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복귀하면서 2....푸켓의 일몰과, 타이완 1박2일.
1989년 8월?
대만을 거쳐 본사에 들어갔다.
1986년 11월에 방콕에 들어왔으니...3년이 채 되지 못하였다.
해외지사원들이 보통 연임하여 지사근무를 희망하는데 반하여 나의 경우는 특별하였다.
더군다나 지사장으로서 지사장자리를 던져버리고 먼저 본사복귀를 희망했으니 선례가 없는 특수한 경우였다.(나는 무엇을 하든 좋거나 나쁘거나, 언제나 ‘특별’한 것을 만들고 다니는 ‘특별한’ 직원이었다.)
본사에 복귀하라는 인사명령이 났으니, 이제는 본사에 돌아갈 준비를 해야했다.
(보통 인사명령후 3개월여의 준비시간을 주었다.)
앞서 이야기한바대로, 우선 이삿짐에 넣을 짐을 챙겼다.(한국에서는 없고 태국에서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품목중심으로 이삿짐 품목을 꾸렸다...장미목. 코끼리.거북이등 태국 토산품중심)
그리고, 푸켓으로 가족여행.
푸켓의 일몰. 인도양을 바라보는 해질녘의 해넘이가 압권이었다.
유람선으로 삐삐섬 일주.
중국요리에 빼놓을 수 없는 제비집 채집하는 곳.
우리 큰아들은 신발 한짝을 바다에 빠뜨리고는 못내 아쉬워하였다.
Chaiyong의 Mr.Boonchai가 예약해준 호텔...분수가 쏟아지는 수영장 계단에서 아들들이 장난치다 넘어지고 옷이 젖어서 난감하던 시추에이션등
짧은 여행..귀국전 언제 다시 올지모르는 푸켓은 아름다웠지만 그 풍광을 여유있게 즐길 수 있는 입장은 되지못하였다.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귀국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미리 원하여 귀국하는 것이니 즐거울 수 없었고, 더군다나 마음속으로는 해태상사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푸켓여행이 어찌 유쾌할 수 있으리.................. 나의 아들들은 신나고 즐거웟겠지만, 나는 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드나들고 있었으니 무슨 즐거움이 있었겠는가? 내 집사람이야 깊은 내속을 알수는 없엇겠지만, 내가 말하지않는다고 그 속을 모르겠는가?)
귀국하는 해외주재원들은, 보통 서울도착하기 전, 주로 홍콩에서 몇박을 하고 서울로 들어갔다.
나는 홍콩의 지사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또, 홍콩은, 이미일본땅콩수출사업때 중국산원료땅콩 구매하러, 몇 번 출장 갔으니 이번 귀국여정은 대만경유하여 가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어디를 갔는지 지금 특별하게 기억나는 곳은 없다.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장개석기념관’과 어떤 ‘미니어처’ 만리장성?이 아니었나 싶다.
드디어, 한도 많고 말도 많았던, 방콕지사 3년생활이 끝나고, 새로운 서울생활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과연, 나의 새서울 생활은 또 어떻게 전개될까요?
과연, 나는 박사장과의 관계를 어떻게 마무리 지을까요?
과연, 운명의 여신은 나를 어디로 어떻게 안내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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