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나의 이사 변천사; ‘결혼후, 20년이 다 되어서야 나는 서울시민이 되었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22. 21:28

/나의 이사 변천사; ‘결혼후, 20년이 다 되어서야 나는 서울시민이 되었다.’

(1970년 상경후로 따지면 30년?)

(마포 망원동전세단칸방-화곡동전세-역촌동전세단칸방-인천주안임대아파트13평-부천역곡대흥연립25평-부천역곡동신아파트25평-서초동지하전세2칸-분당신도시아파트50평당첨-서초동빌라90평)

인천주안에서 역곡 대흥연립주택으로 이사한 것은 절대적으로 잘한 일이 되었다. 어쩌면 그것도 운명의 장난, 아니 장난의 운명일까? 부동산가치로 거의 장래희망이 보이지않고..중국향 특수? 소가 웃고말았던 일...출퇴근시간까지 고려하면, 백번천번 잘빠져나온 것이었다...//또 얼마후, 연립주택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또 곧 실행에 옮겼다..그때는 이제 서울로 진입해야 하지않을까해서, 과천으로 갈까 목동으로 갈까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결국은, 결과는 조금 아쉬움이 남긴하엿는데.. 같은 역곡인 동신아파트로 또 이사를 가게 되었다..우리가 과천으로 이사했다면 또 어떻게 되었을까? 경제적 투자가치로는 더 좋았을 것이지만 주변친구들과의 위화감 때문에 더 괴로웠을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경제적으로 조금 손해를 봤다해도 역곡에 주저앉은 것이 더 나았을까? 모르는 일 그것은 알수 없는 일 아닐까? 또 운명?

그리고 나는 역곡동신아파트에서 1986년 10월, 방콕지사 근무로 잠시 떠나있다가, 1989년 본사 귀임후 신도시 분당아파트가 로또복권당첨되기까지, 1991년 입주때까지, 잠시 1990년 서초동 지하전셋방으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다...나의 변화무쌍하던 젊은날초상이 담긴 역곡생활이었다...

(1989년 본사 귀임후, 서울로 돌아오니 역곡아파트 가격으로는 서울 어느곳 어느집도 살 수가 없었다. 심지어 목동 전셋값 대기도 어려웠다. 그만큼 서울집값은 토까뜀을 하고 역곡집은 거불이걸음 아니 제자리걸음을 하고있었다. 낭패였다. 어찌할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세상, 부동산광풍..돈먹고 돈먹기..평범한 월급쟁이, 일만 열심히 하는 나같은 소심한 먹물모범생은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내가 이재에 밝았다면, 역곡동신아파트를 팔고 서울 어디에, 목동이나 강남에 아파트를 사놓고 방콕지사 근무를 했어야했다. 그런데 세속적 셈이 느린 우리부부는 역곡집을 선배사원에게 싼값에 전세주고 3년을 묵혀두었더니 그 사이 서울집값은 토끼뜀을 하고 역곡집은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었던 것. 어찌할 것인가? 나의 힘밖의 일인 것을...내가 어찌 콘트롤할 수 있단 말인가? 속 상하였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첫째형민이 중학교입학할 나이가 되자 더 걱정이 되었다. 역곡에서 중학을 보내자니 앞날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족 모두가 서울로 이사갈 형편은 되지않고, 결단을 내려 형민의 강남8학군 중학교입학을 겨냥하고 서초동 이모집에 하숙을 시키기로 하였다...생각지않은 두집살림. 1년여 두집살림을 하다가 둘째 형보가 다시 중학을 다녀야했으므로 우리는 우리돈에 맞추어 서울서초동에 반지하전셋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싼값의 전셋집을 계약하고 보니 반지하였다...반지하였으니 그값에 전세가 가능했지 지하가 아닌 새집이었다면 그값에 전세가 가능이나 하였겠는가 하며 우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의 순진함에 큰박수를 보내고 크게 웃어제꼈다... 비록 지하전셋방이었지만 우리의 서울 진입을 축하하면서...하하.

(서초동과의 인연은 끈질기고 길다...아이들의 이모가 서초동꽃마을에 자리를 잡고..형민이 그집에서 하숙을 하고...주위가 익숙해지니, 지금의 베스티빌 602호 새집을 덜컥 사들이고 말았다. 아이엠에프 엄중한 때에 나의 창업이 대박을 터뜨리고, 돈가뭄에서 큰해방을 맞이하고...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이 저녁늦게 회식을 하면 분당까지 들어오지않고 서울의 친구들집에서 동가숙서가식하는 것이 보기 싫어서...에라이썅 집한채 더 장만해버리자해서...신도시분당의 50평 한양아파트는 그대로 둔채, 1999년, 서초동에 미분양된 빌라를 사서 지금 살고 있는 것...1978년 신혼살림을 망원동 전셋집에서 시작했으니 20여년이 지나서야 내집을 가진, 진짜 서울시민이 되었다(광주에서 최초 상경한 1970년부터 기산하면 거의 30년만 아닌가? 보성촌놈이 서울의 중심부 강남땅에 자리를 잡게 되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하늘에 계신 우리아버지어머니는 어떻게 생가하실까? 우리셋째 잘했다 대단하다 하실까.)

이것도 짜여진 운명인가? 운명의 신이 있다면 이또한 그의 작품인가?...인천주안13평임대-부천역곡 연립24평-역곡동신아파트25평-서울서초동반지하전세-분당신도시50평-서초동빌라 90여평.===99년 IMF 한파가 몰아치던 와중에, 부동산경기도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댈 때 마침 서초동 아이들이모집에 놀러왔다가 미분양된 빌라가 있어서 그때 시세로는 싼값 6억원에 샀다. 현시세는 15억여원?

당시 개포동50평 아파트를 살까, 삼풍50평 아파트를 살까 고민고민하다가, 새집이고 이모집에 가깝고 또 넓고, 촘촘히 엮여사는 아파트보다는 쾌적한 타운하우스형 빌라가 선호되는 시절이라, 지금 이집을 선택하였는데, 부동산가치로는 큰재미를 보지못하였다.

물론 매입때 가격보다는 많이 올랐지만, 요즘 강남아파트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데 이집은 제자리걸음. 돈과 여자는 가만히 놔두라 하였지요 달라들면 도망가느니...어디 돈이 내손에 있는 것이 내마음대로 되는 것인가. 그거야말로 하늘의 뜻. 먹고살 돈은 있으니 그 이상은 크게 신경쓰지 않고 살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