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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이야기(5)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7. 30. 16:28

여행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 집사람 말을 들었어야 했다.호치민 도시 한복판 대낮의 온도가 얼마일까. 얼굴이 익고도 남구말구.
집사람은 출장 준비물을 챙겨주면서 햇볕차단제를 가져가라 하였었다.

'어른 말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 먹고, 여자 말 들어서 나쁠 것 없다'는 당장 현실이 되어 확인되었다.

현지 에이전트 덕분에 호텔주변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고, 욕심내서 사이공 강변까지 탐험할 시간까지 벌었으니 고맙다고 해야할까. 미운녀석 떡하다 더 주기도 한다는데 감사한 마음을 갖자.
어디 출장중에 한가하게 현지생활상을 여기저기 기웃거릴 시간과 여유가 언제 있었더냐. 그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호텔 7층에서 내려다보았던 거리와 땅 위의 것들. 직접 걸어가며 보고 냄새를 맡으니 실감과 농도가 다를 수 밖에. 망원경으로 보다가 확대경으로 보는 것이며 또는 줌업하여 들여다보는 것일 것이다.

거리는 본격적인 오전일과가 시작되었고 햇살은 햇살이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알리려는 듯 따갑고 뜨거웠다. 발끝에서부터 뜨거움이 차고올라 온몸에 땀이 그득 배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은 몸과는 반대로 여유작작하게 한가로움으로 거리를 경험하게 해주었다.

女戰士들. 복면을 하고 손과 팔에 긴장화를 신은 듯한 차림으로 오토바이를 몰아대는 그녀들은 바로 여전사 같다. 적진 앞으로 돌진해가는 전사들처럼 의연하고 질서정연하다.
누가 투사는 목적을 위해 투쟁하지만 전사는 삶 그 자체를 위하는 것이므로 끝이 나야 끝난다고 했음을 상기하며 그들의 절절할 삶을 새삼 생각해 보았다.

왠 오토바이가 이렇게 많은가. 서울거리는 자동차들의 물결이라면 호치민에서는 오토바이의 물결. 마치 메뚜기떼처럼 거리를 휘젓고 다닌다.

교통신호체계가 없어도 물결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정리되고 흘러간다.
힘이 넘친다. 적을 쳐부수듯 한다면 과장될까. 그들은 과거의 아픔을 딛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듯 보였다.

밤이 되면 더 장관이 된다. 주로 쌍쌍이 납작붙어서 몰려다니는데 젊음이 그들의 것이고 미래가 또 그들앞에 있으니 그들은 무한정 자유다. 때로는 가족 메뚜기가 움직이면 셋도 되고 넷도 붙어서 달리기도 한다.
집에 있는 것보다는 밤공기 쏘이면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이 생활의 일부가 되고 내일의 활력이 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도로위 이곳저곳에는 쉬고있는 오토바이 또한 엄청 많다. 한켠에는 비실비실 자고있는 사람들, 복권을 사라고 달라붙는 중년여인 그리고 할머니들, 시내관광을 유혹하는 오토바이 호객꾼들로 호치민의 도로위는 유유자적할 수 없다.

도로 건너편을 가면 사이공 강가로 가는 것. 교통신호가 없어 눈치를 보는데 화물차는 또 왜 그리 많이 지나가는지. 한무리의 여인들이 거침없이 도로를 가로지르려해 나도 허둥대고 뒤뚱거리며 따라건넜다.
보아하니 무질서 속의 나름의 생활질서가 있었던 것이다. 허겁지겁 건너고 나니 내가 우습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였다.

가까이서 직접 보는 사이공 강가는 힘없는 서민들이 가득했다.한가하나 게으름이 널려있고 지저분하고 복잡하였다.
Passenger's Quay of Hochimin City. 말하자면 연락선 부두였다. 배를 기다리는지 하릴없어 보이는 군상들이 여기저기 흐드러져 있었다.

주위에는 소형 나룻배들이 몰려있고 호객꾼들은 사이공강 유람코스를 설명하면서 집요하게 내 주머니를 노린다. 이제 그만 따라왔으면 좋겠는데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다. 드디어 호객꾼들이 보이지 않는다. 한편으론 시원하고 또 한편으론 허전하였다.

남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귀찮기도 하지만 꼭 싫은 것만은 아니었다. 이 무슨 이중성이고 간사함인가. 이들이 인간의 이중성 밑바닥을 보고 있단 말이더냐. 그래서 열번 찍어 넘어가지 않은 나무 없다고 했는가.

