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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청계산 산행 후기---`68 기러기 사랑방` 개방기념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1. 9. 14:33
2003.7.17.목.10시. 청계산입구. 68 기러기 산행(1차)

가끔 산행을 하면서 그동안의 거리를 좁혀 왔었지만 오늘 다시 만나니 한층 더 가까워졌다. 가까워지려거든 얼굴이라도 가끔 보아야 함은 또 진리가 되었다.

유종상 박용환 정찬규 김수남 박찬웅 최동원 손인옥(손님) 고영신(산행후) 박동희.9명.

'바보처럼' 시간 지키는 것 만큼은 양보가 없는 친구들인데도 20여 분이 늦어졌다. 청계산 주변의 교통사정이 갈수록 나빠진다. 더 이른 시각에 산행을 시작해야 하는가. 10시 20분.

오늘 청계산 산행은 옥녀봉-매봉 코스를 잡았다. 매번 매봉으로 바로 가버릇 하다가 옥녀봉을 거쳐가니 또다른 맛이 나왔다. 역시 산을 자주 찾는 찬규의 감각이 좋았다.

옥녀봉의 오이맛은 별미였다. 옥녀와 오이의 상관성 때문일까. 말 붙이기 선수들이라 이리 붙여보고 저리 또 맞춰보느라 모다들 입이 쉴 틈이 없었다.
산에서는 오이를 껍질채 바로 먹어야 좋다, 아니다 껍질을 벗기지 않고 먹어야 좋다고 갑론을박하여도 인옥은 오이의 건강한 속살을 반드시 옥녀봉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무슨 속사정이 있었는지, 하나 하나 벗겨 8을 각자 입속에 넣어주었다.

이 좋은 분위기에 동원이가 동원되지 않고 누가 동원되겠는가. 그는 평소 쌓은 그 방면의 내공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오이의 크기와 모양을 보니 '금상첨화'임에 지나침이 없다고 해대니 옥녀봉이 비시시 웃었을 것이다. '유명무실'은 절대 아니고 말고.

용환과 나는 옥녀봉 오르는 것으로 산행을 마감했으면 싶어, 반진반농을 해보았으나 어디 산을 안다는 찬규가 듣는 시늉이나 하겠는가.
속좁은 나는 무정하다느니 냉정하다느니 시비를 걸어 보았지만 산에서 산사람에게 시비가 걸릴까. 땀과 함께 산속에 그냥 묻혀 버렸다.

누군가, '부부 싸움하는 말을 옆에서 듣노라면 그 부부의 생활을 엿볼 수 있다' 고 했다.

여자쪽이 '네가 해준 게 뭐가 있어?' 하면 남편은 경제력도 밤일도 별로, '네가 짐승이지 인간이냐?'는 돈은 한푼도 보태지 못하고 오로지 밤일만, '그래 너 잘 났다 잘 났어' 하면 경제력도 좋고 밤일도 잘 하지만 매너는 빵점, '돈이면 다냐?'는 돈만 갖다주고 정말 해야할 일은 안하는 경우.
여러분은 어느 경우? 너무 오래된 버젼인가? 왜 웃지를 않지?

매봉 정상 584 미터. 12시 30분경.
오늘의 매봉은 여느 때보다 썰렁했다. 벌써 휴가철이 시작되었는가. 매봉에서 먹는 제주도 밀감은 '따봉', 물이 잘잘 흘러 달콤하기 그지 없었다.

인옥,수남,동원과 함께 세월아 네월아 하고 느리게 하산길을 잡는데 선두가 보이지 않았다. 갈림길에서 어느 쪽으로 떨어질지 난감하였다. 핸드폰도 일을 하지 않고, 침을 손바닥에 놓고 튀겨 보아도 정답이 없었다.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은 길',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지난 '비가 올듯 말듯한 날'의 산안개가 피어나던 그 길이었다.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그 꿈길 같던 길을 상상이나 하겠는가. 다시 그 날을 그려 보았다.

오늘의 내리막길. 무릎이 예전 같지가 않았다. 오늘따라 가파름이 더 기울었는가.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주관적이고 인위적이냐. 오늘은 힘들고 지난번은 시간 가는 줄 몰랐었는데.......
환경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바뀌는가, 마음에 따라 환경이 달리 보이는가.

이윽고 출발지점으로 되돌아 왔다. 오후 1시 30분경.
잃어버려 보이지 않던 선두는 벌써 '옥돌두부집'에서 시원한 맥주를 만나고 있었다. 누가 이 맛을 아느냐? 산행 후 한 잔의 맥주, '바로 이 맛이야!'

