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원농상(주)에서(창업1996-현재)

IMF가 터지니, ‘대평원’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인도네시아 '큰손‘, Dharmala group의 도산이었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5. 26. 14:33

 

/IMF가 터지니, ‘대평원’에게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인도네시아 '큰손‘, Dharmala group의 도산이었다.

 

‘대평원’이 창업한지 얼마되지않아, IMF가 터지니, 아무도 생각지않았던 일들이 일어났다.

상전벽해? 아니 또다른 의미로 ‘세상이 확 바뀌어버렸다.’

누구는 끔찍하게 몰락하고, 또 누구는 전혀 예상치않았는데 ‘신데렐라’가 되기도 하였다.

IMF로 인하여, 국내상사들의 희비는, 단순하게 ‘환율’이 행불행을 갈랐다.

해외에서 돈을 끌어다쓴 기업은 줄초상이 났고, 반대로 해외로 수출하거나 해외에서 송금을 받는 위치에 있던 상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중에 ‘대평원’도 끼게 되었다. 누구도 ‘대평원’에게 환율의 수익을 기대하지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환율’이 놀라운 메직을 보이는 것이었다.(다른 상사들은 환율이 올라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오히려 ‘대평원’은 수익이 2-3배로 올라가니 법인수입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갔다.)

(창업 1차.2차.3차 년도에 법인세를 얼마를 납부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순수하고 원칙적이어서 있는그대로 이익을 신고했고 법인세는 내라는대로 납부하였다...연속적자를 내고 있는 지금은 그때 조금 편법을 써서 사내유보이익을 더 많이 남겨놓을 걸, 후회해보기도 하지만 ‘원칙’과 ‘정도’를 걸었으므로 그것으로 만족할 일 아닌가)

 

IMF가 터지니 좋은 일들도 있었지만, 또 다른한편으로는 ‘대평원’에게는 좋지않은 일도 일어났다.(IMF 이후, ‘대평원’에 일어났던, 좋은일이건 좋지않은 일이건, 이 글 이후에 소개해보고자 한다. ‘삶이란 참 재미있다‘???....)

 

IMF가 터지니, 한국의 재벌그룹들이 쓸어져나갔다. 탄탄한 안정적 기반 위에서 그룹세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고, 우선 외형중심으로 사세를 키우다보니, 전문성을 무시한 소위 ‘문어발식, 백화점식 경영’을 하였으니, 전문성이 특화되지 않은 재벌들의 사업들은 IMF로 인하여 국제적인 금융위기를 당하니, 많은 재벌그룹들이 도산하고야말았다.(대우.쌍용.해태.진로등 )

 

동남아시아에서도 큰회사들이 도산하기는 한국과 마찬가지였는데, ‘대평원’에게 가장 가슴 아픈 것은 Mr.Park을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었던, 인도네시아 Dharmala group의 도산이었다.

인도네시아 재벌순위2-3위를 다투던 대그룹이었는데 IMF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그룹전체가 도산하고말았다.

‘대평원’의 고수익 사업기반이었던 주정용 타피오카칩사업이 졸지에 없어지고 말았으니, 인도네시아의 손꼽히는 ‘화상’이었던, 누가 Dharmala group이 도산하리라고 꿈에나 생각했겠는가? 인도네시아에 Dharmala group이 있느냐 없느냐는 ‘대평원’이 한국의 타피오카시장에서 절대적인 ‘강자’의 자리를 내놓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고, 또한 ‘대평원’이 향후 인도네시아 관련 사업의 기반이 없어져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상사 하나를 얻으니 또 다른 하나를 잃어야했다.

(다행히도, 태국의 Chaiyong과 인도네시아의 Dharmala의 도움으로 ,나는 순발력있게 베트남의 타피오카 시장으로 연착륙하여 타피오카비지니스를 계속할 수 있었지만, 그러나, 인도네시아에 Dharmala group의 도산은 큰 손실이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 타피오카비즈니를 하면서 Mr.Park이 쌓아놓은 ‘자산’들이 일순에 날아가버리는 대형참사였다.)

(주정용 타피오카 사업은, 맨처음에는 태국에서, 태국이 경쟁력을 잃어가자 다음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인도네시아가 IMF로 넘어지자, 나는 곧 베트남으로 움직여서, 한국타피오카 시장의 주도권을 이어나갔다. ‘대평원’의 주수입원은 물론 수단산참깨였지만 타피오카 수입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이 타피오카사업이, IMF 터지고 몇 년후 5년후? 7년후?, 해태상사 신입사원때부터 나에게 입찰비즈니스의 ‘모든것‘를 배우면서 커나갔던 김00가 아무 사전협의없이 ‘도둑처럼’ 거래선을 떼어 가면서, 타피오카사업은 막을 내리게 된다...나는 이런 사태를 예감하고 있었듯, 직원들에게 ‘사내 분사제도’ 또는 ‘소사장제’를 도입하여 독립운영하자고 제안한 바 있었지만 그들은 이해부족으로 나의 제안을 받아드리지 않고, 이렇게 ‘몰래’ 훔쳐가는 길을 택하고 말았다.////‘배임’이나 ‘횡령’등 거친 법률용어로 끝을 보려고 하였지만, 결국은 내가 크게 양보해서, 후배직원과 법률적으로 싸워서, 내아들보다 더 아꼈다는 그를 형사.민사상으로 몰아붙여서 무슨 좋은 일이 있겠는가 싶어서, 둘째 형보가 군대가는 날, 나는 크게 결단을 내렸다. ‘대평원’의 지분과 맞바꾸는 형식으로 일단 끝내기로 하였다.매우 ‘아픈’ 대목이 되었다. 인간적인 나의 실패였다. 그는 그대로 왜 할말이 없겠는가?....다른 장에서 더 이야기할수 있을까?)

 

태국의 Chaiyong도 IMF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야 말았으며, 그 여파로 그룹의 구조조정을 거치게 되었고, 그 결과 한국시장에 대한 사업은 결국 포기하기에 이르렀으니, 이제 막 ‘창업’한 ‘대평원’으로서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만일, Dharmala와 Chaiyong이 아직도 그들나라에서 큰기업으로 남아있다면 ‘대평원’의 위상이 또 어찌되었을지 모르지 않는가? 인도네시아와 태국시장에 ‘대평원’이 그들의 사세를 바탕으로 어떤 사업을 크게 펼치고 있지않을까? 세상사 모르는 일이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