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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토요일 오후, 비를 기다리며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11. 19:52


2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늦게부터는 비가 올 것이라는 기상예보, 그래서인지 도시는 온통 꾸질꾸질하다. 바람도 쌀랑쌀랑 겨울티를 내려 안간힘을 쓴다.
그런들 밀고 들어오는 봄의 길목을 겨울이 어찌할 것인가. 막지 못한다. 춥지 않다.

일이 그만하면 되었다 싶은데 또 온다. 우리 집에 오는 손님 오지 마라 못하고, 밀려오는 일들을 바쁘니 오지 마라 할 것인가.
우리 사무실에 오는 어느 누구도, 잡상인도 보험아줌마도 용돈달라는 할머니도 마다하지 않는데 하물며 우리 집에 찾아드는 일을 소홀히 한다던가.

평소 시간과 돈은 주인이 없다, 먼저 차지하는 자 주인이다 하였었다. 정말 그러한가. 정말 그러하더라. 당사자가 그러하다는데 누가 아니라 시비할 것인가. 바쁘나 바쁘지 않고 남들은 적다 많다고 하나 내게는 덜도 말고 더도 말고이며 그저 넉넉할 뿐이면 그만 아니던가.
번개같이 잡아놓은 일요일 출장을 다시 번개처럼 연기하고 나니, 내 배꼽시계가 점심시간을 알린다.

늦으막하게 느리게 걸어서 먹고싶었던 낙지수제비 한 그릇을 오랜만에 만난다. 누구 말대로 일어나자 모두 소화되도록 천천히 맞이한다.
주중이면 손님들로 가득차서 나홀로는 자리를 잡을 수가 없었는데 오늘 토요일, 홀로라도 좋은 자리 잡고 느리게 더 천천히 수제비 국물까지 훌러덩 바닥을 본다. 뱃속이 그득하고 마음은 매콤한 국물맛처럼 바닥까지 시원하다. 또 왕이로소이다. 더 무엇을 바랄 것인가.

하늘은 금방 비를 보낼 듯 잔뜩 찌푸리고 있는 것이 내 마음을 읽고 있단 말인가.
비야 오너라 토요일 오후, 얼마나 좋으냐. 더군다나 내일 모레 곧 삼월 삼질 날,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온다 하잖으냐. 무겁고 묵은 겨울 청소하고 밝고 해맑게 봄마중 하면 어떨까, 봄비 맞으며.
내일도 비가 온다는데 영화나 한편 때릴까.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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