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공방기

독수공방기(3)/'다시 돌아오지 못 하나니'

햄릿.데미안.조르바 2005. 8. 18. 02:03

과천쪽으로 내려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해를 바라보고 가느니 해를 등지고 가는 것이 나으리, 서울대쪽으로 하산 방향을 틀었다.
결과적으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숲길은 가파르지만, 돌덩이들이 사납게 여기저기 뒹굴고 있지만 촉촉하여 땅맛이 울어났고, 얼마가지 않아 '왠 횡재' 계곡물이 철철철 흐르고 있었다. 언제 비님께서 오셨지?

‘푸른숲 속 계곡물아 서둘러 빨리 가려 하지 마라, 한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 하나니, 푸르름 빛나게 가득할 때 잠시 쉬어감이 어떠리’, 우리의 영원한 자유인 황진이님께옵서 그 꽁생원 서화담을 어찌하였듯이, 그러나 나는 누군가가 뭐라고 유혹 그 흔한 유혹도 하기 전에 저절로 철퍼덕 퍼질러 앉기로 하였다.

나는 손바닥만한 깔판을 계곡물 가까이 붙이고, 두 발은 계곡물에 담그어놓고서, 팔베개하고 누웠으니, 사내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부족할 것 없어라 할 만 하였다.
안분지족이라,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었다.

옆에 옛친구가 있고 또 막걸리 몇 사발이 왔다 갔다 하였다면, ‘한잔 먹세 그랴 또 한 잔 먹세 그려, 꽃 꺾어 셈하며 무진무진 마시세 마셔’, 그 권주가 ‘장진주사’가 딱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주지육림에 미주가효가 어쩌고 저쩌고는 가당찮은 호사이고 말짱 헛것일 것이었다.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이 몸 늙기도 절로절로’, 옛시조 한가락이 더불어 덩달아 나올 것이었다.

나는 막걸리 대신 물을 마시면서, 없는 꽃을 꺾을 수는 없고 옆의 여린 나뭇잎 따 급하게 흐르는 물에 띄우며 세월의 흐름에 나를 실어보려 하고 있었는데, 아무리 나 혼자 좋다고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를까, 남의 눈에는 청승으로 비칠지 모르는 행색을 무한정으로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조금 아쉽다 할 때 일어나자 하였다.

그런데 벗어놓은 양말을 신으려 할 제, 이번에는 까짓것 한 번 맨 발로 가보면 어떨까, 엉뚱하지만 해서 나쁠 것까지는 없는 그런 생각이 오셨다.
우리 옛날 옛적 여름방학 때 고향시골에서처럼, 맨 발의 청춘을 소리내 부르짖는 건 아니고 그냥 옛 생각도 나기도 하고 맨 발로 가는 것은 즉 땅과 입맞춤하며 호흡을 함께 하는 것이니, 몸과 마음에 끝내주게 좋을 것이야, 진짜 웰빙이닷, 이 계곡물이 끝나는 곳까지만, 하기로 해버렸다.

바윗돌 위를, 크고 작은 돌 위를 밟고 내려가는 맛이 별미였다.
따끔따끔하기도 하고, 화끈거리기도 하고, 밋밋하기도 하였는데, 발바닥에서 터져나오는 소리가 결코 싫지 않다는 것이었다. 조금 따갑고 아프니깐, 40여년 오랜만에 처음으로 하는 것이어서, 어설프며 뒤뚱거려서, 크게 소리치며 좋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 느낌, 그 맛, 첫 맛, 그래 첫 입맞춤 맛이었을까 그 보다 더 좋았을까.

1 시간여를 이렇게 맨발로 뒤뚱거렸을까. 갑자기 소란스러워지고 사람들이 넘쳐나기 시작하였다. 서울대 입구가 가까워진 것이었다.
시간이란 것이 이렇게도 빨리 흐르기도 하는 것이구나, 힘들고 하기 싫은 일이었다면 시간의 흐름이 달리 느껴졌을 것이었는데, 그래 시간은 절대적이면서 상대적이라는 말이 맞지 맞아 하였다.

어린 여학생들이 소리치고 있었다. 소아암으로 죽어가는 친구를 도와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즐거운 산행의 끝, 우리사회는 우리에게 왜 이런 갈등을 겪게 강요하는 것일까?
어른들은 저 어린 학생들을 왜 이곳까지 와서 진짜이건 가짜이건 저소리를 하게 하는 것일까? 정치하시는 높으신 분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