때문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uyton은 Mr.Philippass가 수단태생이면서 영국에서 사업을 하는 관계로, 수단의 정재계와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단참깨주산지인 Gedaraf에 최신참깨가공공장을 설립하여 운영할 정도로, 다른 국제경쟁상사들보다 비교우위에 있었다.(즉, Huyton은 수단의 농가로부터 직접 참깨를 수매하여, 집하하고, 현지가공하여 해외수출하는, 참깨사업 전과정을 일원화하여 다른 경쟁사들과는 절대적인 가격경쟁우위에 있었다. 따라서, 참깨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한국의 입찰비즈니스야말로 Huyton의 입장에서는 최고의 시장이었다. 한국입찰조건이 매우 까다롭기도하고 특히 물품대금결제가 후불인 관계로, 다른 큰 경쟁무역상사들이 참여를 꺼리기 때문에 오히려 Huyton에게는 ‘최고의 시장’이 되었다....나는 한국입찰조건중 국제적인 상사들이 꺼리는 ‘후불결제’조건이 Huyton에게는 ‘더좋은’조건이라고, 맨처음 Huyton에게 한국입찰을 적극적.공격적으로 참여하라고 Huyton을 설득하였었다...큰물량을 처리하는데는, ‘재고관리하는데는’, 한국정부의 참깨입찰만한 ‘큰손’이 없었다.)

(더군다나, 국내종합상사들은 자금력도 있고 조직력도 있었지만, 아직 미개발상태인 수단현지에 직접투자참여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였다. 잘해야 해외현지법인을 이용하여 FOB로 구매하는 방법이 있었지만, 현지 무역업체가 아직 영세하고 신용이 불안하니,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몇몇 상사들은, 한국산공산품과 수단참깨를 물물교환하는 방식으로 수단참깨를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결과를 미리 이야기하자면, 그들은 Huyton과의 경쟁에서 모두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