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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참깨!!!'

햄릿.데미안.조르바 2024. 1. 8. 14:51
내가 하는 일, 곡물.농산물의 국제경쟁입찰사업 특성상 가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해야 할 때가 많다.
지난 5월 5일, 나는 느닷없이 에치오피아의 아디스아바바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깨 쏟아지는 벌판’을 찾아서, 정말 깨가 쏟아지는지, 그 깨를 볶으면 정말 고소한 기름이 나오는지,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 하는 일이 생겼다.

속모르는 혹자는 부러워 할지 모른다. ‘야, 좋겠다, Out of Africa, 그 아프리카를 가다니,
얼마나 신날까‘
세상물정과는 항상 거리를 두고 사시는 우리집도 셈을 낸다. ‘씨잇, 맨 날 좋은 것은 혼자만 하고는, 나도 좀 데려가 주면 안되남....’
그러나 출장을 가야겠다고 결정을 하는 순간부터, 꽉 짜여진 일정에 꼭 확인이 되어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 강박과 긴장을 주는지 누가 알 수 있으리. 비행기를 타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 일인지, 어쩌다 해외여행을 가시는 분들이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야, 며칠 밥 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 좋아라’
나는 오랜만에 우리 집사람에게 좋은 남편이 되었다.
지겨운 해외출장을 가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우리집 사람이 편안하게 며칠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니, 그래도 덤치고는 꽤 괜찮은 거 아닌가.

인천에서 방콕까지 6시간 여, 방콕공항에서 기다린 6시간 여 그리고 방콕에서 아디스아바바까지 8시간 30분 여.
드디어 아디스아바바 공항, 현지시각으로 5월 6일 새벽 1시, 서울 시각으로는 아침 7시, 그러니깐 5월 5일 아침 7시에 내가 집을 나섰으니 꼭 하루가 걸린 셈.

이럴 때 비로소 내가 5학년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아, 지난 3학년 아니 4학년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몸이 물을 먹은 듯 무겁고 머리가 띵하고 멍하다.
체력이 예전같지 않으니 이것이 자연스러움인가.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닐까.

엉겁결에 감기까지 걸리고 말았다. 긴 여정에 피곤하였던지 책을 보다가 그대로 잠을 자버렸던 것이 불청객 손님을 만나게 되었다.
모포를 충분히 달라고 해서 냉방에 약한 내 체질을 미리 보호했어야 했는데 그냥 잠이 들어버렸으니 ‘내 탓’아니겠는가.
시차와 온도차로 인한 변화를 내 피곤한 체력이 이겨내지 못한 것인데 누구를 원망할 일이 아니었다.

하루가 걸린 여독에다가, 시차에다가 거기에 이제 감기까지 덜컥 걸려 버렸으니 이 노릇을 어찌 한단 말인가. 꽉 짜여진 강행군 일정을 어찌 소화할 것인가.
여느 때의 동남아 지역 출장하고는 사뭇 달라져서 걱정까지 앞서고 있었다.

‘열려라, 참깨’ ‘Open, Sesame!'
그래도 나는 속으로 동화속의 그 동굴 앞에 가까이 와 있기를 바랐다.
나는 아디스아바바의 아리바바가 될 것인가.
(내블로그 '자연.자유.자존', 2005.5.16 에티오피아출장여행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