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출장여행기

미국 출장여행기 10,켄사스시티, Missouri에서 마지막 날, '미국 대평원의 한 복판 들판에서 콤바인을 운전해보았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02. 9. 10. 00:59

미국 출장여행기 10, 미국 대평원에서 닷새 째

2002.9.10. 화. 518A, 호텔 317호에서 정리.

 

또 새벽에 잠이 깼다. 4시 20분경.

어제 녹초가 된 몸으로 일찍 잠이 들었었는데 피곤함이 조금 풀렸는가

일찍 잠이 깨버렸으니 푹 자지못해서 조금 불만이다.

 

서울에서 오는 소식은 좋다.

열심히 해온 결과로 보이나 더 결과를 두고 봐야 할 것이다.

마무리를 잘 하면서 과실을 충분히 챙겨야 할 것이다.

 

노병호군의 이른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 한참 나이에 어린 아들과 딸을 두고가는 부정은 어떠했을까.

출장오기전 분당 제생병원 중환자실에서 본 그의 마지막 얼굴이 눈에 밟힌다.

6개월여 뇌종양 투병은 그의 몰골을 이티와 같이 만들어 놓았다.

삶은 무엇이며, 죽음은 또 무엇인가.

운명은 있는 것인가.

중고등,대학을 같이 다닌, 적지않은 그와의 인연이 되돌이켜져 한동안 그의 부음 소식은

미국땅의 나에게 새삼 삶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찌 할 것인가.

죽음도 삶의 한 과정중의 하나인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가는 사람을 축복해야 하지 않은가.

살아남은 사람들은 평소 더 즐겁게 편안하게 살아가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

자연의 속성이, 삶의 속성이 있는 그대로, 자연그대로 자연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가는 것임을 슬기롭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형보의 목소리가 더 차분해졌다.

생각을 많이 하고 고민을 더 많이 소화해내는 것인가.

집사람도 자연스럽다.

있었던대로 행위하면 그것은 그냥 좋은 것. 잃어버린 것을 알게모르게 하나하나 찾아내는 것이리라.

광주에서 소식이 없다니 희소식인가.

어머님께서 제발 편하게 마음을 다잡으시고, 삶을 정리하고 천명을 받으셨으면 좋겠다.

 

2002.9.10. 화, 657A, 호텔식당에서 정리

 

나이가 들긴 들었는가. 요즈음 들어 부쩍 무엇인가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리는 일들이 자주 생긴다.

오늘은 열쇠를 주머니에 넣어두고서 어디에 두었나 찾아다녔다.

지난번 베트남에서 가방에 지갑을 안전하게 넣어두고서 한동안 소란을 피웠지 않은가.

그러나, 이것 또한 어찌 할 것인가. 자연스런 현상이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뿐,

특별한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것도 우리 삶의 한 과정이며 일부분이니 그대로 받아들이되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마음가짐을 더 확실하게 하면 될 것이다.

 

이른 아침을 시작하면서 오늘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서둘지 말고 넉넉하게, 하루를 시작하자.

세상의 모든 것이 내 앞에 있고, 모든 것이 결국은 나의 것이 될 것이니까.

 

2002.9.10. 화.916p, 호텔 317호에서 정리

 

아침 일찍 식사를 하고 11월 옥수수 선적준비를 하는 Paul농장으로 갔다.

88세나 되는 노인 아버지가 일을 거두는데 매우 평화롭고 보기에 좋았다.

우리 농촌의 집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집안 곳곳이 의외로 받아들여졌고,

집 칠판에는 14살 났다는 딸이 아빠에게 전하는 사랑스러움이 메모판에서 읽어지고 있었다.

집 고양이는 이 바쁜 수확철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가로이 졸고 있고,

풀밭에는 메뚜기들이 뛰어다니는데 우리 토종 메뚜기 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게 이상해 보였다. 미국 것은 모두가 큰 것으로 이해되었는데.........

 

콤바인을 직접 운전하여 6줄씩 3번을 왔다갔다 하였는데 망설임+두려움+조심스러움 위에 성취감과 만족감이 뒤따라 곧 나왔다.

세상 일들이란 것이 모두 시작이 있고 그 진행과정이 있고 그 끝이 있으며, 그 속에서 느끼는 감정의 변화는 똑 같다는 것이다.

미국 대평원의 한 복판 들판에서 콤바인을 운전하며 옥수수를 수확한다는 것은 어찌 좋은 추억거리에 지나지 않겠는가.

어쩌면 크나큰 축복이요 먼 날 행복으로 남을 일일 것이다.

