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행 총알택시...‘목숨은 하나 그러나 시간은 금..하나뿐인 목숨을 하늘에 맡기고..’
===‘박과장, 어젯밤 어떻게 된거야?’
일본땅콩수출사업이 날로 번창하자 일본바이어들이 서울에 자주 들어왔고, 그들이 오면 나는 최고급음식과 술을 대접하였다.
그때의 한국형 수출사업 팻숀이었다. 인사동요정에서의 외국손님접대는 수출제일주의의 준비된 코스. 나 개인의 호불호를 따질 겨를이 없었다. 술을 좋아하지않고 일본을 극도로 싫어하며 더군다나 성놀이를 숨은 목적으로 오는 일본바이어들이 탐탁하지 않으나 내 개인의 형편은 문제가 되지않았다.
일본인접대는 우리박부장 아니 우리 박상무님께서 책임자였고 나는 비서역할로 그를 보좌하였다. 인사동요정에서 비공식상담에 나는 비서겸 통역노릇을 하며 그를 보좌하였다. 그는 꼭 나를 데리고 요정에 갔다. 그도 술을 즐기지 않았지만 사업상 좋아해야 했으며, 세상잡사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매사에 박학다식한 그는 술좌석을 지배하였다. 나는 그를 졸졸졸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새로운 것, 내가 가지고 있지않은 것들을 하나하나 눈으로 익히며 몸소 겪으며 배워나갔다.
술자리가 끝나가고 자리가 정리되면 거의 통금시간 가까이. 일본바이어와 그날의 파트너를 호텔까지 보내는 것이 나의 마지막 공무.
그 일을 끝내고 인천주안까지 가야하는데 서울은 이미 심야. 시내 호텔에서 영등포까지 택시 그리고 다시 주안까지는 자정넘어 심야의 ‘총알택시’...4인합승으로 정말 총알처럼 달린다..총알택시값이 얼마인지 기억이 없지만 네사람이 나누어내니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는 기억이 있다. 다만, 정말 총알처럼 달리니 하나뿐인 나의 목숨은 하늘에 맡긴다는 형국. 달리다보면 반은 잠들어있고 반은 달리고있는 비몽사몽의 30여분? 총알택시는 날 주안주공아파트 근처에 내려주고, 인천종착지까지 또 달려 사라진다...
그러기를 1년여? 2년여?
인천주안을 이젠 떠나야할때가 아닌가 불현 듯 생각되었다.
일본바이어 접대 뒷이야기 하나;
여느 날처럼, 어젯밤 총알택시를 타고 인천주안집에 들렸다가 또 새벽같이 지옥철을 타고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어젯밤 한 두세시간 자고 나왔을까?
아직 술이 덜깬 상태로 출근하였는데, 우리박상무님실에서 소란소란 큰소리가 나왔다. 아마도 재일교포 하라누마 박도영사장의 아침 문안인사전화였는데 뭔가 또 잘못된 모양. 매사 그 재일교포 박사장은 티를 내고 타박을 자주했다. 일본바이어들을 이끌고 들어오는 공이야 있지만, 회사직원들을 손안에 넣고 휘두르려 하였다. 양주같은 것으로 낚시질을 하려하는데 나는 질색하였다. 하나도 마음에 들지않았다. 그또한 그런 나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내밑의 나대리를 찾아 볼일을 보곤하였다. 그런 그를 나는 모른체 하며 어쩌면 공존공생을 도모하고 있던 차였다. 그런 박사장이 아침일찍부터 나의 보스인 박상무에게 뭔가 고자질하고 있었다.
우리박상무님; 박과장, 어찌 된거야?
나박과장; .....???? 뭐가요?
박상무; 어젯밤 아가씨를 어떻게 했어?
입튀어나온나; ????@@@(뭐가 잘못된 거쥐???)
