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남아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비행기의 출발시각은 보통 한밤 중.방콕이 그렇고 자카르타, 호치민이 그렇다. 옛날에는 아침 일찍 출발하여 오후 늦게 서울에 도착하게 짜여졌었는데, 요즘은 한밤에 출발시켜 아침에 떨어지게 하여 오전 일과를 볼 수 있게 맞추어져 있다.
비행기 안에서 밤을 보낼 수 있으니, 낮 시간을 토막내지 않으면서 활용할 수 있고, 덤으로 숙박료도 절약되어서,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은 말없이 좋아한다.
최근에는 주 5일제 근무와도 연결되어 금요일 오후 늦게 서울 출발, 월요일 아침 서울 도착하는 2박 4일 최절약형 관광상품으로도 호평을 받고 있다. 호치민의 경우는 현지시각으로 밤 1시경, 우리시각으로는 새벽 3시경, 이륙하여 5시간 여를 날아 서울에 아침 8시경 도착한다.
난 남달리 좀 잠자리에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편이어서, 2 시간의 시차임에도 출장 후 바로 평상적 일상으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고 자주 씩씩대곤 하는데, 요즘 밤 비행기를 타면 요령이 생겨 쉽게 일상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타자마자 가벼운 술을 하고 잠을 자면 자연스럽게 아침 서울 시각에 맞게 일어나는 것인데, 가끔 맞아떨어질 때도 있으나 별로 성공하지 못한다. 대신, 그 동안 밀린 신문을 모두 읽거나 그래도 부족하면 가벼운 잡지를 읽거나 하면서 끝까지 잠을 자지 않으며 서울까지 오는 것인데, 제법 승률이 높다.
출장 중 메모했던 일들을 정리하기도 하고, 메모하지 못한 것들은 다시 모으기도 하면, 어느 사이 비행기의 창 밖이 까만 어두움에서 하얗게 바뀌는 새벽과 만나게 된다.
낮 보다 밤 비행기가 더 좋은 것이 밤을 도와 서울로 오다보면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괜히 시간이 널널하고 엉성하게 느껴져 마음이 그냥 편하여 난 밤 비행기가 너무 좋기만 하다. 나 혼자만의 공간, 나 혼자만의 시간이 확보되기 때문일 것이다.
얼마를 잤을까. 신문 셋을 모두 읽고서 잠을 청했으니 많이 잤어야 2시간 여. 심한 흔들림, 이제껏 이렇게 흔들리기는 처음. 몸이 공중으로 한 번 튕기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비행기가 세게 흔들렸고 그 바람에 잠이 깨었다.
서울까지는 아직도 2시간 여를 더 날아야 한다. 의외로 몸은 가볍다. 피곤하지도 않고 잠을 설친 후의 찜찜함도 찌부드드함도 없다.
비행기 창 밖은 온통 시커멓게 칠흑이다. 땅을 내려다봐도 온통 까맣게 어둡고 거대한 산이 되어있다. 불빛이 띄엄띄엄 건너뛰더니 어느 곳에선 아예 선명한 직선을 그리고는 불길이 되어 뻗어있다. 한반도 어느 도시 위를 지나는 것일까. 큰 도로의 가로등일까. 어느 곳은 큰 산 속에 불이 타 들어가는 것처럼 불길이 번지는 듯 보인다.
하늘을 쳐다보니 별들이 총총, 뚜렷한 것은 제법 크다. 또 좁쌀 같은 별들도 무수히 많다. 셀 수가 없다. 눈이 시릴 정도로 촘촘히 박혀 있다. 누가 말했다. 하늘의 별은 문명의 발달 정도와 반비례한다. 도시 문명이 발달할수록 도시의 불빛이 강하여 하늘의 별빛을 가려버린다는 것이다. 밤 하늘의 별빛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인생이 정말 행복한 것인가. 어둠을 밝혀주는 도시의 인공불빛만으로 인생은 정말 편리하고 행복하다 할 것인가.
한참을 별을 보았더니 작은 별들, 점박이 별들이 내 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상상 속인지 착각 속인지 셀 수 없는 수많은 작은 점박이 별들이 촘촘히 하늘에 박혀있다. 상상일 것이다. 착각일 것이다. 착시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서울에 가까워지면서 하늘이 하얗게 더 밝아오고, 시커먼 땅, 큰 산 같던 땅은 그 머리 위에 희미하나 기다란 구름모자를 얹고 있다. 산 위에 떠있는데, 공중에 떠 있는데, 산 위에 떠있는지, 땅 위에 붙어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여승무원이 얼큰한 라면을 끓여다준다. 이 맛을 누가 알 것이랴. 한식을 가까이 못한 5일 후, 이른 아침에 그것도 비행기 속에서, 라면의 얼큰함과 만난다, 그리고 거기에 모닝 커피까지. 아이들 말로 '죽인다'.
얼큰하고 짭짜름한 새벽의 라면은 뱃속을 후벼서 뒤집어버리는지, 이어지는 커피는 깔깔한 입 속을 씻어내고 탑탑한 목 속을 뚫어내는지, 나의 몸과 마음은 벌써 여독이 다 풀리고 만다.거기에 커피의 향은, 코끝을 벌름거리게 하는 커피의 냄새는 차라리 덤이다.
창 밖은 어느 사이, 20여 분이 지나는 사이에 활짝 열렸다. 시커멓고 커다란 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대신 거대한 바다가 되어 나타났다. 검은 듯 연푸른 바다, 그 위에 솜털 구름들이 수없이 물결이 되어 비행기와 함께 떠있다. 저 멀리 붉으레한 구름띠가 만들어지고 그것은 수평선처럼 되어 또 다른 하늘과 만난다. 태양이 이미 하늘과 땅을 지배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솜털 같은 구름들이 또 어느 사이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푸른 하늘이 내 머리 위에 있고, 총총하게 빛을 내던 별들은 인사도 없이 하늘나라로 갔는지 하나도 없다. 이제 땅도 보이지 않고, 불길처럼, 산불처럼 직선을 그리며 타는 것 같던 도시의 불빛도 흔적이 없고 대신 망망대해 같은 드넓은 하늘이 다시 눈 아래 떠있다.
내 머리 위에도, 내 발아래도, 내 옆 창밖에도 온통 푸르고 하얀 바다, 아니 하늘만 있다. 나는 바다 속에 있는 것인가 하늘 속에 있는 것인가. 잠에서 깬지 1 시간 여, 그 1 시간 동안 하늘은 이렇게 신나게 변신하였음이다.
여승무원이 살갑게 또 친절하다. 손님에 대한 특별한 정성이려니, 다른 무엇이 있을까.커피를 또 갖다준다. 창 밖을 자꾸 내다보고, 하늘을 쳐다보고, 잠도 자지 않고 뭔가를 계속 끄적대는, 희끗한 머리의 내가 이상한가, 괴팍하게 보일 것이다. 실내등을 나 혼자만 켜고 있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하다.
기내방송은 인천까지 50여 분 남았다고 알린다. 창 밖은 완연히 밝아 아침이 시작되었고, 바다와 땅과 산이, 강물이, 이제는 건물도 모양을 갖추어 아침 인사를 한다. 5일간의 출장이 끝나면서 새로운 날이 새롭게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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