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페이터의 산문`/이양하(2/4)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5. 11:24
4-2

사람의 칭찬받기를 원하거든,

깊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

그들이 어떠한 판관인가,

또 그들이 그들 자신에 관한 일에 대하여 어떠한 판단을 내리는가를 보라.


사후에 칭찬받기를 바라거든,

후세에 나서 너의 위대한 명성을 전할 사람들도,

오늘같이 살기에 곤란을 느끼는 너와 다름없다는 것을 생각하라.


진실로 사후의 명성에 연연해하는 자는,

그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의 하나 하나가,

얼마 아니하여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기억자체도 한동안 사람의 마음의 날개에 오르내리나,

결국은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네가 장차 볼 길 없는 사람들의 칭찬에 그렇게도 마음을 두는 것은 무슨 이유인고?

그것은 마치 너보다 앞서 이 세상에 났던 사람들의 칭찬을 구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참다운 지혜로 마음을 가다듬은 사람은,

저 인구에 회자하는 호머의 싯구 하나로도,

이 세상의 비애와 공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나뭇잎과도 흡사한 것.

가을 바람이 땅에 낡은 잎을 뿌리면, 봄은 다시 새로운 잎으로 숲을 덮는다.

잎, 잎, 조그만 잎.

너의 어린애도, 너의 아유자도, 너의 원수도,

너를 저주하여 지옥에 떨어뜨리려 하는 자나,

이 세상에 있어 너를 헐고 비웃는 자나,

또는 사후에 큰 이름을 남길 자나,

모두가 다 한 가지로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

그들은 참으로 호머가 말한 바와 같이 봄철을 타고 난 것으로,

얼마 아니 하여서는 바람에 불리어 흩어지고,

나무에는 다시 새로운 잎이 돋아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공통한 것이라고는

다만 그들의 목숨이 짧다는 것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마치 그들이 영원한 목숨을 가진 것처럼,

미워하고 사랑하려고 하느냐?

얼마 아니 하여서는

네 눈도 감겨지고,

네가 죽은 몸을 의탁하였던 자 또한 다른 사람의 짐이 되어

무덤에 가는 것이 아닌가?


때때로 현존하는 것, 또는 인제 막 나타나려 하는 모든 것이

어떻게 신속히 지나가는 것인지를 생각하여 보라.

그들의 실체는 끊임없는 물의 흐름,

영속하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 바닥 모를, 때의 심연은 바로 네 곁에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 때문에 혹은 기뻐하고,

혹은 괴로워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냐?


무한한 물상 가운데 네가 향수한 부분이 어떻게 작고,

무한한 시간 가운데 네게 허여된 시간이 어떻게 짧고,

운명 앞에 네 존재가 어떻게 미소한 것인가를 생각하라.


그리고,

기꺼이 운명의 직녀 클로토의 베틀에 몸을 맡기고,

여신이 너를 실삼아 어떤 베를 짜든 마음을 쓰지 말라.


공사를 막론하고 싸움에 휩쓸려 들어갔을 때에는,

때때로 그들의 분노와 격렬한 패기로 오늘까지 알려진 사람들---

저 유명한 격노와 그 동기를 생각하고, 고래의 큰 싸움의 성패를 생각하라.

그들은 지금 모두 어떻게 되었으며,

그들의 전진의 자취는 어떻게 되었는가!

그야말로 먼지요, 재요, 이야기요, 신화, 아니 어떡하면 그만도 못한 것이다.

일어나는 이런 일 저런 일을 중대시하여,

혹은 몹시 다투고 몹시 화를 내던 네 신변의 사람들을 상기하여 보라.


그들은 과연 어디 있는가?

너는 이들과 같아지기를 원하는가?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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