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군대에서,1970-1977 41

복학하고...광주일고 동창회 복학생환영 ‘페스티벌’=나의 운명

/복학하고..광주일고 동창회 복학생환영 ‘페스티벌’=나의 운명 나는 대학 다니면서 소위 ‘미팅’을 많이 하지못했다. 하고는 싶었지만 미팅티켓 살 돈도 없을뿐더러 비인기단과대학인 ‘농대’에 대한 사회의 비호감과 차디찬 냉대때문이었다. 커트라인이라는 잣대로 대학서열을 확..

복학하고....농대축전 ‘식품공학과 종합우승’ 그리고 하프마라톤 완주

/복학하고....농대축전 ‘식품공학과 종합우승’ 그리고 하프마라톤 완주 농대에서는 권농일인 6월10일 전후하여 ‘농대축전’을 해마다 개최한다. 마침 딸기철이기도 하여 농대캠퍼스 주변은 신록과 함께 어우러진 딸기밭은 서울에서도 인기였다. 이때를 중심으로 농대 각과들은 홈커밍..

복학하고...잠따로 밥따로 하숙

/복학하고...잠따로 밥따로 하숙 가정교사 과외를 하지않기로 결정하고서는 나는 하숙집을 수원여고가 있는 시내 고등동이 아닌 학교옆 서둔동에서 하였다. 처음에는 하숙생들이 많은 전문하숙집에서 하숙을 하였지만, 좀더 조용하고 자유스럽게 나만의 공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잠따로 밥따로’하는 것으로 바꾸었다. 월세를 주고 잠만자는 엄밀한 의미의 하숙집을 구하고 동시에 밥은 다른곳에서 해결하는 잠집.밥집따로의 협동형 하숙이었다. 당시 농대주변의 하숙집들은 이러한 분업.협업형태의 하숙이 유행하였다. 밥집은 밥집대로 많은 식수인원을 확보할 수 있어서 규모의 경제를 운영한다고 할까. 나는 그 밥집을 운영하는 주인이 소위 여성인테리여서 여성혼자 살아가는 전범을 보는 듯하였고 그분은 과외로 농대생들을 위하여 일어강의를 ..

복학하고...가정교사과외 하지않고 큰형수에게 큰빚을 졌다.

/복학하고...가정교사과외 하지않고 큰형수에게 큰빚을 졌다. 가정교사과외를 하지않고 하숙비를 큰형수님에게 받아쓰게 되었다. 나의 일생일대의 패착. 내일모레면 곧 4학년이 되는데 다시 가정교사과외를 하는 것이 어쩐지 맞지않은 옷을 입고있는 듯 느껴졌다. 앞에서 말했듯, 졸업이..

군제대 그리고 복학....1976년 3학년 후학기

/복학하면서....1976년 후학기 34개월 만기제대. 아니 교련 2학점이수 2개월단축되었으니 논산훈련소 입소후 32개월만에 제대. 2개월 단축도 하루가 금쪽같던 말년군대를 생각하면 엄청난 특혜였다. 교련반대를 외치면서 교련수업을 반대하고 딴 학점이수가 그래도 2개월의 황금같은 시간을 주었으니 아이러니는 아이러니였다. 따블빽동기들보다 2개월을 먼저 나왔으니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 나를 바라보는 부대전입동기들은 얼마나 내가 부러웠겠는가. 가짜 서울상대생은 어찌 느꼈을까? 마땅히 1개월이나 2개월이나 3개월 단축을 받았어야했는데 가짜대학생이니 교련수업도 받지 않았으니 복무단축은 없고 이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가짜가 탄로났는지 아무도 말하지 않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을까? 뭐 이런 일 정도로 가짜가 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