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 형민2;서초중 수석졸업, 대원외고 입학, 내신제도가 도입돼 ‘독약’이 되어 돌아왔다.
부천역곡에서 힘들여 ‘강남8학군’이라는 서초중까지, 보낸다는 것이 어디 간단한 일인가?
그를 어렵게 강남8학군에 진학시켰다는 것을 알았던지, 그는 열심히 공부하였고 다행히 서초중을 최우수성적으로 졸업하게 되었다.
내친김에 그는 대원외고에 합격하였다.
대원외고는, 강남8학군에서도 우수학생들끼리 경쟁하는 특수학교인데 경쟁률이 5대1정도? 경쟁률이 문제가 아니라 어떤 학생들끼리의 경쟁이냐고 더 관심사였는데, 합격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라들 하였다. 옛 경기고 보다 더 우수한 학생이 많이 모이는 집단이었다.
(큰아이가 실제로 대원외고 재학때의 학교성적을 평가하면 옛 경기고보다 우수학생이 10배정도 더 많지않았나 싶다...우리큰아이는 대원외고의 중국어과에 다녔는데 50명?중 3-4등을 하는 우등생이었는데 전국석차를 따져보면...200등 내외를 하였으니, 대원외고의 학력은 옛 경기고 학력보다 훨씬 상위에 있었다고 평가된다.)
큰아이가 서초중 수석졸업을 하고 또 연달아 그 어렵다는 대원외고에 합격하니, 우리부부의 기쁨은 말할 수가 없었다. 내놓고 기뻐하지 않을 뿐이었지 속으로는 우리가 대원외고에 합격한 것이나 마찬가지로 좋았다. 특히 나는 뛸 듯이 좋아했다. 그러면 그렇지, 우리아들이 누구의 아들인데, 당연하지, 당연하고 말고 썅!! 하였다.(마음속으로만...)
(우리부부는 둘다, 고교성적은 빼어나게 좋았지만, 대학선택은 비인기학과 또는 가정형편상 서울로 오지않고, 지방대영문과출신이어서, 말로 표현못하는 ‘학벌콤플랙스’ 또는 눈에 보이지않게 ‘자존심’에 상처을 안고 사회생활을 해야했다. 말못할 사회적 냉대를 받고 살아왔으니, 아이들만이라도 소위 잘나가는 학교에 들어가 결코 그부모에 그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참이었다. 참 슬픈 한국의 어두운 학벌사회의 단면이었다.)
큰아이가 서초중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니, 사실 나는 고민이 많았다. 일반고를 가는 게 좋을지, 아니면 그때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외고’를 가는 게 더 좋을지, 무척 고민하였는데 이왕이면 우수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외고’를 가서, 우수학생들끼리 선의의 경쟁을 하면 더 좋은결과를 얻지않겠나 결론을 내고...그렇다면, ‘외고’중에서도 제일로 평가하는 ‘대원외고’를 지원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영어과를 선택하지않고 ‘중국어과’를 선택하였다.(곧 중국시장이 열릴 것이라 ‘중국어과’를 보내면 ‘중국어’는 물론 기본적으로 ‘영어’는 배우는 것이니, 아무래도 ‘영어과’를 가서 영어만 배워두는 것보다는 더 좋을 것같아 중국어과를 선택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둘 모두 실패작으로 잠정결론나고 말았다.
(일반고를 가지않고 대원외고를 선택한 것은, 그때 당시는 좋았지만 막상 대학시험을 치를 때, 입시제도가 바뀌어서는 불리한 ‘내신’조건 때문에, 큰고충을 겪게 되었다. 시험도 보기전에 내신성적이 일률적으로 몇점씩 깎여버리니, 시험도 보기전에 당락이 거의 결정되는, ‘넌센스’가 연출되었다.
내신반영에 대하여, 자세한 비율은 모르지만, 내가 간단히 이해하기로는, 일반고에서의 1등은 당연히 내신1등급을 받지만, 일반고보다 학력이 월들하게 더좋은, 대원외고 3등.4등.5등은 내신1등급을 받지못해서, 1점.2점 차이가 내신에서 바로 나와버리니, 1점을 다투며 당락이 결정되는 서울대 최고학과는 아예 지원조차 하지못하는, 이미 합격.불합격이 결정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었으므로...
우리큰아이의 대학결정에 큰피해를 보게 되었다...일반고를 갔더라면, 모르긴해도 당연히 내신1등급은 따논당상이었는데 대원외고에서는 1등을 하지않고는 장담이 되지않았다...그래서 ‘실패작’이 되었다.)
(중국어과 선택은, 영어는 기본으로 배울 수 있는 것이니, 과외로 ‘중국어’까지 배우는 것이니 ‘영어과’보다 더 낫다고 판단했었는데, 학벌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뭐든지 ‘제1’를 선택하고 봐야했다. 제1로 치는 영어과가 최고였다. ‘영어’가 우선, 최우선이었고, 그 다음 ‘중국어’를 배우고 아니고는 그 다음다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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