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공방기 4

독수공방기(긑)/'나는 왕이로소이다.'

뜨겁기만 하던 햇살이 많이 누그러졌다. 오후 4시 반쯤. 서울대 입구는 부산하기만 하였다. 좁은 도로 위에 이런저런 상인들이 모두 나와 살고 있었다. 오늘도 내 좋아해 마지않는 호떡 하나를 입에 물었다. 하나에 오백냥이나 내 입속으로 해서 뱃 속으로 들어가면 그것은 오만냥이 더 되고도 남을 것이었다. 아무리 발걸음을 늦춰잡아도 아직 서울대입구. 사람들이 빙둘러 모여있었다. 무엇인가 들여보았더니, 내가 좋아하는 놀이패, 고스톱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점에 이백원짜리. 심심풀이 시간 죽이기였겠지만 눈에들 잔뜩 빛이 들어가 있었다. 그들이 사는 단순하고 편안한 세상이었다. 터벅터벅. 정말로 서울대 입구. 멋대가리 하나도 없는 마크 'ㄱ ㅅ ㄷ'. 옛날 옛날에 처음 들어갔을 때 '공산당'의 약자라고 꼬아서 비아냥..

독수공방기 2005.08.20

독수공방기(3)/'다시 돌아오지 못 하나니'

과천쪽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해를 바라보고 가느니 해를 등지고 가는 것이 나으리, 서울대쪽으로 하산 방향을 틀었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숲길은 가파르지만, 돌덩이들이 사납게 여기저기 뒹굴고 있지만 촉촉하여 땅맛이 울어났고, 얼마가지 않아 '왠 횡재' 계곡물이 철철철 흐르고 있었다. 언제 비님께서 오셨지? ‘푸른숲 속 계곡물아 서둘러 빨리 가려 하지 마라,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 하나니, 푸르름 빛나게 가득할 때 잠시 쉬어감이 어떠리’, 우리의 영원한 자유인 황진이님께옵서 그 꽁생원 서화담을 어찌하였듯이, 그러나 나는 누군가가 뭐라고 유혹 그 흔한 유혹도 하기 전에 저절로 철퍼덕 퍼질러 앉기로 하였다. 나는 손바닥만한 깔판을 계곡물 가까이 붙이고, 두 발은 계곡물에 담그어놓고서..

독수공방기 2005.08.18

독수공방기(2)/고개들어 관악을 보라

妻城子獄 탈출, 독수공방 시작 5일째, 홀로 도시탈출하여 어디론가 훌훌 사라져도 좋을, 전무후무할 황금시간을 내일모레 입찰이 ‘나 여기 또 왔소, 혹시나 하였는데 역시나 방해해야 맞는 것이었다. 오늘은 일요일, 毒獸는 어디로? 나에게는 새벽같은 시각, 일요일 아침 9시, 벌써 사당동쪽 관악산 입구. 하루종일 산에서 있어도, 집에 일찍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게 된 일요일. 굳이 짧은 청계산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고개를 들어 관악을 보라 하였으니 오늘은 관악으로 가자! 청계산과는 달리 사당동쪽 연주암가는 관악은 땡볕을 자주 만나게 될 것이나 오늘은 '나 잡아 먹으슈'하듯 쉬엄쉬엄, 하루종일이라도 가기로 하면 그 길도 왕도가 될 것 오랜만의 관악산, 아침부터 푹푹 찐다. 벌써 땀이 비오듯, 숨이 턱턱 막힌다..

독수공방기 2005.08.17

독수공방기(1)/ 일타삼매

2005.8.14.일. 밤낮을 거꾸로 살며 빈둥 게을러빠진 큰아들넘과 밥밥싫어싫어하시던 우리마눌님을 한꺼번에 배낭하나에 호주로 날렸다. 바다를 보기 전에는 호수가 넓다고 말하지 말라, 크고 강한 것을 보려거든 미국을 가라, 했더니 비자가 어떻고 뭣이 어떻고 이핑계 저핑계로 미적거리던 녀석이, 어느 날 호주행 배낭여행을 가지고 왔다. 꿩대신 닭, 좋았어 결재를 했더니, 옆에서 마눌님께옵서 '나도' 하셨다. 5학년이 되더니 부쩍 드세지고 어느새 왕호랑이 발톱을 가끔씩 시위해대기도 하고, 맨날 밥밥밥만 한다는둥, 맨날 해외여행은 혼자만 한다는둥, 위험수위를 넘나들기도 하던터라, '좋아' 결재해버렸더라. 듬직한 아달넘하고 배낭여행을 하는 것도 꿈인가 싶은데, 10일 밥을 하지않아도 되는 덤은 그냥 덤이 아니었다..

독수공방기 2005.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