자초지종을 들어본즉, 호텔방까지 함께 따라간 우리의 애국아가씨 가라사대,
‘나, 어느대학의 재학중인 착한 여자인데요...남동생 하나 있어 그의 학비를 벌어야하는 형편, 알아들어TTman이까, 나 죤나게 착한 녀라구요강조강조...그런데요 나 착한녀 지금 콘디숑구가 좋지않으니, 새벽에 일어나 귀하 원하시는 고것을 해드리오리다 하였단다.
나이든 60대할아버지격 일본바이어님; 별수 없지비..차칸녀자 그것 보려면 새벽까지 기다려야쥐...새벽에 생각이 들어 그일을 하려고 눈을 떴더니...아글씨말이시...고차칸아가씨가 눈에 보이지 않더라는 것...말하자면, 줄행랑 뭐빠지게 도망쳤다는 것.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서는 어찌나 통쾌상쾌유쾌한지, 10년 체증이 내려간 듯 하였다.
그런데 어찌할 것인가 현실은 냉엄한 현실이 있는데요...
도망간 차칸아가씨를 닭쫓던 개신세가 되었든 일본인바이어는 그날밤의 세세한 사정을 그 재일교포 박사장에게 보고하였고 그는 다시 한국에 오지 않았다.
(그는 나리따공항이 생기기전 그곳 찌바현의 대지주, 땅콩밭 주인이었는데, 하네다공항에서 나리따로 국제신공항이 생기면서 하루아침에 떼부자거부가 된 것. 나리따 홀리데인인호텔의 대주주. 그래도 그는 아직은 땅콩사업을 하고 있었다.
내가 일본출장을 가면 나리따공항에 그의 아들을 내보내 나를 픽업하고 나리따의 홀리데이인 고급호텔에 묵게하고...모든 숙박비를 대신 결제해주면서...한국의 씩씩하고 잘생긴 나 젊은이를 그 아들에게 소개하면서 흐뭇해 하였던 그 바이어였는데...차칸아가씨가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새벽같이 도망쳐버렸으니...웃고픈 사연이야기.)
그 이후, 그 인사동요정에 우리 박상무님은 다시 가지않았다...자본주의 무서운 현실, 돈이 돈을 낳으면서...돈.돈.돈 돌아가는 세상이었다. 수출바이어를 골탕먹였으니 그 댓가를 치르게 한 것. 자본주의의 냉엄한 약육강식 현장이었다. 그 속에서 나도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부조리한 사회를 모두가 공생하는 합리적 사회로 만들어야하는데 나에게는 힘이 없었다. 순진한 생각만 있을 뿐, 가진 것은 젊음뿐, 무기가 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면서 점점 그 자본주의 사회에 빠져들고 익숙해져갔다.. 약육강식 정글속에서...약자처지에 또 강자를 꿈꾸게 되었다. 모순덩어리 사회, 이율배반의 자본.
(또다른 에피소드 하나더; 가끔, 가뭄에 콩나듯...그렇게 요정접대를 하다보니, 생각지않은 경우를 만나게 되는 수도 있었다. 회사의 비용은 일본바이어까지..박상무님도 사업상 요정출입을 하는 것이지 파트너를 어찌해보겠다는 것은 아니었고...나는 확실한 빈호주머니 순월급쟁이. 무슨 돈이 있겠는가? 돈이 따르지않으면 요정아가씨는 접대가 끝나는 순간 모든 것이 끝. 다른 이성관계가 들어갈 틈이 없다. 특히 월급쟁이하고는...그런데 가끔 예외가 생긴다. 그래서 재미있는 것이 사람사는 세상이라 하였지요...그들의 아픈 생활에 나의 숨겨진 슬픈사연이 겹쳐진ㄴ 때가 있는지, 그들중 누군가가 가끔 나를 그 예외의 주인공으로 픽업하여, 가끔 딴세상을 구경시켜주고 딴맛을 맛보게 해주었다...살맛나는 세상, 신나는 세상..선과 악이 혼재되어있는 세상, 명암이 또 함께 살아있는 세상, 참 재미있는 세상. 나는 완죤모범생이긴 해도 까끔까금은 일탈을 하기도 한다. 시치미화끈하게 떼고 범생탈출 뒷골목장난꾸러기진입할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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