진홍색 바탕위에 노란 대장별이 곳곳의 큰 건물위에 위용을 뽐내며 펄럭이면서,거리의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베트남 국기. 옛날은 무서웠으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마돈나의 'Like a Virgin' 이 입국장에서 흘러 나왔었지, 13년 전에는.

권위는 저절로 생기는 것인지 거리의 사람들은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얼음과자는 아니고 요구르트도 아닌데 무엇일까. 그래 맞아, 일종의 샤베트. 1,000 동, 우리돈으로 100원 정도. 먹어보고 싶은데 그 놈의 '사스'생각으로 용기를 접었다.

내가 멈칫거리는 것을 한 할머니가 보았는지 가까이 와서는 복권을 사라고 눈짓손짓을 해댄다. 주머니 속을 뒤지니 잔돈 있는대로 할머니 손위로 건넸다. 얼마를 주었을까. 많아야 우리돈으로 1,000원 정도. 세상의 돈은 돌고 도는 것. 더 많이 줄 걸 그랬나 싶었다.

베트남에는 가는 곳마다 복권이 판을 친다. 좋은 일인가 아닌가. 복권은 인간의 무엇을 노리는 건가.

재래시장 골목은 한국이나 이곳이나 똑같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똑같아 보인다. 스스럼없고 활기차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냥 삶이 흘러가고 있음을 평화와 사랑과 자유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시장은 우리 삶의 모태이자 출발점이다.

갑자기 미국산 오렌지가 쌩퉁맞게 열대과일들 속에 끼어있다. 어울리자는 것인가 새롭게 틈새를 벌리라고 압박하는 것인가. 시장은 자유를 좋아하는데 알 수가 없다. 미국의 힘은 어디까지인가.

거리 뒷골목도 오토바이들이 점령을 해버렸다. 걸어다니기가 불편할 정도로 이곳저곳에 오토바이가 넘쳐난다. 서울의 주차전쟁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비디오 가게,컴퓨터 가게,쌀국수집,양식빵집,문서대행 사무소 등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앞에는 역시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점심을 해야할까 말까. 늦은 아침식사를 했으니 건너뛰기는 어딘가 허전하고 하자니 무엇을 먹을지부터 부담이 되고, 망설이다가 그래 시장의 쌀국수를 찾았다.
조심스레 손짓눈짓으로 주문을 하고, 아침에 호텔에서 경험했던 그 맛을 기대했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 이곳에도 적용되는가. 달착지근한 게 전혀 아침의 개운하고 얼큰한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서울에서는 시장바닥의 칼국수가 더 맛있었는데 실망이었다.

얼마지요? 14,000동. 우리돈으로 1,000원 정도. 생각보다 2배정도 비쌌다. 나는 이럴 경우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다시 한번 얼마냐고 물었다. 혹 외국인이라고 잘못 전달될 수도 있으므로. 시침을 떼고 똑같이 14,000동이라고 써서 보여주기까지 한다. 씁쓸히 걸어나왔다.

여행의 三樂, 맛있게 먹는 재미, 새로운 것 보고 만나는 재미, 돈 쓰는 재미라는데, 나는 오늘 점심에 여행의 모든 재미를 잃어버렸다.

베트남의 호텔 층 순서가 서울과 달리 시작한다. 1층이 서울의 2층.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 옳고 그름의 문제인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차이인가. 국가간의 문화의 차이는 무엇인가. 우리의 나이 계산방법과 서양식의 차이, 우리에게 차이는 무엇을 가져오는가.

층의 순서가 우리와 왜 다를까 의문하면서 호텔방을 열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열쇠가 일을 하지 않는다. 파란불이 들어오지 않아 빨간불이 깜박깜박거린다.
'12시 이후에는 잠금장치를 했거든요. 12시까지 체크아웃 하시는 걸로 알구요'
이곳 베트남에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고 있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체크아웃. 호텔로비 12시 52분.
12시 45분에 그를 만나기로 했는데 역시 나타나지 않는다. 호텔의 판촉메니져는 명함을 건네주고 명함을 달라고 하며,이것저것 편의제공을 약속하면서 자신을 외국인에게 하나라도 더 알리려고 열심이다.

'熱心'을 우리 친구는 그의 책 '돈이 안돌면 사람이 돌아버린다'에서 '자기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 상대방에게 정성을 쏟아야 드디어 고객의 마음이 뜨거워져 움직이는 상태'라고 설파하였다.

'일은 사람이 시작하고 결과는 하늘이 만든다'
호텔메니저의 열심을 보면서 나는 30여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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