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주안탈출기...‘나의 수호신이 나를 깨워 불러냈다. 이제 그만 주안을 떠나라!!!’
주안주공임대아파트에 산지 1년이 지났을까 2년이 지났을까?
1981년? 1982년? 어느 날...
나는 주안을 이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어왔다.
평소 나는 소심하여 생각이 많고 무엇을 결정하기까지 고심하고 고민하지만, 때로는 생각이 들어오면 나는 바로 밀어붙이기도 하는 돌쇠형. 때로는 이중형성격.
나는 퇴근길 늦은 시각에 역곡역에서 내려 지금의 성신여대쪽에 연립주택 분양사무실을 찾았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안내하는 분양가격으로 계약을 하고말았다. 1500만원? 2000여만원?
주안임대아파트를 팔면 400만원 정도? 400여만원에 샀으니 그동안 임대료 지급한 것을 감안하면 임대료 낸만큼 손해를 본 것이다.
그러나 주안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니 이것저것 따져서 뭐하겠는가?
아침저녁 지옥철에 시달리는 것과 출퇴근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 일단은 주안을 나와야겠다는 원칙이 섰다.
다행히 무슨 ‘중장기주택부금’에 가입한 통장이 있었다. 집사람이 혹시 나중 집살때 쓰일지 몰라 박봉을 쪼개고 쪼개서 들어두었다는 것.
거금 800만원이 저리융자로 역곡 대흥연립주택25평을 사는데 큰도움이 되었다.
집값의 거의 절반을 은행융자를 이용하게 되었는데, 주안을 탈출한다는 가뿐함까지 더해져 왠일인지 전혀 부담이 되지않았다.
그런데 막상 저질러놓고 보니 금방 은행융자금은 크게 문제가 되지않게 되었다.
소위 인플레이숀이란 것이 그렇게 무서웠고 대단했다. 1년이 지났을까 말까? 집값이 거의 2배로 뛰게 되었고, 다시 역곡동신아파트로 새집으로 이사하면서 은행융자는 눈녹듯이 어디론가 사라져주었고, 나는 은행융자없이 역곡동신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내가 해태상사 입사후 초고속승진하면서, 과장이 되었을때이니 1983년? 연립주택을 팔고 조금의 은행융자를 새로이 조금 보태니 동신아파트 25평을 살 수있었다. 거의 3000여만원 수준? 아직 주안에 남아있었다면 나의 셋방낭인살이가 다시 살아날 판이었다. 그런데 운좋게도, 운명의 여신이 나를 깨워 주안에서 탈출케 하고...800만원 중장기융자금으로 연립주택을 사게하고...또 얼마후 이젠 반듯한 25평 안정적 서민주거아파트를 내 소유로 만들었으니 얼마나 잘된 일인가?
(방3개 거실1, 우리 네식구 사는 데는 호화주택이었다. 한때는 방하나를 성신여대생들에게 월세를 주기도 하였고 나중에는 서울대 보건대학원에 다니는 막내동생이 살았다.)
빈주먹 소위 붕알하나로 서울로 와서, 물론 아직 서울시민은 못되었지만, 이만큼이라도 내집을 마련했으니 대견스럽고 대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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