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Huyton 5; 이제는 해태상사 법무팀에서 ‘거절’하여, 나는 ‘사직서’로 대항하였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1. 12. 11:23

/Huyton 5; 이제는 해태상사 법무팀에서 ‘거절’하여, 나는 ‘사직서’로 대항하였다.

 

영국 런던과 서울과는 8시간 차이.

우리 퇴근무렵이 그들이 일을 시작하는 시각.

그는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서울의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날의 상황과 앞으로 어찌할지에 대하여 물어왔으며 나는 가능한한 소상히 대답해주었다.

(거의 1달여 계속되는 그와 나의 페턴. 목소리가 남보다 더 큰 나는 해태사무실에서 유명하였다. 영어발음이 좋지않지만, 언제나 씩씩하게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 보기에 나쁘지않다고들 하였다.)

(국제상사 시절, 미국 휴스턴에서 근무경험이 있는 옆부서 ‘수산부’의 서울대상대출신 윤석0부장보다는 영어발음이 좋지않지만, 그는 거의 본토발음 수준 그러나 나의 발음은 그야말로 ‘브로큰콩글리쉬’, 그래도 내가 하는 말이 더 알아먹기 쉽다고들 하였다. 하하하)

 

나의 해결방안이 사장실로 올라가니, 법무팀은 ‘Huyton'을 믿을 수 없다며 반대의견을 달았다.

‘Huyton을 어떻게 믿느냐? 우리해태상사가 먼저 한국사료협회에 M.V 메해딘티 네고금액을 지불한 후, Huyton이 ’도망‘가면, 그때의 대책이 없지 않느냐?’

법률적으로는 올바른 지적이었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것은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하는 일종의 ‘기우’였다.

유부회장은 나의 얼굴을 보면서, 법무팀의 지적에 대하여 나의 의견을 물었다.

(이런 경우, 나는 스트레이트로 쏘아붙이고 만다.)

나; 부회장님, 제가 ‘사직서’를 써서 Huyton의 지급보증을 서겠습니다. 만일, Huyton이 약속을 지키지않으면, 제가 회사를 나가는 것으로 ‘책임’을 지겠습니다. 이렇게까지 내가 ‘사직서’로 배수진을 치고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데도, Huyton이 ‘거짓행위’를 하면, 정말로 저도 끝장 아니겠습니까?

유부회장; 말 한번 겁 없이 내지르는구먼...박부장 제안대로 우리 해태상사가 ‘중간 안전지대’가 되어, 양당사자의 불신을 해소시키도록....‘사직서’는 없던 것으로 하고...이상끝.

(그때 나는 이미 부장으로 승진한 후였다...1991년 1월1일부니, 그동안 전임 박사장의 정치적 배제 때문에 매번 누락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차장 6년차때에 늦은 ‘부장’승진이었지만, 승진문제는 나에게는 그저 하찮은 요식행위에 불과, 하등의 가치를 두지 않았었다.)

(회사구성원의 하나인 내가 ‘사직서’를 담보로 처리할 문제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회사체제상 그렇게 ‘사적’으로 풀 문제는 아니었지만, 나는 이 문제를 회사차원에서까지 논리적으로 풀다가는 언제 문제가 해결될지 알 수 없는 노릇. 배수진을 치고 ‘초강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제는 Huyton이 해태상사를 믿지못하겠다고 나왔다. Huyton은 해태상사에 자기돈을 보내주었는데, 해태상사가 한국사료협회에서 받은 돈을 Huyton에 보내주지않으면, Huyton은 누구에게 하소연해야 하느냐?

어떻게 해태상사를 믿느냐...차라리 Mr.Park 계좌로 송금하겠다고 하였으나, 외환관리법상 개인앞 송금은 불가할 뿐만 아니라, 문제를 그렇게 푸는 것은 여러모로 좋지않아서, 사실 내가 ‘사직서’를 배수진으로 치고 해태법무팀을 압박하여 얻어낸 방법이니 더 이상 아무 군말하지말고 , 해태상사를 믿고 송금하라 하였다.

오죽했으면, 얼마나 힘이 들고 한국사료협회나 해태상사의 관련당사자들이 ‘도식적’으로, ‘상호불신’으로 일을 해왔으면, Mr.Park에게 직접 송금하겠다 하였겠는가?

(이해관계 당사자가 많으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듯이, 모두가 소위 ‘면피’위주로 일을 처리해가면, 좋은방법을 앞에 두고도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을 우리는 많이 봐왔지않은가? ‘가압류’ 한국사료협회 회원사들 사이의 미묘한, 큰 조직에서는 강.온파가 존재하였고, 해태상사 큰조직에서는 관리부쪽은 언제나 큰책임을 부담하지않은 방향으로 문제를 끌고가는 것이 상수였다. 일을 꼭 해야하는 나같은 사람은 이런 숨은 내용들을 들여다보고 일을 풀어나가야 하였다. 세상은 돌아가야 하니까...싸움만 하고 있으면 세상은 돌아가지 않으니까.......)

 

(웃을 수도, 울수도 없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하나를 풀어놓으면 또 다른 문제가 나오고, 그 문제를 풀어놓으면 또 새로운 문제가 나오니...대마는 대마답게 문제도 많고 사연도 많다더니..대두박 10건 계약에, 한 10년동안 할 일을 몇 달안으로 처리하는 듯하였다.

나는 그에게, 내가 ‘사직서’를 담보로 하여, 한국사료협회의 돈을 받고 또 동시에 Huyton의 돈을 받기로 하였으니, 그 외의 어떤 ‘불신’도 할 필요가 없고 지금은 다만 ‘상호신뢰’만이 필요할 뿐이라고 신신당부하여, 내 계좌로의 송금조건은 철회하였다. 그래도, 큰놈들과의 싸움이라 무척 힘들었지만, 그래도 Huyton이 Mr.Park은 믿어서 내 계좌로 송금하겠다하니 힘들에 일한 보람이 있구나싶었다.)

 

싱가포르 급유도중 일어났던 초유의 ‘가압류’사건과 ‘Unpaid' 사건은, 해태상사가 중간에 상호보증이라는 절묘한 방법 ’묘수‘로 마침내 끝을 보게 되었다.

기나긴, 지루하고 또 지루한, 끝날 것같지 않던 ‘불신의 전쟁’이 마침내 끝을 보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