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어느 부적절한 만남(5)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3. 22:22
----울릉도 일주 유람선에서
7월 9일,금,제 2일째,
울릉도 해안 일주 유람선 여행,
오전 9시부터 2시간 여.

우리를 반기는 것은 하얀 갈매기 떼.
왠 갈매기가 이렇게 많은가, 대한민국의 갈매기들이 모두 나를 환영하러 이곳에 모였나 잠시 의아해 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금방 확인되었다.
유람선에 탄 관광객들이 손에 손에 먹을 것, 특히 새우깡이나 마른 오징어 조각을 내밀면 어김없이 달려들어 낚아채 가고 있었다.
저러다가 배에 부딪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인데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어떻게 해치우는지 모를 정도로, 겁도 없이 날아다녔다.

자연과 인간의 만남인가?
새우깡 하나가, 찢어진 오징어 조각이 갈매기들과 사람들을 이어주고 있었다.
아줌마들이 신이 났고 할머니들이 더 즐거워하고 있었다.
유람선의 열려진 창문 곳곳에서는 때아닌 나이든 여인네들의 손에 갈매기 떼들이 입을 맞추는 진풍경이 울릉도 도동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느 나라 대변인 말을 빌리자면,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서울도 아닌 울릉도에서, 그것도 젊지도 않은 중년의 아낙네들이 심지어 꼬부랑 할머니들까지, 사람도 아닌 날짐승 갈매기 떼들과, 그것도 밤이 아닌 대낮에, 한 사람도 아니고 수많은 여인네들이, 한 마리도 아니고 수많은 갈매기 떼들과, 한 번도 아니고 수십번씩이나, 손에 입을 맞추다니, 이런 부적절한 관계가 어디 있단 말입니까? 저는 이해할 수도 없었으며 다만 신기하고 사랑스럽기만 하였습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효도관광 그리고 ‘더늦기전 세상보기’ 계모임관광객들이 유람선을 메우고 흔들고 있었다.
파도따라 흔들리고 풀어진 ‘자유’와 눈에 보이는 ‘행복’으로 마음이 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유람선 가이드의 안내설명은 뒷전이 되고, 자연스레 끼리끼리 둘러앉아 술잔이 돌고, 또 배가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새 유람선은 뱃고동 대신 뽕짝을 틀어대는가 싶더니, 여기저기 사람들은 손뼉을 치고 노래를 부르고 급기야 일어서서 몸을 흔들어대는 것이 아닌가?
춤추고 노래 좋아하는 민족이라더니, 누가 어떻게 소리치지도 않았는데 저렇게들 즐거워할 수 있을까?

정말 자유가 무엇이며 행복이 무엇인가?
편하고 즐거우면 되는 것 아닌가?
손뼉은 못쳐도 노래는 부르지 못해도 더군다나 일어서서 춤을 출지는 몰라도, 처음 만나는 그들의 즐거움을 보면서 나도 ‘자유’와 ‘행복’을 느꼈노라.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뭐 별 거인가?
갈매기들과 새우깡으로라도 이야기하고, 또 귀에 익은 뽕짝이 나오면 그냥 일어서서 춤을 출 수 있다면 그것이 자유이고 행복 아닌가?
코끼리 바위, 거북바위, 삼선암, 죽도, 관음도, 송곳바위 등 해안선을 따라 안내되는 관광명소들은 그 다음 다음일 것이다.

갑자기 웅성웅성,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른다더니, 벌써 예정된 2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 모양이다
너도나도 신발을 집어들고 일어선다.
노래 부르며 놀 때와 내릴 때가 너무 다르다.
우리들의 자유와 질서는 서로 다른 주제인가?


놀 때의 그 자연스러움으로, 내릴 때도 자연스럽게 천천히 기다리면서 내리면 더 좋으련만

누가 뒤에서 쫓아오는지, 빨리 내리면 황금덩어리를 얻는지

모두들 무엇에 최면에 걸린듯 서둘러 입구로 몰리는 것이었다.



이럴때 제일 난 난감해진다.

같이 서둘러야 하는가

혼자서 도 닦는 사람처럼 초연해야 하는가

괜히 혼자만 '따' 된 것 같기도 하고, 괜히 혼자만 '도' 튼 것처럼 하는 것 같아

이래저래 난감하기 이를 데 없게 되는데, 바로 이 경우를 울릉도까지 와서 또 만나게 되었으니, 짭짭하였다.



자유와 질서는 함께 어울릴 수 없는 것인가?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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