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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운명을 믿는가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1. 19:58
2004.3.9.화. 운명을 믿는가.

3박 5일.
3월 2일 저녁-3월 6일 아침.

사이공에서 돼지감자를, 방콕에서 옥수수를, 번갯불에 콩 볶듯 하였더니
서울은 온통 雪 雪 雪 기더니 이제는 說 說 說 시끄럽다.
민생의 暴雪이 정치의 暴說에 묻히고 말았다.

누구에게는 暴雪, 누구에게는 福雪, 나에게는 무언가.
내가 서울에 있었다면, 100년만의 귀한 손님은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운명을 믿는가.

동남아 출장만 가면 난 편하다.
오랜만에, 5년 만에 들른 방콕은 더 편했다.
방콕은 내게 어쩌면 또 다른 고향.

20여 년 전
30대 후반을 치열하게 보냈던 곳.
그 때 옥수수는 도전이었고 영광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좌절과 울분, 무력함을 만났었다.
끝없어 보이던 번뇌와 투쟁, 그 끝에서 마침내 전환.
오늘의 내 직업이 시작되고 만들어진 곳.

우리의 직업은 운명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인가.
나는 태어나면서 이미 ‘무엇’이 되어 있기로 하였는가.

왜 하필 무슨 학교를 다녔으며, 누구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으며, 왜 하필 귀빠진 날 출장을 가서 100년만의 손님을 만나지 않고, 방콕에서 또 옥수수를 만나게 되었는가.
어느 사건과의 만남, 어느 누구와의 만남이 우리의 다른 내일을 만들어낸다 하였던가.

내일의 나도 이미 ‘무엇’으로 예정되어 있는가.
5 년 후
20 년 후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무엇으로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니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어 아무리 애를 써도 바뀌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래도 그것이 무엇인지 찾아 나서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하는 것까지 또는 그렇게 하는 것까지도 이미 예정되어 있음에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 인생은 더 살만한 것인가, 아닌가.

이래저래, 아무래도 이미 예정되어 있는 우리의 운명인가.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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