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기러기 카페 글모음)

[스크랩] 병원유감(2)----아, 향긋한 커피냄새 그리고 죽이는 짜장면 냄새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4. 21:21
2004.8.8.토,
병원유감(2)
7월 28일, 수, 09;20분 대장투시 검사, Colon Study

거의 이틀을 미음만 먹고, 아침 일찍 병원에 들어갔는데 ‘아, 이 냄새’
아침 커피의 냄새가 병원 현관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 어서 검사를 끝내고 저 냄새를 만나야지, 나의 막커피를 만나야지,
나는 설레이는 어린애가 되었다. 나는 곧 애인을 만나기로 한 스무살 청년이 되었다.

시장바닥이 되어버린 종합병원의 아침 풍경,
재래시장이 풋풋함으로 바쁘다면, 종합병원의 바쁨은 무엇일까?
재래시장도 상인들이 속셈을 하고, 우리의 아줌마들이 그 속셈을 채워주면서 바쁘고 또 풋풋하지 않은가?
나는 왜 종합병원에서 부산함만 느끼지 그 풋풋함은 만나지 못하는가?

병원에 오시는 환자들이 그들의 주인이나 손님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그들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하는, 단순한 ‘객체’로 자리매김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시장바닥의 상인들은 시장에 오는 아줌마들을 아무렇게나 대하지 않는다.
때로는 어려운 손님으로 때로는 무서운 주인으로 때로는 가까운 이웃으로 만난다.
그 차이가 그 풋풋함과 그 부산함일까?

몇 번의 종합검진으로 영상의학실의 풍경은 낯설지 않았다.
거북스러운 기계적 영상기사가 있었지만 다른 기사와 간호사인 듯한 젊은 여성은 검사받으러 온 사람의 심리를 잘 헤아려 주었다.
조영제 투입과정이 부담스러웠지만 20여 분의 장 투시 검사는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 드디어 끝났구나.
어젯밤 ‘마크론’ 250 ML을 마실 때의 고통도 아침의 ‘둘코락스’ 좌약의 거북스러움도,
그동안 이틀여의 미음에 대한 밋밋한 맛도, 이제 모두가 지금 이 순간의 가뿐함을 만들어주기 위한 준비과정이었다.

사무실로 들어오는 주차장,
어디서 흘러나오는 무슨 냄새인가?
아, 짜장면, 짜장면 냄새 아니더냐?
이 보다 사랑스러운 냄새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사흘 굶어 남의 담장 넘보지 않는 사람 없다는 말은 불변의 진실.
이틀여 미음으로 버티고, 아침을 굶고 지금 점심을 맞이하였으니 뱃속 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어서 오시라, 아무 음식이나,
그런데 이놈의 짜장면 냄새가 저렇게 강렬하게 내 머릿속을 강타할 줄이야.

그러나 지금 바로는 안 되네, 1 시 이후에 그것도 부담되지 않은 음식으로,
짜장면은 냄새만 맡고 난 ‘죽집’으로 가기로 하였다.
얼추 2 시간 후에.

장 검사 한 번 하면서 난 새로은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새삼 확인하였다네,
우리 사는 세상에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새삼 또 확인하였다네,
또, 배고픔에 대한 너무나 인간적인 고통과 그 끝나는 곳에서 만나는 더 큰 기쁨을 알게 되었다네,
세상은 참 재미있고 또 살만하다 것을 또 알게 되었다네.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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