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군대에서,1970-1977

가정교사 구하기, 하늘의 별따기? 첫 가정교사, 창덕여고3년, 입주자리.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8. 28. 15:44

가정교사 구하기, 하늘의 별따기? 첫 가정교사, 창덕여고3년, 입주자리.

누가 서울대생은 원하기만 하면 가정교사 자리는 언제든지 구할 수 있다 하였는가?

나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은 일이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등에 신문광고를 내봐도 전화 한통화 걸려오지않았다.

점심값도 없는데 비싼 광고비내고 광고를 내도 가정교사 자리는 저 먼나라 이야기였다.

그래도 가정교사 자리는 어떻게든 구해야 했다.

신문광고 대신, 대학본부의 직업안내위원회를 통하면, 광고비를 들이지 않고도 더 빨리 구할 수 있다는 것.

나는 수업이 끝나면 만사 제쳐두고 대학본부가 있는 동숭동 문리대로 갔다.

가정교사 구직 신청서를 제출하고 혹시 모르니 직접 찾아오는 학부형들과 면담하기 위하여 현장에서 대기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역시나였다.

신청서를 미리 접수시키긴 했지만, 구하는 학부형의 입장에 따라 취사선택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인기있는 학과나 사범대생이 최우선 고려대상이 되었다.

그렇지만 고3생이거나 그룹제 또는 입주가정교사자리는, 반대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없었다.(고3 수험생은 가르치기 어렵고, 입주는 자유롭지 않으니, 모두가 싫어했다.)

농대생에 광주출신의 스팩으로는 최우선 순위와는 거리가 있었다. 신청서를 냈지만 어느 학부형도 연락이 없었다.

매일 직원안내위원회에 죽치고 앉아있어도, 나에겐 아무런 기회가 오지않으니, 담당직원이 오히려 미안해할 정도가 되었다.

담당; 창덕여고 3학년인데 입주 자리인데 괜찮겠어?

나; (속으로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죠). 좋습니다.

고3+입주 조건, 두 가지 악조건이 겹쳤는데도 나는 기꺼이 그 자리를 받았다.

이불 하나 들고 갈현동 고급주택가에 서울에서 첫 가정교사가 되었다.

문화재관리국장의 3녀중 2녀.

첫날부터 과외 시작. 처음부터 다짜고짜 드미는 것은 모의고사 수학시험문제.

고3 영어.수학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무슨 문제이건 자신만만했던 나에게 그 수학문제는 아리까리했다.

일류학교의 모의고사 문제라는 게 일본기출제에서 꽤 어려운 것만 추려서 내는 것이 일반적인데 창덕여고도 그리 했을 것.

어찌되었든 학생이 풀어달라고 가져온 문제는 알듯말 듯 땀을 뻘뻘 흘리고 헤매고 말았다.

매일 어려운 문제들을 가지고 와서 풀어달라고 하엿다.

결과적으로 한달을 채우지못하고 이불보따리를 다시 싸고 나와야 했다.

가정교사 경험이 없다보니, 일고 다니면서 했던 가정교사만 생각을 했지...(모르는 것 그때 그때 물어보면, 이미 교과서에 나와있는 평이한 것들이라 내가 모르는 문제가 없었는데..)

창덕여고 3년의 경우는 일본출제 모의고사 문제를 바로 그 자리에서 내보이고 나보고 풀어내라는 것이니, 누가 풀 수 있을까? 아마도 출제하신 선생님도 못풀었을 것.

가정교사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무슨 준비를 해야하는지, 무슨 교제를 가지고 매일 하나씩 소개하고 풀어나가야 하는지, 도무지 사전에 아무런 준비가 내게는 없었다.

소박맞기 딱 좋은 경우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가정교사로서 기본적 직업윤리도 없었고, 또 기초적인 직업의식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거기에, 순전히 내 추측이지만, 혹시나 그 학생이 내가 농대생임을 나중에 알고서(대학본부 직업위원회에서 소개받을땐 엉겁결에 승낙하였지만, 고3에 입주조건인데도 서울대생이 오케이했으니, 그때는 농대생인줄 몰랐을 것?)

의도적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들이밀었던 것 아닐까?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그리했을 것.

순진한 시골놈 농대생의 서울살이는 처음부터 삐걱거리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갈현동 입주가정교사 자리가 되어서, 창신동 하숙집을 나오게 되었다...갈현동에서 쫓겨나고 다시 창신동에는 들어갈 낯짝이 못되고 그래서 다음 내자리는 청량리 야채시장 독서실. 이제 정리가 된다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