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형민 3; 나는 틈만 나면 ‘쉽게’사는 길을, 그러나 그는 ‘편하게’사는 길을 선택했다.
대원외고에 들어간 후, 1학년때는 분당에서 스쿨버스를 이용, 등하교 하였지만, 2학년때부터는 학교앞 사설기숙사에서 다녔다.
분당에서 스쿨버스로 어린이대공원옆(=건국대 가까이, 중곡동?)에 있는 대원외고까지 통학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무리였다.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한시를 아껴서 공부해야하는데 통학하는 것은 ‘독약’이나 마찬가지.
없는돈을 아껴서(그때는 내가 해태상사 직원일 때, 아직 ‘대평원’창업전이라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2학년때부터는 기숙사생활을 하게 하였는데, 심성이 착하고 고운 우리큰아이는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였고, 최우수생들이 모인 ‘대원외고’였지만 공부도 최상위권을 유지하였다.
학업성적도 중국어과반에서 2-3-4등을 하는 것이니 대단한 성적이었다.
(그래도 앞에서 설명했든, 내신이 입시평가에 반영되면서 ‘날벼락’을 맞게 되었고, 결국 최고인기학과 지원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가 예상되고 말았다.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장난의 운명인가? 그의 운명은 입시성적에 내신이 반영되는 새대입제도의 도입이었다. 왜 이런 일이@@@@)
큰아이는 토요일마다 분당집으로 왔다. 일요일에 저녁식사후, 나는 그를 대원외고 기숙사까지 자동차로 데려다 주었다.
자동차로 기숙사까지 가는 동안, 그는 차를 타자마자 서태지와 아이들, 연인과 우정사이, 댈팽이, 신해철.윤종신등 최신노래CD를 들었고, 나는 그 틈새를 비집고들어가, 앞으로 큰아이가 맞이할 대학.사회가 어떠한 것인지, 거기서 살아남고 더 잘 생활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러면, 어떤 대학의 무슨 학과를 선택해야하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예를 들어가면서, 그에게 펼쳐주었다. 물론, 나아빠의 대학선택이 일응 ‘잘못’ 되었다고는 하지않았지만, 그 선택 이후 아빠의 사회생활이 얼마나 힘들게 되었고...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등등등
그에게 녹음기 틀 듯 반복하여 틀어 준셈이었다. 너만큼은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하지않아야 한다는 것을 에둘러 펼쳐보여주었지만, 그의 선택은 그의 몫이었다. 그는 아빠의 간절한 펼침막에서 벗어난 선택을 하고 말았다. 그것 또한 그의 운명이었다.
나는 내가 살아온 세상에서 내 아들이 고시패스를 하여 ‘힘쓰는’ ‘주류’로 살아가기를 바랐고...왜냐하면 그 길이 우리사회에서 살아가기 가장 ‘쉬운’길이니까...한번 되면 죽을때까지 떵떵거리며 살수 있으니까.., 다른말로는 ‘쉽게’ 우리사회에서 살아가는 길을 제시해주었는데, 큰아이는 ‘쉽게’보다는, 나름대로 ‘편하게’사는 길을 선택하였다.(고백하건대, 나는 큰아이에게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인지는 제시하지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살아보니 그 길이 너무나 멀고 힘들 길이었기때문이었다.)
그는, 큰아이는, 서울대경제학과를 All 'A'로 졸업하고, 경제학적 자질이 충분하니, 미국유학을 가서 경제학공부를 더하라 해도(아빠는 돈이 없어 유학을 가고싶어도 가지못해서, 큰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이제는 아빠가 경제적여유가 많으니, 돈걱정없이 유학가서 공부만 해도 된다했지만...,) 이유없이 거부하고는, 지금 국내제일의 회계법인에서 힘들게 이사가 되어, 어렵게 ‘이사’로 일하고 있다.
(회계사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수시로 여기저기서 뒷퉁수를 까이면서 그래도 어렵게 힘들게 ‘이사’까지 왔는데, 그 다음은 또...어찌 넘어가야할지...그가 알아서 잘 할이지만 이미 ‘쉽게’사는 길은 선택에서 제외시켜버렸으니...나름 ‘편하게’ 잘 살아가길 바랄뿐이다.)
이제는 그때 분당에서 대원외고기숙사까지 가는 동안, 나아빠가 그에게 해준 이야기가 무엇을뜻하였는지, 지금 그는 어느 길을 걷도 있는지, 이해가 된성싶다. 그래도, 그는 아무런 불평불만없이 속으로만 사회의 냉혹함을 삭이면서 그 나름의 ‘편하게’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참 고마운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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