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원농상(주)에서(창업1996-현재)

''가지 않은 길''---소위 ‘월급쟁이’를 마감하면서; 과연 나의 ‘운명’은 어디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인가?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4. 24. 13:32

/소위 ‘월급쟁이’를 마감하면서; 과연 나의 ‘운명’은 어디로 나를 데리고 갈 것인가?

 

‘동양글로벌’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소위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드디어’ 운명적으로 ‘창업’을 하게 되었다.

대학졸업후, 종합상사 ‘금호실업’에 첫 입사한 이래, 그동안 나의 ‘사표’ ‘퇴직’ 역사를 정리해보자.

((-금호실업(1977.11.1-1980.2.28)...세운상가 ‘아마존’그룹의 신설 무역회사 창설멤버-금호실업 퇴사(대학원진학 명분으로)

-해태상사(1980.4.1-1995.4.30)...세번의 사표소동(1.일본땅콩수출하면서 감사원 감사 2.방콕지사장 근무후 본사복귀하면서 ‘멸치액젓’사업 ‘Park Trading' 3.해태그룹 종합조정실 전보 요청후 ’컨설팅‘회사 설립 4.동양그룹 임원공채모집 응모-’본부장‘보임 제안 거부 그리고 퇴사.

-동양그룹 ‘동양글로벌’(1995.5.15-1996.7.15)...농유공 입찰분쟁중재후 ‘사임’

-대평원농상 주식회사 창업(1996.7.21)...법인등기 1980.8.1~현재까지 대표이사 재임중.))

 

고3때 졸업성적이 매우 우수하였지만, 서울대 인기학과를 지원하지않고, 비인기분야인 ‘농대 식품공학과’를 지원할 때만 해도, 무슨 큰목표를 세워놓고 저지른 것이 아니라, 인기가 나쁘지않았던 ‘공대’는 성격상 또는 취미.취향상 죽어도 가기 싫었고(물리.화학과목성적이야 상대적으로는 남들보다야 우수하였지만 국영수에서 들인 노력에 비하면 물리화학성적은 나에게는 상대적으로 쉽지않았었고...특히 뭘만들고 고치고하는 손재주가 전혀 없고 소위 기계맹...그런데 얄궂게도 내가 선택한 '식품공학과'도 공대나 마찬가지인 이굥계여서 하기싫은 화학실험이나 제도실습을 또 만나야했다.), ‘의대’는 6년간 배워야하고 책값이 엄청 비싸다는 순진한 ‘부모님’들의 적극 반대로 가지않고, 대신에 ‘농대’를 가면 어쩌면 ‘수석입학으로 5.16장학금을 받아보자라든가 ’식품‘전공이니 절대로 배고파 고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나의 매우 현실적 접근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는 대학입학후, 엄청난 사회적 무시와 냉대로 마음고생을 겪어내야 했으며...결국, 이 생각지않은 ’사회적‘ 냉대가, 역으로, 나를 더 강하게 키웠다. ’운명‘의 시작이 된 셈이었다.

 

또다른 야릇한 ‘운명’의 손짓이 있었다. 대학졸업후, 식품공학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식품회사(오비맥주, CJ제일제당, 해태제과, 롯데제과, 오리온, 삼양사등) 근무기회를 털어버리고, 전공과는 전혀 다른 ‘종합상사’에 지원하게 되었다.(식품공학과 동기생들 모두가, 식품공학과 교수들 모두가, 식품회사를 마다하고 생존경쟁이 극심할 ‘종합상사’를 선택한 나를 보고, 모두들 의아해 하였다. 컨닝을 하느니 차라리 ‘백지’답안지를 내고말았던, 전공공부는 하지않고 민감한 사회문제이슈를 공부하는 이념써클활동을 더 열심히 했던, 좀 ‘특이’하다 했던 나의 취업선택도 그들에게는 정말 ‘특이’하였다.)

나도 ‘대우 김우중’이나 ‘율산의 신선호’처럼 되겠다고, 언젠가 ‘창업’의 꿈을 꾸면서, 그때 당시 야망을 가진 대학생들에게 인기있던 ‘종합상사’에 발을 내딛었다. 대학전공을 무시하고 물설고 낯설은 ‘종합상사’에서, 거침없이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가지않은 ‘길’만을 선택해서 기어코 가고야말았으니, 과연 용기있다 할 것인가 아니면 ‘운명’이라는 큰그림속에 내가 한발짝 걸어들어가는 것이었을까?

 

그동안, 크게는 ‘금호실업’ ‘해태상사’ ‘동양글로벌’에서 직장생활을 하였지만, 근무중 크고작은 사건속에서 나는 수없이 ‘사표를 내고 퇴직소동’을 부렸었던 것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1.금호실업에서 ‘사표’를 냈던 때는, 건방지게도 금호실업에서는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섣부른 판단을 하고는 ‘퇴사’를 결심하였다.(그때는 내 회사를 차리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고, 소규모 무역회사에서 경험할 것이 많겠다 싶어서였는데, 문제는 금호실업의 담당이사가 좀처럼 ‘사표수리’를 해주지 않아서, 대학원 진학한다고 거짓말을 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사님은 나의 속내를 모두 들여다보고 있었다 생각된다.)

