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않은 길4'.... 나는 이왕 내친김에 미련없이 동양글로벌에 ‘사표’를 던졌다. 막막하였지만, 그렇다고 조금도 ‘불안’하지 않았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살 것인지, 생각도 많아야했고 불안하고 두려움이 앞서야 마땅할 것인데, 그때 나는 왠일인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 왜? 마치 거쳐야할 삶의 어느 과정을 마치고, 단지...다음 과정을 또 새로이 밟아나가는 '절차'쯤으로 생각했기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고비고비에서 언제나 '가지않은 길'을 선택하곤 했던 나는, 그동안 여러차례 '창업'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 고민해왔고 막연하게나마 '준비'를 마음속으로 해왔었다.
남이 얼핏 이해하지 못했던, 나의 삶 주요 길목에서 내가 보여주었던 '과거행적'들을 돌아보면 그 답이 있을까싶다.
((돌이켜보면, 나는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가는 길을 가지않고, 거의 아무도 가지않은 길을, 내가 선택해야하는, 나의 인생 갈릴길 중대한 고비고비에서,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길이 아닌, 남이면 결코 가지않을, 엉뚱한 길....나는 의외로, 그 '가지않은 길'을 선택하곤 하였다.
1.고3때, 그 좋은 성적으로 '왜 농대 식품공학과를 선택했는지, 왜 남들이 가지않은 길을 걷겠다고 했는지?'
2.군대다녀와서, 복학하고, 졸업을 앞두고서는, 서울대식품공학출신으로서 굴지의 식품재벌대기업에 가지않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불안정할 '종합상사'의 길로 들어갔는지?
3. 왜 나는 모두들 의아해 하는, 안정적인 해태상사의 농산.식품사업본부장=임원 자리를 받지않고, '불안정'한 신설상사인 동양그룹의 농산.식품사업본부장=이사 자리로 옮겼을까?
4.왜 나는 모두가 부러워하는 재벌그룹의 안정적인 임원자리를 때려치우고, 앞이 전혀 보이지않는, 살얼음판 찬바람만 쌩쌩 불어대는, 허허벌판 '광야'에 '창업'의 깃발을 꽂았을까?....))
'가지 않은 길',
그것은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었다? '
만사개유정?'
(1996.6.30?, 동양글로벌에 첫 출근한 날이, 1995년 5월15일(?)이었으니, 1년이 조금 넘게 동양글로벌에 근무하였다. 1년 조금 넘게 근무하였지만, 동양그룹의 임원퇴직금 규정은, 3년치(3개월치?)의 월급만큼 퇴직위로금을 퇴직금으로 주었다.(해태상사 15년근속상을 받고 퇴직한 만큼의 퇴직금이었다?) 나는 이를 우리집사람에게 전액 넘겨주고, 앞으로 3년동안 ‘월급’은 없다고 선언아니 선언을 하였더니, 우리집사람은 ‘멍’하니 나를 쳐다보기만 할 뿐, 다른 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왜 할 말이 없었겠나싶지만, 그녀는 나에게 일체의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참 나에게는 고마운 일이었다. 나는 누군가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면 하던 일도 하지않는 못된 아니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금호실업에서도 해태상사에서도, 윗사람이 나에게 뭐라 ‘잔소리’를 하면 나는 하던 사업도 멈춰 버렸다.)
해태상사에서 차려준 ‘본부장’ 밥상을 차버리고, 듣도보도못한 신설‘동양글로벌’로 옮기더니, 이제는 재벌그룹 ‘이사’ 철밥통 자리를 1년만에 던져버리니, 많은 사람들이 나보고 미쳤다 하였다.
남들은 하지못해서 안달복달하는 판인데, 어찌 저 ‘박아무개’는 재벌기업 ‘본부장’ ‘이사’ 자리를 헌신짝 버리듯, 집어던져버리냐는 것이었다.
어디 미치지않고서는 그 바보짓을 할 수 없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내가 생각해봐도, ‘본부장’ ‘이사’자리를 내던져버리는 것은, 일반상식적 판단으로는 할 수 없는 행위였다. 지금 다시 ‘그때’로 돌아가서, 나에게 어찌 할 것이냐고 물으면, 나는 단연코 ‘본부장’도, ‘이사’도 두말하지 않고 맡겠다 할 것이다. 내가 왜 그렇게 ‘미친짓’이나 다름없이, 일을 저질러버렸는지 그때를 생각하면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 ‘운명’이 시킨 짓이었을까?)
막상, ‘동양글로벌’에 사표를 쓰고 나오니, 당장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였다.
우리집사람에게는, 3년동안 월급 없을 것이니, 잘 알아서 아이들 챙기고 집안살림하라고 하였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로서는 아무런 ‘계획’이 하나도 없었다.
