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8월의 마지막 일요일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4. 20:27
청계산은 그대로 거기 있었다.
지난 7월 기러기산행하고 나서,
이핑계 저핑계,
언제는 너무 더워서, 오늘은 비가 오니, 그러다가 출장가느라, 한달여 산에 가지 못하였는데,
오늘은 핑계대지 말고,
조금 덥드래도,
더우면 얼마나 더울지, 청계산은 아직 그대로 거기 있는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이제 출장여독이 풀리는지, 갱신을 못할만큼 풀어졌는데,
오늘 청계산에 가면 총정리가 될 것 같았다.

11시가 넘어 옛골에 갔더니,
눈에 띠게 인간들이 늘었다. 북적북적거렸다.
내가 잘 가는 ‘버섯과 묵’의 널널한 주차장도 오늘은 만원,
옆의 절집 주차장에 눈치주차하였는데,
막 나오는데 보살님이 어쩌구저쩌구 하시더라.
사무실 앞을 막는 자리이니 빼달라는 완곡한 접근이었는데 은근슬쩍 버티었더니
보살님은 내게 자비를 듬뿍 베푸셨다. 하얀머리가 일을 한 것이렷다.
보살님 뒷 모습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세상은, 중생은 이런 맛에 사는 것, 빡빡함 속에서도 살짝슬쩍 들어갈 수 있는 틈과 여유가 있으니, 오늘도 세상은 건강하였네라, 나는 큰 눈으로 보았네라.

옛골의 매미들은 소리소리 질러대고 있었다.
한달 여만, 오랜만의 이 꼴통을 반기는 것인가,
저만치 멀어져가는 여름을 아쉬워 슬퍼하는 것인가,
저멀리 천천히 차비하고 있는 가을을 더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것인가.
요란요란 시끄럽게 합창하기도 하고 메들리로 계속 끊임없이 소리내고 있었다.

산길따라 봉숭아꽃들, 화려하지 않으나 이 늦여름을 그들이 지키고 있었다.
한켠이 살짝 어긋나 있듯 조금은 엉성하게, 수줍게 서있는 폼이,
고향 시골의 우리 누이들 옛모습이 떠올랐다.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고 시골에서 밭메고 보리밥하던 누이들은 뙤약볕 속 밭둑에 서있던 봉숭아였다.

오늘 그 봉숭아가 옛골 이수봉 올라가는 길에 강분홍으로 또는 연분홍으로,
진한 빨강은 아니었다.
분홍빛 추억이 난 좋은데, 그 분홍빛이 여러갈래로 나뉘어 색깔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것은 나에게 주는 환영이고 축복이었다.
그 가운데 매미들은 또 울어대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늦은 여름이어도 여름은 여름, 올 여름이 어떠했는가,
보통 여름이 아니었듯이 오늘도 가는 여름이었지만 한낮의 땡볕은 따갑고 진하였다.
옛골의 숲그늘이 없었다면 여름 산행 나들이는 따가운 눈총을 맞고 힘들었을 터인데,
다행히 옛골은 숲그늘 속으로 날 이끌어주었다.

한달 여의 공백이 숨차는지 어둔골을 지나 깔딱고개는 날 가만두지 않고 꼴딱꼴딱거리게 하였다.
땀을 비오듯이, 한달 여 흘리지 못한 땀을 한꺼번에 쏫아내듯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왠 땀이 그렇게 나오는지, 더위 때문일까 내 허약함 때문일까, 땀은 숨도 쉬지않고 쉬지않게 나왔다.

여름휴가 갔던 인간들이 오늘 모두 청계산 옛골에 여름휴가 마지막을 마감하려는가,
가는 여름, 오는 가을맞이 하기로 하였는가,
평소의 두세배의 인간들이 북적거렸다.
인간들은 너무 없어도 너무 많아도 탈, 알맞은 것이 좋은데
옛골도 이제 옛골이 아닌 샛골이 되는 것인가.
가장 독한 것이 인간의 자취.
인간의 손길이 가는 곳, 발길이 닿는 곳, 땅이 힘을 못쓰고 다른 생물이 시들고 죽어간다 하였다.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이수봉이 좁았다. 한참 좁았다.
막걸리 장수와 아이스께끼 장수는 신이 났다.
인간들이 많이 온만큼 주머니가 불어났을 것이었다.
이수봉은 속으로 울고 있었을까, 힘들다고.

‘버섯과 묵’의 산채 비빔밥은 여전히 맛있었다.
텃밭의 무공해 무농약 채소로 만들었다는 겉절이 열무김치를 따로 내주었다.
벌레가 먹은 것들을 추리고 추려 담갔는데 귀한 것 단골님께 한사발 드시라는 것이니
얼마나 맛있었겠는가,
나는 기쁨과 즐거움을 듬뿍 입 속에, 뱃 속에 하나하나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이 여름이 다가기 전에, 저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오후의 햇살은 여름이 끝나고 있음을 웅변하고 있었다.
가는 여름은 가는 여름, 힘이 떨어져 가는 것이었다.
살갗에 닿는 볕의 느낌이, 저 멀리 지붕 위에 떨어지는 햇볕의 따가움이 잦아드는 것이 보였다.
자동차 앞 창으로 떨여져 들어오는 햇볕이 여름 한철의 그 힘이 아니었다.
따갑기는 따가와도 힘이 떨어져 있었다.
다 큰 아들의 종아리를 때리는 늙은 어미의 팔힘이 그렇다고 할까,
오늘의 여름 햇볕의 힘이 그러하였을까,
그럴 것이었다.

일방통행을 거스르지 않고 결 따라 빙빙 돌아나오는,
집으로 가는 길은 알맞은 따가운 햇볕이 안내하고 있었다.
8월의 마지막 일요일,
청계산 옛골은 나를 집으로 보내면서 또 자연스럽게 여름을 보내고 또 가을을 맞이하고 있었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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