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군대에서,1970-1977

두 번째 가정교사, 이화여고 3년 그룹제, 크라운제과 '가봉'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8. 28. 15:45

두 번째 가정교사, 이화여고 3년 그룹제, 크라운제과 '가봉'

창덕여고 3년 입주제, 가정교사 자리를 한달도 채우지못하고 나왓으니 그렇다고 그냥 앉아쉴수는 없었다.

나는 가정교사를 하지않으면 서울생활이 되지않는 참 딱한 처지의 고학생. 어려움이 가득한 학생이었다.

다시 대학본부를 찾아갔다. 직업위원회의 담당은 나를 보고는 씩 웃더니, 사정을 대충 짐작한다는 듯이, 기다려보라 하였다.

며칠이 지났을까?

이번에는 이화여고 3년, 그룹제인데 괜찮으면 날짜를 맞춰 종로2가 크라운제과에서 학생들과 만나보라는 것.

또 마찬가지. 찬밥더운밥 가리겠는가? 고3이면 어떻고 그룹제이면 어떻다는 거냐?

크라운제과빵집에 약속을 잡고 나갔다. 이화여고3년생 다섯이 나를 면접하는 것.

소위 그때 유행하는 말로 ‘가봉’

나는 대학1년생이고 그들은 여고3년생이니 사회적 성숙도로 말하자면, 서울내기인 그들이 나보다 몇수 위가 아니었을까?

서울여학생이라고해서 내가 주눅들거나 수줍어하지는 않았지만, (연애사가 아니고 학업에 관한 일이었으니..) 오가는 대화가 어찌 핀트가 잘 맞지않았다 싶었다.

서울출신 여학생들은 지방출신 남학생과 미팅을 꺼려한다고 하더니,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혹시나 했지만 역쉬나, 불합격.

나의 가정교사 ‘가봉’은 서로 치수가 맞지않아 주문을 취소하게 되었다는 나의 가정교사 씁쓸한 이야기2.

이것도 속을 들여다보면, 농대생에다 지방 광주출신이 ‘가봉’ 부적합된 근본적 이유 아니었을까?

그때 빵값은 누가 냈지? 여고3년생 다섯이 모두 얼굴이 나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빵값을 누가 냈는지 기억에 없다.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