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곧 방콕지사장 발령 그러나, 기나긴 슬럼프, '중세의 암흑기?'...흐흐흑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29. 22:21

/ 곧 방콕지사장 발령 그러나, 기나긴 슬럼프, '중세의 암흑기?'...흐흐흑

내가 방콕지사장으로 발령났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믿어지지않았다.

언젠가는 내가 가야할 자리이긴 하나, 가능하다면야 미국지사쪽이나 일본지사를 내심 희망하고 있었는데 의외의 인사였다.

나의 직급은 아직 1년차 차장일뿐더러, 해태상사에서 방콕지사장의 위치는 여느 지사보다 무게가 나가는 곳이고 당시 한.태구상무역의 중심축이었다. 실제로 이사급이 보임되고 있었다.(한주0이사, 태국산옥수수 사업때 잠시 언급했던...)

물론 해태그룹 고위층에서 흘러나오는 인사전후 이야기는 많지만, 그중하나는 부장급으로 마땅히 적임자가 없기도 하고, 주태 한국대사관의 무관출신인 윤종0이사(예비역 대령)가 현지주재하기를 희망하는데, 여러이유 때문에 지사장자리를 줄 수는 없으니...비록 신참 차장이지만 실무능력이 출중하고 대내외 신뢰가 많은 ‘박차장’이 적임자라는 것.

 

미국지사나 일본지사 자리를 기다리고는 있었지만, 방콕지사장 자리는 아무나 가는 곳이 아니므로 나는 반대한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 날로 강화도 마니산으로 갔다. 그날 어찌나 추운지 계단 하나하나를 올라가는데 쉽지않았다. 마니산 정상에 올라 동서남북 하늘을 우러러 굳은 다짐을 하였다.

‘건강하게, 무탈하게 무사히 임기를 마치고 돌아오자’

 

약관 35세에, 해태그룹의 최전선, 해태상사의 최고요직인 방콕지사장이 되었으니 부담이 아니가진 않았지만, 내가 맡고있던 업무의 대부분이 태국산 농산물 사업이 주였으므로 업무적으로는 크게 부담될 것 없었지만...한.태구사무역의 다른축인 한국산비료등 공산품사업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공산품분야도 담당과장이 있으니 실무적으로는 내가 크게 관여할 바는 많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바로 혼자 방콕으로 떠났다.12월초?

(해태상사에서는 해외지사요원을 현지로 파견할 때는, 가족은 지사요원보다 최소 3개월 이후에 보낸다...해외주재수당이 나오고, 가족수당.주택수당.자녀학자금수당등이 나온다. 물론 본사월급은 월급대로 나온다. 그래서 직원들은 해외지사발령받기를 원한다...거의 월급이 2배로 나오는 셈이니...방콕은 한국보다 물가가 싸니, 저축할 수 있는 돈이 더 많게 되니 직원들은 방콕지사근무를 선호했다.)

(나는 부임하자마자, 여러 문제에 봉착했다...석연치않은 일로 전임 지사장 한지사장이 인수인계를 해주지않고 본사로 귀임해버렸다...대사관의 윤무관과의 관계설정도 본사의 확답이 오지않아 미루어졌다. 한.태구상무역은 끝물이었고 마지막 클레임처리만 남겨두고 있었다. 겉으로는 화려하였지만 그 끝은 소리없이 시끄러웠다...그래서 고참부장들이 방콕지사장직을 고사했구나 하는 생각이 그때서야 들었다...한때는 나도 본사로 복귀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할까 하면서, 가족들의 현지조인을 잠시 기다리라 하고 있었다...결국, 모든 것은 내가 끌어앉기로 하고, 가족들은 당초 예정보다 1달정도 늦은 3월?에 방콕에 왔다...짐은 역곡동신아파트의 한방에 몰아넣고, 농대선배이나 회사동료인 옆부서 황차장에게 헐값으로 전세주고 왔다.)