(주정용 타피오카 비즈니스를 하면서 인도네시아 출장때, Dharmala group의 오너2세인 Mr.Imawan에게는 내가 곧 ‘독립’할지 모르니 그때 잊지말고 나를 도와달라고는 해놓았으나, 막상 내가 재벌대기업이 아닌 일개 ‘무역상’을 해도, 지금처럼 적극 도와줄지는 모르는 일 아닌가? 내가 해태상사를 떠나면서 ‘동양글로벌’로 옮기면서, 인도네시아 타피오카 판권을 ‘동양’으로 달라하였을 때, 그들은 그룹회의를 거치면서 ‘진로상사’=JRI와 ‘동양글로벌’중에서 어느쪽에게 한국시장판권을 줄지를 놓고 격론 끝에 Mr.Park이 있는 ‘동양’으로 결정해준 바있었으나, 개인 Mr.Park의 경우도 과연 한국시장판권을 줄지는 큰의문으로 남았다...훗날, 내가 정말로 ‘동양글로벌’을 떠났을 때는, Mr.Park에게 한국시장판권을 주되, 당분간은 ‘동양글로벌’을 대행창구로 하자는 나의 절충안을 그들이 받아들여주었다...나는 모든 가격결정을 내가 하고, 대평원농상주식회사가 하고, 수입신용장 개설등 대외적 수입창구역할은 ‘동양글로벌’이 하는 것으로, 진로상사=JRI의 공격을 방어해나갔다. 진로상사는 주정협회의 타피오카 수입량의 거의 30%를 차지하는 대실수요자인 진로발효를 등에 업고 Dharmala group을 압박해들어왔으나, 끝내는 Mr.Park에 대한 Dharmala group의 신뢰를 깨지는 못하였다.)
(태국의 Chaiyong group의 Mr.Boonchai야 내가 ‘독립’하여 무슨일을 하든, 그는 언제나 나의 영원한 팬으로서 나의 일을 백프로 도와줄 것이지만, 태국산 타피오카는 이미 한국시장에서 인도네시아산과의 경쟁에서 밀려났으므로 큰 의미가 없었다. 또 태국의 Nanapan group의 Mr.Thavee도 나의 ‘독립’을 전폭지원하겠다하였지만, 태국산 쌀은 소위 안남미라 불리는 장립종으로서, 한국시장에는 수요가 거의 없었고, 태국산 팥도 한국시장에서는 팔리지않아 큰의미가 없었다.)
(중국산 농산물의 큰손인 홍콩의 Wide Source의 Mr.Wong은 말로는 ‘노프로브럼’이라고 하였지만, 해태상사의 주력공급자이기 때문에 쉽게 움직일 수도 없었고, 나로서도 ‘도덕적’ 문제까지 염두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수단산 참깨와 인도산 대두박.채종박의 공급자인 Huyton은, 아직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태국의 공급자들처럼, 깊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았을뿐더러 그때까지만 해도, 수단산참깨는 한국시장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으므로, 무슨 ‘기대’같은 것을 생각하고 말고 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국제전화상으로 나의 장래 ‘꿈’이나 ‘독립’에 대해서 Mr.Philip과 무슨 이야기를 나눌 처지가 안되었다.)
막연하게, 한 3년하다가 잘 되지않으면, ‘학원강사’를 하든지 아니면 ‘라면가게’ 하나 운영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정말 막연한 ‘그림’을 그려보긴 하였지만, 정말로 막연하기만 하였다.
(그래도, 어찌된 노릇인지,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나의 마음은 전혀 조바심이 없었고 오히려 천하태평이었다. 나는 본래 무대뽀스타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일을 하는데 무작정 밀어붙이는 스타일도 아니었지만, 생각을 조금 많이 하는 편이긴해도 큰걱정을 하는 편은 아니었다...대학을 선택할 때도, 직장을 선택할 때도, 결혼을 할때도...왠지 나는 그냥 ‘담담’하였고 ‘태평’이었다..큰일을 앞에 두고서는 무슨 ‘걱정’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아무런 '불안'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그동안 막연하나마 나름대로 '창업'에 대한 나름의 '준비'를 해왔었기때문 아니었을까? 인도네시아 Dharmala group이 나에게 보여준 타피오카사업에 대한 신뢰...FOB, 선박 용선Chartering을 통한 한국시장을 개척해낸 나의 '성공신화'를 근거없이 믿었다거나, 아무도 꿈도 꾸지않았던 불모지 아프리카 수단에서 참깨를 한국시장에 맨처음 들여왔던 '모험적 성공'에 대한 또 근거없는, 철하나없는 '믿음'때문이었을까? 그외, 일본땅콩수출 개척자, 그리고 태국산옥수수 한국시장 첫개척자등 몇몇 근거도 하나없는 '성공신화' 몇몇을 가지고 나는 나의 '창업'이 큰 문제없이 성공할 것이라 믿었던 것 아닐까?)
(맨땅에 헤딩한다는...개인 '창업', 한겨울 눈보라 찬바람에 엉금엉금 살얼음판, 허허벌판에 무서움 하나 없이 '불안'하나 느낌없이ㅓ, '씩씩하게'..드디어 꿈에 그리던 '독립군'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결과가 어찌 될 것인지 그런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ㅇ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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