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본사는 새로운 경영체제, ‘L.A 팀들의 부상과 나의 고행길‘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29. 22:27

/ 본사는 새로운 경영체제, ‘L.A 팀들의 부상과 나의 고행길‘

해태상사의 새로운 사장으로, L.A 지사에서 근무하던 박건배회장의 친동생 박성배 부사장으로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나웅배 전재무장관이며 해태제과 사장의 서울대상대 친구였던, 나를 음으로 양으로 전폭적으로 밀어주었던 유영일 부회장이 2선으로 물러나고, 박부사장이 본격 경영일선에 참여하게 된 것.

경복고 74년 졸업? (그는 신문가쉽란에도 가끔 등장하는 오렌지족 성향으로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아서 주변의 입방아에 자주 오르내렸다.)

참모진으로는 L.A 지사경력팀들과 경복고출신들이 대거 중용되었다.

과거 주력부대인 해태제과출신으로 농산.식품사업 라인들이 한직으로 밀려나는 형국이 되었다.

내가 모셨던 농산사업본부장 박상무는 홍콩으로 좌천되어 떨어져나갔다.

(새로운 박사장은 은근히 박상무라인을 경계하였고, 그 중에 나를 포함시키는 모양새였다. 아무리 나는 일만 따라하는 사람이지 누구누구 뒤따라다니며 쫄랑거리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모든사람들이 박지사장의 성격상 누구를 맹종하지않고 일을 최우선으로, 일만 아는 사람이라 해도 그렇게 믿지않은 눈치였다. 박상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노라고 선언하고 새 박사장에게 소위 ‘충성맹세’를 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도 있었지만,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직장생활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묵묵히 나의 일만 하였다.)

 

들리는 소리로는, 박지사장은 실력은 있는데 사람이 너무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L.A팀중 좌장격인 정병0 기획실장=박사장 비서실장격은 나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여, 박사장의 오해가 많이 풀리기는 하였지만, 그동안 농산사업의 ‘오늘’을 만들어낸 장본인 중 하나인 것(박상무.고형0부장.박동0차장)은 전직원이 아는 사실이어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한.태구상무역의 뒤처리가 여러 문제를 내포하고 있었다. 워낙 뿌리가 깊고 그동안 회사에 기여한 바가 큰만큼 그만큼 또 공개할 수 없는 사안들이 많은모양이었다. 내가 모르는 ‘비자금’같은 것도 있는 모양이었는데, 현 지사장인 나로서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앞서 언급한대로, 전임 한지사장은 일체 인수인계를 하지않았을 뿐만 아니라, 기존 본사파견직원(정기0과장, 한상0과장)들로부터 보고받은 적이 없으니 내가 알 턱이 있겠는가?

박사장은 나도 모르는 일들을 나에게 지시하고, 때로는 현지 사정과는 맞지않는 지시를 해대니, 나로서는 사사건건 시비를 가려서 본사의 지시에 대응하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성격상, 무조건 본사의 지시를 따를 수는 없었다.

박상장의 입장에서는 사사건건 논리적으로 지사입장을 설명하는 내가 자못 못마땅한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

나는 졸지에 박사장의 지시에 불응하는 ‘항명’지사장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기획실장인 정병0부장이 아무리 나를 보호해주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워낙 내가 타협을 모르는 강골, 일중심으로 일을 하는 스타일이지, 합리와 논리가 따르지 않는 일은 아무리 그것이 사장의 명령이라하드래도, 나는 현지실정에 맞지않으면 실행을 유보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는 부장진급에서 계속 누락되고 있었다. 그러나 인사권자의 권한을 어찌할 것인가?

그래도 나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않고 묵묵히 일만 하였다. 그것이 또 박사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모양. 잘못했다하고 앞으로 잘 할 터이니 선처를 바라겠다는 ‘충성맹세’를 기대하는 모양이었는데, 글쎄요..그런 짓은 나의 사전에 없는 일...나는 일만 할뿐이었다.

그동안 잘나가던 한.태 구상무역까지 국내외 정치상황과 맞물려 정리하는 단계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으니, 특별히 본사의 방침을 받고 태국정부를 접촉하는 일은 없어지게 되었다.

당분간 박사장과 방콕지사장인 나와의 갈등은 수면 밑으로 잠복되었다.

