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막히면 뚫고, 궁하면 또 통하게 된다.(6)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3. 22:26
---해안선을 따라 행남등대까지

울릉도 일주 유람선 여행을 마치고 나니 시간이 어중간 하였다.
점심시간까지는 1 시간여, 육로관광이 시작되는 2시까지는 3 시간 여, 시간활용이 조금 애매하였다.
점심을 내 비용으로 계산한다면 3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가다가 어디론가 다음 갈 길을 정하면 어떨까, 우리 부부는 모처럼 의기투합되었다.

해안선을 따라 절묘하게 길을 만들어 놓은 것도 대단하였지만, 곳곳에서 만나는 깎아져 서있는 절벽들과 그 사이에 넘치는 파랗고 또 파란 바닷 속 풍경, 그것은 아름다움이었다.
아쉬운 것은 더 이상 해안선을 따라 걸을 수 없게 된 것, 지난 여름의 태풍‘매미’는 아직도 그 피해의 크기를 이곳에 남겨두고 있었다.
매미가 길을 자르고 날아가 버린 것, 지금 한창 복구공사가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우리같은 관광객들에게는 여간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막히면 뚫고 길이 없으면 새로 만들면 되고, 궁하면 또 통하는 법,
‘행남등대’ 가는 길,
관광객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었던 까닭일까?
마지못한 듯 수줍게 한 쪽에 치우쳐 비켜 서 있었다.

가파른 시멘트 계단길이 떡 버티고 나타났다.
뙤약볕에 가파른 길을 걸어올라가기가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시간 떼우기가 마땅치 않아서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얼마 가지 않아 땀은 비오듯 쏟아지고 다리는 힘들다 아우성이고, 괜히 시작했구나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조금만 더 가보자, 조금만 더 가보자 하였는데, 시멘트 계단길이 끝이 나고 이제는 다른 길이 나왔다.
전혀 새로운 흙길이 시골색시처럼 수줍게 단장하고 있었다.
꼭 누군가가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듯 하였다.

해송들이 울창하여 숲은 꽉 차 있었고, 나무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바다는 말없이 손짓하는 듯 하였고, 바로 저기 발아래는 검푸른 바닷물이 숲을 건들고 있었고, 철썩대며 건드는 소리가 귓가에 시원하게 들려왔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포근한 느낌이라니, 산 속의 흙길에서만 느껴지는 것이려니, 바로 발밑이 바닷물이 와 닿는 울릉도만의 특별함일 것이다.

이번에는 대나뭇길.
대나무가 길 양쪽에서 서서 열병하듯 환영을 하고, 아예 굴을 만들어 손님을 맞이한다.
어느 나라에 손님을 맞으면서 자연적 ‘벰부터널’을 만들어 환영을 하는가?
넋을 잃게 하는 풍경에 디카의 샷터를 누르고 또 눌러댔다.

2 키로미터, 1 시간 여 걸려서 찾아낸 행남등대는 썰렁 또 썰렁하였다.
동화 속에서나 소설 속에서의 등대는 상당한 기대감이 있고 어떤 일이 금방 일어나는 상징성도 있고, 잃어버린 길을 찾아주는 희망이 있는 것인데, 이곳 등대는 그냥 뙤약볕에 몸체를 홀라당 들어내고 잠자고 있는 듯 하였다.

오던 길을 되돌아 가는 것이 너무 상투적, 반대 방향으로 넘어가기로 하였다.
저동항에서 생선회를 먹고 택시로 도동으로 다시 넘어가면 오후 일정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었다.

저동항 방향으로 길을 들어서니 얼마 가지 않아서 확트인 시야가 펼쳐졌다.
눈 앞에 저멀리, 아니 바로 발아래 있는 것처럼,죽도와 관음도 촛대바위가 나타났다.
행남등대에서는 보이지 않던 절경이 이곳에서는 눈안에 꽉 들어찼다.
디카에 담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갈 수가 없었다.

드디어 길을 단장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확인되었다.
저동으로 내려가는 좁은 숲길에 일열로 늘어 앉아서 길을 온통 차지하고 점심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가는 길을 막았다고 어찌나 미안해 하며, 점심을 함께 먹고 가라고 사정을 하는 바람에 오염되지 않은 인심을 만날 수 있었다.
힘든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저동항의 회센터에는 손님들이 별로 없었다.
오징어철이 아직 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요즘 생선회감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모듬회를 시켰더니 오징어와 쥐포회를 떠서 내놓았다.
매운탕이 알맞게 맵고 많이 시원하게 얼큰하였다.

도동항으로 넘어가는 택시들이 줄지어 서있더니 우리가 점심을 먹고 나오니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도동항에 배가 들어오면 모든 택시들이 그쪽으로 몰린다는 것.
마침 들어오는 택시를 먼저 기다리던 손님들과 함께 합승을 하였다. 울릉도까지 와서 합승을 하다니 세상은 참 재미있구나 싶었다.

오후 육로관광 시작 2시에 딱 1 분전.
가이드는 벌써 오후 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여행은 이렇게 때로는 자유형과 맞춤형이 알맞게 섞이며 얼추 짜맞추어 가는 재미도 있으면 더 좋은 것 아닌가?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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