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사원들(정기0과장과 한상0과장)그리고 현지법인의 태국직원들에 대한 ‘유감’
본사에서 차장진급을 하고 얼마되지않아 방콕지사장으로 부임하였지만, 전결권이 있는 조직을 본격적으로 다루어보지는 않았다. 물론 땅콩과장을 하면서 일본수출사업을 전담하여 운영한 바는 있지만, 소규모 조직이라 조직운영의 큰그림을 아직 그려보지 않았다.
방콕지사장으로 보임되고서도, 지사원들을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현지직원들은 또 어떻게 관리해야하는지, 전혀 개의치않고 하는대로 그대로 보고 ‘재량권’을 전혀 행사하지않았다.
이를테면, ‘접대비’를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전혀 개념이 없었다.
전임지사장이 인수인계도 없이 본사로 복귀하였던 것처럼, 기존 지사원들은 가능한한 새로 부임한 지사장이 깊은 업무파악을 하는 것에 달가워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결정적인 것중 하나는, 본사의 박사장이 관리담당인 정과장에게 한.태구상무역 ‘비장부’를 찾아서 본사 기획실로 보내라는 명령이 떨어졌던 모양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전임지사장이 알려주지도 않았지만, 관리담당인 정과장또한 그 존재를 현지사장인 내게 알려주지않았느니 내가 어찌 그 존재를 알 수 있으리요? 그만큼 정과장이나 한과장은 현지사장이 관련업무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않았고, 사후에 알려지면 그때 가서야 마지못해 사후보고하고 끝내고 말았다.(나중에야, 내가 본사에 돌아간 후에야 그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내가 방콕지사에서 ‘찬밥’노릇을 당하고 있었는지를 지사장을 그만두고서야 알게 되었으니, 나는 참 사람 보는데, 사람 다루는 데 지질이도 재능이 없었다. 고스톱으로 말하자면, 오로지 내 패만을 보면서 고스톱을 하고 있었다. 지사원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가 그들을 어떻게 다뤄야 그들이 나를 대접하는 지를 생각하지 않았으니, 그들은 내가 갖고 있는 패를 보고 그에 맞게 고스톱을 한 것이었다. 누가 그들을 비난하겠는가? 내 패만 보는 내가 모든 책임을 져야되는 것 아닌가?)
당시만 해도, 아직 본사의 예산지침 없이 떡 먼저본 사람이 먹어대는 때였으므로, 지사의 ‘접대비’는 지사장의 전결사항이었다.
(김이사는 그걸 잘 알고 있어서, 골프도 마음대로 치고 손님접대도 공사구분없이 무한정 쓰고싶은 대로 쓰고 다녔다..그 반면에 나는 범생스타일이라 원칙 그대로, 공사 구분 확실하게 하였으며, 공적인 때도 가능한한 절약하고 절약해서 접대비를 운용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절약형 지사운영을 해도 본사 어느 누구도 평가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본사 출장직원들은 손크게 후한 대접을 해주어 보내는 김이사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지만...범생스타일 나의 짠접대는 대놓고 나쁘다하지는 아니해도 걸쭉한 룸싸롱접대받지못해 섭섭해 하는 것 아닌가? 세상 인심이란 것이 참 얄궂었다. 학교의 모범생이 사회의 모범생이 되지 못한다는 시중의 말이 일응 맞는다 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인심이었다. 누가 회사를 더 위하는 것은 먼 다음의 일이고, 우선 내 입속에 누가 맛있는 음식을넣어주었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 세상일이었다.)
태국현지직원들에게는, 지사장으로서 현지법인 사장으로서, 충분히 그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한 것같아, 지금 생각으로, 매우 미안한 마음이 든다.
태국말을 적극적으로 배워서 그들과 소통하려는 뜻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땐 태국말을 굳이 배울 필요가 있을까 영어로 거래선과 소통이 되는데 직원들까지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직원들과의 소통을떠나서, 태국말을 적극적으로 배웠어야 했다. 태국을 얕본 것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에야 깨달은 것은,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그때 태국을 우습게 보지않고 태국말을 배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소극적이 아닌 적극적 자세로 배우려 했어야 하는데...중요하게 여기지않으니 영어도 늘지않고 태국말도 늘지 않으니, 30여년이 지난 지금 태국말을 배우려 하니 잘 배워지지않은 것. 태국역사만 해도 그때 더 파고 들었어야 하는데, 태국을 깊이 알 필요가 없다고 지레 판단하여 그만 두었으니 지금 나에게는 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크게 없다. 지금생각해보면, 참 민망하기 그지 없다.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겸손또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할 것이다.)
‘방콕지사장을 다시 한다면, 참 멋지게 할 자신이 있는데.......한번 떠난 버스는 다시는 돌아오지않는다 하니...
그러나 나는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학교다닐땐 몰라도 회사에서는, 사회에서는 ‘방어운전’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그 이후 나는 ‘방어운전’을 조금은 할 줄 알았답니다 하하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다음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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