2.금호실업을 나와서, 청계천 세운상가의 나이트클럽 ‘아마존’의 물주가 ‘율산’과 같은 무역회사를 만들겠다하여 나는 거기에 합류하였으나, 막상 세운상가에 자리잡은 ‘아마존무역회사’를 다녀보니, 바로 ‘이것은 아니다’는 판단이 왔고, ‘원서마감후’ 지원하여 우여곡절 끝에 나는 ‘해태상사’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3.해태상사 근무때는, 세 번의 ‘사표’ 소동이 있었다. 그 첫 번째는, 일본땅콩수출 원자재 파동으로 감사원 감사를 받고나서, 감사원 고위층이 내가 있는그대로 작성해준 ‘재고확인서’를 악용하여, 해태상사는 검찰조사를 받게 되었는 데, 결국 ‘무혐의’처리 되었고, 나는 재고관리에 문제가 없었다는 결백을 바탕으로, 바로 ‘땅콩사업’을 하겠다고 회사에 사표를 썼다. 그렇지만 회사에서는 나의 사표를 수리할 리가 없었다. 나는 회사와 한달여의 씨름 끝에 ‘사표’를 걷워들였고, 결국 첫 번째 나의 회사 설립에 대한 꿈을 접었다.(한달여가 지나자 나도모르는 사이에 ‘사업’에 대하여 불안함이 밀려들어왔고, 사업을 하기에는 아직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판단하여, 회사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그 두 번째는, 방콕지사 근무를 마치고 본사복귀하면서, 오너인 ‘박사장’의 미움을 샀으니, 해태상사에서의 나의 앞날에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여, 태국의 ‘멸치액젓’을 한국시장의 김치젓갈용으로 사업을 하고자 하였다. 비공식적으로 ‘가칭’ Park Trading이라 이름짓고, 역곡집에다는 팩스까지 설치하고, 20박스(?)인가 소량의 시험수입까지 단행하였었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국내시장 반응이 미미하여 ‘멸치액젓’사업을 포기하였고..해태상사에서는 ‘대기발령’이라는 막장까지 갔다가 다시 ‘개발팀장’ 그리고 ‘농산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되었다....해태상사에서는 ‘종업원’으로서 할수 있는 일은 모두 해보고, 누구의 간섭없이 회사생활을 화려하게 꾸려갔으나...갑자기 ‘영업’하는데 나의 성격상 매우 힘들다는 판단아래 해태그룹 종합조정실 근무를 요청하게 되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않자 나는 ‘컨설팅 사업’을 해보겠다고 세 번째 ‘사표’를 썼으나, 회사 고위층의 논리적 설득에 막혀 다시 나의 회사 창업의 꿈을 접게 되었다. 다시 심기일전하여, 해태상사 영업부서중 유일하게 농산부만이 흑자를 냈으며, 연속하여 5년동안이나 흑자를 보게 만들었으며.,그 실적으로 ‘이사’승진 기회가 되었지만 해태제과의 인사적체 때문에 ‘이사’승진은 다음기회로 넘겨졌고..나는 이때 ‘반장난삼아’ 식품경쟁그룹인 ‘동양그룹’의 임원공채모집에 지원하게 되었고, 해태상사에서는 나에게 이사승진은 시키지못하였지만 대신 ‘본부장’으로 보임하고 중책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나는 이를 거절하고, 신설 ‘동양글로벌’의 농산.식품사업본부 담당임원을 맡아달라는 ‘동양그룹’의 스카우트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는, 임원인사를 하는데 실력의 유무보다는 충성심 우선으로, 유능한 인재관리가 갈수록 부실해지고, 무능한 참모들만 회장 주변에 몰리는, ‘경영부재.전략부재’의 해태그룹에 일종의 ‘경고’를 보내는 한편, 그동안 꿈꿔왔던 나의 ‘독립’을 실현해보자는 숨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한 3년 열심히 하다보면, 동양그룹에서 더크게 자리를 잡든지 아니면, 여차하면 ‘독립’해버리자는 막연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3년’이 ‘1년’으로 급하게 다가오고 말았다. ‘운명’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부의 참깨입찰 ‘중재’를 빌미로, 1년여 만에 ‘동양글로벌’에 이사사임을 하게 되었다. 해태상사의 ‘농산.식품사업본부’를 신설상사인 ‘동양글로벌’에서 펼쳐보이려고 하였지만, 사료곡물담당 경력사원채용이 어긋나고 또 갑작스런 사무실 이동(‘6층’)으로 회사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되었으니, 더 이상 동양글로벌에서 근무하는 것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대학졸업후, 금호실업에서 해태상사를 거쳐 동양글로벌까지, 거의 20년에 걸친 직장생활을 정리해보았다. 20여년 동안, 우여곡절이 수없이 많았다. 어떤때는 매우 서툴렀으며 또 어떤때는 전혀 준비가 되지 않았으며, 또한 여러 실수들도 많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으며, 여러 실수들을 통하여 새롭게 배우고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하나하나 알아가게 되었다...지금 생각해보면, 몇번의 ‘창업’을 중도에 그만 둔 것은 참 잘한 결정이었고, 늦었지만..‘동양글로벌’을 마지막 직장으로 하고, 이제 ‘내회사’를 차리게 된 것이 잘 되었다 싶다.)

 

마지막 직장인 ‘동양글로벌’을 그만두고, 이제 드디어 ‘운명적으로’ 나의 회사 ‘대평원농상 주식회사’를 창업하게 되었으니, 과연 그 앞날이 어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