(진급때만 되면 나의 부장승진은 뒤로 밀리고말았다..._)

그러다 방콕주재 임원으로 김경0이사가 파견되었다.(회사를 그만 두라고 하지는 못하고 변방으로 유배성격으로 주재임원으로 명령을 냈는데 사표를 내지않고 그대로 부임한 것. 지사장이 있는데 그 위에 주재임원을 발령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정면으로 박사장의 인사에 반대의사를 표시하였고, 차제에 현 방콕지사장은 본사복귀명령을 내달라고 공식선언하기데 이르렀다..지사장 근무 3년차 초의 일이었다.

(김경0 이사 이전에 주재임원이 또 있었다. 주태 한국대사관에서 무관으로 근무했다가 해태상사에서 스카웃 형식으로 들어왔던, 방산사업담당 윤종0이사였다...그때만 해도, 내가 지사장 보임 즈음이고, 대사관과 해태그룹 고위층과의 정치적 관계에 얽힌, 어쩔 수 없는 ‘주재임원’근무였기 때문에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었다...윤무관 때문에 내가 방콕지사장으로 보임된 숨은 뜻도 있었다...그러나, 김경0이사의 주재임원은 그 윤무관과는 성질이 다르다고 나는 판단하였고, 박사장의 인사에 정면으로 반대하고 나선 것이었다....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나의 잘못된 판단이었다...거대 조직에서 인사권자의 인사명령에 왈가왈부하는 것 특히 현 지사장이 반기를 든다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더군다나 김이사는 유배시키려고 주재임원으로 보냈는데, 사표내지 않고 버티는 형편이었는데, 내가 거기에 대고 ‘지사장’ 자리를 던져버렸으니, 사장 입장에서는 생각지못한 돌발변수를 만난 것...김이사는 이제 주재임원이 아닌 ‘지사장’자리를 차지ㅇ하게 된 것...보통사람이라면 주재임원이 강등되어 ‘지사장’보임을 맡게 되니 또 사표를 쓰라는 것이었는데, 낯짝두꺼운 그는 못들은 척 ‘지사장’자리를 받아들이고는 일은 하지않고 놀기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나갈 때 나가더라도 실컷 방콕엥서 골프나 치고 잘 놀고가겠다는 심산이었다..아, 나는 순진하였고 그는 닳고닳은 처세의 달인이었다...지금생각하면 후회막급이요, 박사장에게도 대단히 미안한 일을 내가 저지르고말았다. 나는 더 참고 때를 기다렸어야 하였다...

(소년등과는 말년이 좋지않다하였는데..꼭 내가 소년등과했다는 것은 아니고, 좀 부연해서 설명하자면, 차장직급으로 부장급 또는 이사급 방콕지사장에 선임될때만 해도, 거칠것이 없이 전사원들의 부러움을 사고 방콕에 부임했지만, 결과적으론 본사경영진과 주재임원 문제로 갈등이 커지고, 또 타협을 모르는 내 개인성격특성상 좌충우돌하다 임기를 연장하지않고 조기본사복귀를 요청하기 이르렀으니, 세상사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잘 나갈 때 조심하고 어려울때라고 미리 좌절하고 포기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3년여 짧은 방콕지사장을 하면서, 한동안 깜빡 잊고지냈던 ‘겸손해야함’을 모르고 기고만장한 결과가 체중이 10여 키로나 빠졌으며, 부장진급이 계속 누락되게 되었으며 급기야는 조기 본사귀임이라는 중견간부사원으로서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하늘은 미리 시련을 주어서 누구를 더크게 쓰기위하여 그를 단련시킨다 했는가?’...)) 그러나 값지게 얻은 것은, 내 혼자 힘으로는 큰일을 도모할 수 없으며 주변의 도움을 받지않고는 결코 하고자하는 일을 얻어낼 수 없다는 사실을 크게 배웠다는 것...본사복귀후, 조직개편 와중에 나는 ‘명퇴’를 요구하였고, 그에 따라 회사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본인이 희망하니’ 대기발령을 내지 않을 수 없었고...하늘이 도왔는지 또 우여곡절끝 ‘농산사업부장’으로 다시 살아나 제2의 황금기를 누리게 된다...(후술)...우리네 인생, 알다가 모를 일이 너무 많다. 참 변화무쌍하고 재미있기까지 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