작취미성으로 오늘 산행을 접은 상숙이에게 어떻게 이 맛을 보낼까. 이 맛을 알고도 잠속에서 헤맬까 알고 싶다.

종상이는 힘든 지방근무 일정임에도 아까운 휴일 하루를 특별히 우리 옛친구들에게 주었다.

영신은 바쁜 일정중에도 하산식에 자리를 함께 해주었다. 우리 철수의 짝 영희는 재미로 풀어본 상상게임 속에서 본의 아니게 애꿎은 춤을 추고 말았다.

동원이는 여자친구들에게 전화할 때는 아직도 부끄러워서,'저는 동원이가 아니고 수남인데요....' 한다고 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동원이의 부끄러움을 없애줄 수 있을까요?


''수남이와 친구는 배낭여행을 떠났다. 날은 저물고 비는 오고 숙소를 잡지 못하여 난감하였다. 다행히 어느 큰집에서 하룻밤을 묵어 가게 되었다. 여주인은 '마침 상중이라 안채로 외간남자를 들이지 못합니다. 마굿간에서라도 괜찮으시다면 묵었다 가세요' 하였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수남은 등기우편으로 억만금의 유언장을 받았다. 수남은 어리둥절 갸우뚱 갸우뚱, 자세히 살펴보니 지난 배낭여행시 하룻밤 묵었던 곳, 여주인의 유언장이었다.
'저는 그날밤을 잊지 못합니다. 먼저 하늘나라로 갑니다. 부디 행복하시기를 빌면서 얼마 되진 않지만 저의 남은 재산입니다. 괘념치 마시고 기꺼이 받아주시기를........'

이게 무슨 일인가. 그날밤 수남의 친구는 수남이 잠이 들자 몰래 안채로 들어가 큰일을 하였던 것. 그러나 연락처를 남겨주시라는 여주인의 말에 친구는 덜컥 겁이나서 수남의 것을 알려 주었고.....

수남은 친구를 잘 둔 덕에 생각지 않은 억만금을 얻게 되었고, 그 뒤로 수남은 친구들만 보면 끔찍이도 그들을 챙겼다 한다. 어느 친구가 언제 또 억만금을 가져다줄 지 아무도 모르지 않는가?''


운명이란 무엇인가. 모두들 배낭여행 간다고 난리부르스 칠까요? 이제는 큰일을 하고서도 친절하게 친구의 연락처를 남기지 않겠죠? 수남이처럼 친구들을 끔찍히 챙겨주겠죠?

이제는 동원이의 부끄러움도 치료되겠지요? '저는 수남이가 아니고 동원입니다. 누구좀 바꿔주세요' 할 것이다. 수남이와 다른 친구들은 죽을 때까지 기다린다고 했다.

찬웅과 동원은 '잃어버린 반쪽 친구들'을 모셔와야 한다. 1차 시한은 8월 9일,오후 2시, 상숙군 둘째딸 결혼식장,코리아나 호텔.

서두르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35년을 훌쩍 넘어서기를 바라면서, 오늘 모두들이, 잊혀진 반쪽 친구 모두들을 보고 싶어 했다.

학회일과 결혼식 선약 때문에 참여하지 못한 상태도 다음 산행에는 '상태'가 좋아져 함께 땀을 흘렸으면 싶다. 물론 상숙도 산행 후의 '맥주 맛'을 다음에는 꼭 맛보았으면 싶다.

35년을 좁히는 이야기들은 끝이 없이 이어졌다. 더 계속한다면 식당 영업방해가 되고, 늦은 귀가로 친구들 부부싸움이 걱정될 정도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남은 이야기는 다음 산행까지 남겨 두어야지. 오늘 산행은 공식적으로 끝을 보았다. 오후 3시 30분경.
영신은 산에 오르내리는 시간보다 앉아서 입을 여닫은 시간이 더 많았다고 '재미있어' 했다.


다음 산행은 북한산, 대장은 찬규님. 산행일, 출발시각, 모임장소, 산행코스 등 모든 실행계획은 찬규의 손안에 있음. 우리는 '68 기러기 사랑방'의 산행안내판을 사슴처럼 목을 내밀고 기다릴 것이다.
찬규는 알아서 하시라.

다음 산행을 기다리면서,
'68 기러기 사랑방 개방기념 산행' 겸 '1차 68 기러기 산행'(후기)을 마감합니다.총총하여 이만.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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