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평원농상(주)에서(창업1996-현재)

사업이 날로 번창하니...어찌 알았는지 사람들이 찾아왔다.(3)...친구 3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6. 21. 13:59

/사업이 날로 번창하니...어찌 알았는지 사람들이 찾아왔다.(3)

 

그는 모범생중의 모범생이었다.

착하기 이를데 없고, 다른사람에게는 싫은소리 하나 하지않는, 아니 하지못하는, 친구였다.

그는 고교졸업성적이 500명중 최고라고 하였다.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져서, 격년으로 수석졸업생을 결정했고, 그는 이과가 수석을 차지하는 해에 공식적으로 ‘최고’가 되었다...고3때는 대학입시준비가 최우선이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매월 시험을 봐서 재학생들의 실력을 평가하였다. 상반기에는 ‘실력고사’라는 이름으로, 하반기에는 ‘모의고사’라는 이름으로 시험을 봐서, 1등에서 100등까지 게시판(벽보)에 이름을 올려놓아 재학생 서로에게 경쟁을 붙이고 실력향상을 도모하였다. 나는 6월인가 7월의 실력고사에서 이과전체 300여명의 수석을 차지하였고, 마침 그때는 3선개헌? 한일회담반대?로 인하여 ‘휴학휴업’중이어서, 나는 시골 보성집에 격리되어있었고, 따라서 학교 ‘벽보’에는 게시되지않았다....지금 생각해보면, 참 아쉽고 안타까운 ‘상황’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전교 500여명에게 내가 전체 1등을 했다는 ‘광고’가 벽보에 붙을 수 있었는데 그게 무산되었으니 말이다 하하. 억울하고 또 억울하도다해해)

(매월 한번씩 실력고사나 모의고사를 보는데, 그 최종결과가 벽보에 붙는 것이니, 그날이 되면 복도끝은 시끌시끌하였다. 1등부터 100등까지 방이 붙으니 말이다. 이것을 골프로 말하자면, 전체1등을 한다는 것은, PGA 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고 어려운만큼 그만큼 영예가 되는 것. 톱10이나 톱5는 몇 번씩 해도 ‘우승’하는 것은 누구나 하지못하고 몇 명만이 그 영예를 갖게 된다. 그 영예를 나는 한번 안았지만 그는 졸업수석을 했어도 ‘우승’은 한번도 하지못하였다.)

 

그는 한번도 실력고사나 모의고사에서 1등을 하지않았지만, 전과목 평가고사에서 ‘최우수’ 1등이 되어, 그 평가고사가 전과목이었는지 일부선택과목이었는지, 어떤 범위로 출제되엇는지 기억이 없지만 어찌되었든 그는 ‘수석’으로 평가되었고, 공식 ‘교육감상’을 받게 되었다.

내가 아는한, 그는 전체 16명(?)밖에 해당자가 없는, 3개년 우등상은 타지못하였다.)

(우리친구들도 모두 학업성적이 그처럼 빼어났다. 전체 500여명 졸업생중 단 16명만이 3개년 우등상을 받았는데, 가까운 우리친구들(김정환.안상태.최동원.박동희)이 나를 포함하여 4명이나 되었다.)

 

어찌되었든, 학교의 공식적인 기록은 그가 최고자리를 차지하였다.(그는 한때 술에 취해서 그가 ‘최고’라는 것을 되뇌는 것을 봤다. 그만큼 그는 ‘최고’라는 것이 그의 머릿속에 남아있어서, 사회생활이 더 자유롭지 못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모두들 인정하는 좋은대학의 좋은학과(서울대공대 화공학과)를 나와서(나처럼 비인기학과가 아니었다.), 좋은직장을 여기저기 다녔지만, 결국은 대기업임원이 되지못하고, 사내기업가에게 지원하는 ‘사업’을 하였는데 끝이 좋지않게 끝났다. 평범한 월급쟁이로서 사회생활을 마치게 된 셈이었다.

 

그런 그가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였다. IMF가 지난 3-4년후? 7천만원? 1억원? 기억이 뚜렷하지않다.

나는 두말 물어보지않고, 그냥 그에게 그가 빌려달라고 한 금액을 바로 빌려주었다.

몇 달이 지났을까?

그는 아무런 표현없이 그 돈을 갚았다.

(그가 또 돈을 빌려달라고 하였다....더 자세한 이야기는 '친구들 이야기(비공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