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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알아야지, 보여야지, 면장을 하지(7)---`디카` 유감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3. 22:30
유람선을 내려 해안을 따라 가면서부터 디카의 샷터 누르고난 느낌이 조금 이상하였다.
'되돌아보기'를 하였는데 계속 같은 사진만 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좋은 경치가 나오면 폼을 잡고 또 눌러댔다.
디카의 창에 뭔가 깜박깜박 움직여도, 뭔가 잘못되었나 조금 찝찝하였지만 계속 눌러댔다.
여행에서 남는 것은 나중에 사진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혹 건전지 용량이 부족할지 모른다, 혹 필름용량이 부족할지 모른다, 우리집 큰돼지넘이 용돈을 투자해 특별'옵션'으로 하였으니, 무슨 큰 걱정이 있을 것인가, 하였다.
우리는 대범하게 넘기고, 사진만이 남는 것 하며 누르고 또 눌렀다.

지난 방콕 출장때 어디에 디카를 놓고 잃어버리고 와서, 그동안 필요할 때 증명사진을 찍지 못하고 참아왔었다.
그래도 역사에 남을 울릉도 여행인데 어찌 카메라가 없으면 되겠는가, 또 잃어버리드래도 하나 사야지,
삐적대는 큰돼지넘을 불러,비싸도 좋으니, 제일 조작이 간단한 걸로, 최신 모델로, 하나 사오라 하였다.

그는 기계에 대한 애비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는 터, 주문대로 조작이 제일 편하고 간단한 걸로, 거기에 반무제한 필름에 무제한 건전지까지 더하여, 자식된 도리를 다하였더라.(우리는 지난 동유럽 여행때 필름과 건전지를 제때에 제대로 갈아끼우지 못하여 낑낑댔었음을 그는 안다.)
간단한 데몬스트레이숀과 리허설까지 마치고, 울릉도로 출발, 우리는 시간만 나면 찍었다.

그런데 앗뿔쌋,
깜박깜박한 것은 뭔가 잘못될지 모르며 또는 이미 잘못되었음을 알리는 것.
아무리 봐도 그냥 무엇이 깜박거리고 있을 뿐, 무엇을 말하는지 보이지 않아 알 수가 없는데, 뭔가 모르게 찝찝해지기 시작, 일행 중 유일한 신세대인 여대생딸에게 한번 봐달라 하였다.

'용량 오바래요'
'용량 오바라니요? 무제한 건전진데'
'건전지가 아니고 필름이'
'필름도 거의 무제한용으로 특장했는데..'
'글쎄요???????????????????' '아, 바로 이거네요. 디카의 롤 실행을 일반사진이 아니라 비데오 기능으로 해오셨군요.'
'뭐라구요?'
'그러니까 그동안 내내, 쉽게 말하여 켐코더같이 사용하셨고 그래서 반무제한용 필름이라도 이미 용량이 넘게 되었단 거지요.'

그러니깐,그동안 일반사진대신 영화 찍듯이 찍어댔으니 무제한필름이라도 견뎌내겠는가?
간단히 편하게 조작하기 위하여, 최신형으로 좋은 걸로 사오라는 것이, 오히려 화를 불러낸 것이었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 원.
기계하면 맹 또 맹. 왕기계맹. 난 기계를 보면 손사래부터 치고 본다.
티비가 잠깐 뭐가 이상해도 소리부터 지른다.'누구야!, 이리와봐!'
하물며 디카인데 큰넘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았어, 알았어'하며 그냥 아무것도 모른채 여행을 떠난 것이 잘못이었다.
비데오 기능이 있는지, 어디에 맞추어야 하는지, 그대로 들고 왔더니 사건이 생긴 것.
어디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실행조작점이 일반사진용이 아닌 비데오용에 고정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또,눈이 보배라더니,뭣이 보여야 사람구실을 하지,
안경없이는 보이지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뭔가 깜박깜박할 때 눈이 보였더라면 용량부족을 금방 알았을 것이고, 이미 비데오식으로 찍은 분량을 삭제하고, 실행조작점을 일반사진으로 옮겨서 찍을 수 있었을 터인데, 눈이 보이지 않으니 바로 처방을 내리지 못한 것이었다.

아, 아깝고 아까워라 그동안 폼잡았던 순간들이여.
아, 어떻게 찾아올 것인가, 묵호항의 허름한 분위기를.
아, 어찌 다시 만나리, 그 갈매기 떼들을.
아, 어찌 추억하리, 대나무굴(벰부터널)과 등대올라 가는 원시적 숲길을.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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