(우리집사람은 매월 내월급의 절반정도를 시골 어머니께 생활비로 보내드렷는데, 방콕지사로 떠나게 되니, 3년치 생활비를 한꺼번에 송금해드렸다고 하였다.

주재수당도 나오니 본사월급이 그대로 굳게 될 것이고 차제에, 돈이 항상부족하기만한 어머니에게 여유있게 목돈을 마련해 드린 것이었다...그 마음씀을 어머니는 이해하시는지 아닌지...철모르는 동생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내가 살 집은, 간단하게 생각해서, 전임 지사장가족이 쓰던 곳으로 결정하였다. 스쿰빗 소이38, 션싸인코트 4배드. 수영장이 있고 넓은 정원이 있는 현대식 3층건물이었다.

지사장용으로 볼보와 운전기사가 딸리고 식모까지 딸렸다.

본사에서의 사원이 누리기는, 부장급도 누리지못하는 특별대우였다. 해외지사장의 자리가 그러하였다. 태국이니 상대적으로 물가부담이 크게 없으니 외형적으로는 더 화려할 뿐, 특별히 다르지는 않았다.

 

나는 가족이 오기전 현지상황을 가능한한 많이 알아두어야했다.

그렇지만 한.태구상무역 뒤치다꺼리때문에 사소한 일상생활을 인계받기는 어려웠다.

년말년시가 되니, 다른 지사원들은 휴가모드로 들어가고...나는 홀로 쓸쓸해지고 말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에피소드 하나;

골프연습한다고 볼보를 끌고 연습장에 가는데...집에서 연습장까지 벌벌기면서 운전하니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줄...흠뻑 젖어 어쩔줄 몰라하다가 주차를 해야하는데 브레이크를 잘못밟아 해드라이트를 앞벽에 쾅!!!

서울에서 운전을 하지않고 방콕에 왔으니..운전대 방향도 다르고...그동안 장롱면허나 마찬가지인데...얼떨결에 고급차 볼보를 쾅 받고 말았으니...액뗌을 한 것인가 초구가 잘못 나간 것인가?

(그래서일까? 얼떨결에 시작한 운전, 얼떨결에 받아버린 볼보차...얼떨결에 시작한 골프연습.

나는 내마음대로 내식대로 골프채를 휘둘렀다. 렛슨프로에게 초보안내를 받았어야 햇는데 나는 내고집대로, 내 야구하듯이 휘둘러댔다. 잘맞기도 하고 전혀 잘 안맞기도 하고...나의 골프느 이렇게 시작되엇다.)

 

지금도 정말 아쉽게 생각되는 것은, 왜 전임지사장이 아무런 인수인계도 하지않고 바로 본사로 귀임해버렸을까? 보통은 3개월 최소한 1개월은 후임지사장과 함께 근무하면서 거래선들과 관련업무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인계해야 하지않는가? 그것이 기본아닌가?

해태 방콕지사는 해외자시이기도 하였지만, 스위스계열의 투자자와 함께 법인을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엇다.Suisindo Development...현지법인의 상세도 인계해주고 떠나야 옳앗다.

업무외.사업외..음식점. 골프장..술집..타종합상사. 대사관.코트라등등등...모두 식사까지 하면서 소개시킬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수인사 정도는 해주고 떠났어야 했다.

그런데...그는...말없이 그냥 떠났다.

나의 방콕지사장생활이 녹녹치 않을 것임을 알리는 예고편이었다.

(본사에서 태국산 농산물비즈니스로 승승장구하던 박차장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의 방콕지사 생활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요? 여전히 사업실적을 올리고 계속해서 승승장구하였을까요?

하늘은 그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했을까요?

하늘은 누구에게 나중에 크게 쓰일 자에게는, 미리 시련을 주어서 그를 단련시킨다 하였던가? 그가 어떻게 그시련을 맞이하는지 그 시련을 어떻게 마무리 지어가는지 보면서 그를 평가한다고 하였다...그에게 시련을 주려는가? 기대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