 

네팔에서 1년여 평화봉사 활동Peaceco을 하고 왔다는 Paul은 매우 빈틈이 없어 보였고,

늙으신 아버지를 대하는 자세가 몹시 절도있어 보였다.

이곳 미국에도 젊은이들과 여성들이 농촌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도 젊은이들이 없는데 다음 세대의 농촌은 어떻게 될 것인지 벌써부터 걱정들이 산을 이룬다.

농촌에서 살기를 마음먹어도 이제는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농촌이 되었다고 또 걱정이었다. 최소 2백만불이 있어야 농촌에서 정착할 수 있는데 그만한 돈이 젊은이들에게 어디 있으며, 그 돈이면 도시에서 편하게 살지 뭣하러 농촌에서 사느냐는 것.

 

선별하고 포장하는 Steeve의 시설은 어제 보았던 시설보다는 조직화되어 있었다.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잘 짜여 있었고, 사장은 매우 자신만만하고 Jamey와 나를 크게 신경쓰지 않은 듯 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었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고, 상담은 어느덧 지루하게 끝나버렸다.

미국이란 곳이 이런 면에서 멋대가리가 없는 것이구나 느꼈다.

상담을 하다 점심시간이 되었으면, 점심은 어찌 할 것인지, 사정이 이러해서 점심을 같이 못한다는 둥, 고시랑 고시랑 할 만도 한데, 개 닭 쳐다보듯 헤어지니, 내가 오히려 쑥쓰러워졌다.

너희들은 본래 그러느냐고 물어보기도 싫었다.

가까운 곳에서(Porky's) 치킨센드위치로 Jamey와 둘이서 점심을 떼웠다.

 

Buttee popcorn의 T.Miller를 찾아 가는데 미주리강을 건너 Trenton이라는 곳까지 갔다.

거의 오후 3시 30분, 거기서 다시 팝콘농장까지 자동차로 가서 여러 가지 팝콘종자를 구경하였다. 갖가지 Hybrid가 있었고, 바이어의 용도에 따라 얼마든지 선별해서 수요를 맞출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너무나 주먹구구식으로 영업을 했음이 들어나고 말았다. 또 공부를 해야하는구나 싶었다.

튀겨지는 비율은 35에서 45까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팝콘농사는 흰옥수수 농사보다는 규모가 크지 않았다.

 

T.Miller는 무역상으로서 농부들과 일정한 계약관계하에 영업을 하는 듯하였고,

주시장이 멕시코, 영업담당이 영화배우 최민수를 닮았다.

Alph3로 입고전 훈증처리하고, 수분조절은 인위적으로 하지 않고 사이로에서 자연적으로 조절된다고 한다.

한국시장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담담, 껌벅껌벅할 뿐, 그놈 참 말 잘한다 정도인가, 전혀 느낌이 없다.

시간은 얼추 5시가 넘어 서둘러 켄사스시티로 돌아가기로 하였다.

 

길게 멋있게 펼쳐지는 저녁무렵의 도로와 주변의 드넓은 벌판, 탁트인 시야와 늘어진 파도같은 오르내리막길, 풀 뜯는 검은 소떼들, 뭉쳐 둥글게 된 건초더미들, 모두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미국 대평원 속에서 감동하는 한국의 대평원이었다.

늦여름의 따가우나 살가운 햇살, 누런 들판, 검은 소떼, 드넓은 초지,......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이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거의 7시경.

Jamey는 3일간의 survey를 끝내고 이제 공식일정을 마쳤다.

곧 서울에 출장온다고 하니 고마움은 그 때 다시 하기로 하고 헤어졌다.

미국 미주리주 옥수수협회가 초청한 공식행사가 모두 끝난 것이다.

남은 것은 갖가지 sample과 정리해야할 자료와 나의 메모장.

 

늦은 저녁을 나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은 기회이자 망설임이기도 하였다.

시내로 나가기는 피곤하기도 할뿐더러 지리도 모르고 자동차가 없으니, 호텔식당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메뉴판을 본들 무엇이 어떤지 알 수가 있는가.

무조건 부딪쳐 보기로 하였다.

Kansas Meat Soup는 탁월한 선택이었으나 Chicken with Pasta는 엉망이었다.

그래도 주문을 스스로 어려움없이 늠름하고 당당하게 처리하였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했다.

 

이제 Kansas city에서의 주요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내일은 Bloomington으로 간다.

또다른 새로운 세상을 또 경험하기로 하고 이제 Missouri에서 마지막 밤을 맞는다.95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