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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식 상팔자? 차 없는 사람이 최상팔자!

햄릿.데미안.조르바 2004. 10. 21. 21:09
이 생각 저 생각 끝에,
차를 팔아버리고 제멋대로 다니기 벌써 3달 가까이.
좋은 일들이 너무 많이 생겼다.

차를 팔 때만 해도 출퇴근 하는 불편함을 어찌하나 걱정했었는데
막상 실행해보니 걱정은커녕 오히려 즐거움이 가득가득 하였다.

세상 사람들이여,
자유와 행복을 원하시거든 당장 그대의 차부터 팔아 넘기시라.

‘무자식 상팔자’ 라더니,
차 없는 사람이 최상의 팔자였다.
3개월 전 차를 팔아버리고 승용차 없이 출퇴근을 해보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차 없는 사람, 만만세,
차 없는 사람, 자유 그리고 또 자유.
차 없이 다니니 날아갈 듯 하고 느긋해지고 이런저런 잔걱정거리들이 없어졌다.


우리집에서 사무실까지 차 없이 출퇴근하는데 50여분이 걸린다.
승용차로 다닐 때와 시간적으로는 거의 같다.
차가 막힐 경우를 생각하면 오히려 시간이 덜 걸리는 편이다.

항상 50여분이면 출퇴근 시간이 충분하므로 예측이 가능하고 정확하여 또 좋다.
거기에 오다가다 부딪치게 되는 풍경들과 노닐다보면
왜 진즉 더 일찍 차를 버리지 못했는지 지나간 시간들이 아깝기까지 하다.

하루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면 2-3분 안에 지하철역,
서울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비싼 차가 나를 위하여 곧 들어온다.
아주 잘 훈련된 운전수가 어김없이 몰고 들어온다.
제일 좋은 자가용과 제일 가는 기사가 매일 나를 맞이하니 얼마나 좋은가.

혹 몇 분 늦어지면 난 기다리는 시간에 신문판매대에 놓여있는 주간지를 훑어보면 그만.
연예인들에 대한 야한 선정적 기사를 훑어보는 것도 좋고, 선동적 정치기사의 속내를 짐작해보는 것도 즐겁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지하철을 기다리는 다른 사람들의 얼굴표정을 들여다본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들어있지 않은가
별 별 군상들이 모여 있다.
아, 누가 이런 자유를 내게 주었는가

몇 층에다 차를 주차해 두었지?
아침 출근할 때 어느 층에 주차를 했는지, 나의 건망을 또 확인할 필요가 없어 좋다.
겹주차 되어있는 차를 밀치며 낑낑대지 않아서 또 좋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운전이 생리적으로 싫은 나는 손수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 해방감에 날아갈 듯, 좋기만 하다.

출근길에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젊은이들을 보면 나는 곧 신입사원 시절로 돌아간다.
그 때를 회상하면서 흐뭇해한다.
무서운 것 없이 그냥 무작정 뛰고 또 뛰었었다.
가난하였지만 그것을 걱정하지는 않았었다.
어렵고 힘들었지만 그것을 겁내지도 않았었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고, 남을 탓하거나 부모를 원망하지도 않았었다.
난 어느새 그 시절로 돌아가 힘이 새롭게 솟아나고 즉 회춘을 하는 것이니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있던가.

만원이 된 전철을 비집고 들어갈 때는 덜컥 짜증이 날려고 하지만
사회초년병 시절 인천의 지옥철을 생각하면 이것은 맛배기, 과거를 회상케하는 오락물이다.
가끔 운 좋게도 젊은 여성들 틈 사이에 서게 되면 나는 나이를 잊고 괜히 기분이 나이스가 된다.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치고 만나는 것,
지나가는 세월의 흐름을 좇아 따라가 보는 것.
마을버스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전철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전철을 바꿔 타려고 걸어가면서,
여러 군상들을 만나고 그 사이를 흘러가는 세월을 냄새맡는 것은,
시간의 지루함을 모르게 하고, 시간의 양을 잊게 한다.

그래서 물리적인 출퇴근 50분은 나의 시간계산으로는 ‘눈깜짝할만큼’ 금방 지나간다.
아름다운 연인과 먼 길을 가는 것처럼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만큼 지루하지 않고 좋다.

아쉬운 것 단지 하나.
자동차 안의 나만의 절대적 독립공간과 절대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것.
차가 막히면 막히는 대로 차안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나만의 특기인 공상과 망상을 하며 시간의 흐름을 즐겼었는데, 전철을 타면 그 즐거움을 만나지 못한다는 것.

그러나 다른 부수입을 생각하면 아쉬운 것은 이미 상쇄되고도 좋은 것들은 남고 또 넘친다.
부수입 중 크고 특별한 것 하나.
가끔 전철을 타기가 귀찮거나 괜히 더 편해지고 싶을 때,
특히 비가 오는 날의 출근길은
우리 집사람의 차를 뺏어 타고 싶어진다.

오늘 일정이 어떻느냐, 어디를 가느냐, 왜 가느냐 묻다 보면,
티걱태걱하게 되고, 투다닥 접근전도 하게 된다.
내가 승용차로 출퇴근하던 때는 이런 사람살아가는 풍경은 좀처럼 없었다.
그러다 보면 부부가 치고 받는 경우가 나오게 되고 자연히 대화하는 시간과 부딪치는 시간이 많아지게 된다.
티걱태걱 해봤자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안되고 오히려 살짝슬쩍 긁어주는 효과가 있어 부부의 정신건강에 플러스에 또 플러스가 분명하다.
대단한 부수입 아닌가.
일주일에 한두 번 집사람의 차를 뺏어 타는 즐거움도 고게 쏠쏠하다.

집사람 차가 여의치 않고 아직도 전철 타기가 괜히 싫어지면, 까짓껏 택시를 타면 된다.
지나가는 택시들이 모두 나의 것 아니던가.
요즘 가뜩이나 손님도 많지 않다는데 내가 조금이나마 도와주니, 이 또한 좋지 않은가.
택시기사와 이것저것 돌아가는 사회현실을 짚어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일부 부정적 엄살이 있긴 하지만, 열심히 밑바닥 현장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
툭툭 쳐보면 재미 이상을 만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즐거움이요 부수입이다.

부수입은 또 있다.
걸어다니면서 얻어낸 튼튼한 다리힘과 든든한 머릿속은 얼마라고 값을 매길 것인가.
차를 버리고 걸어다녔더니 육체적 정신적 건강이 그냥 지체없이 찾아오더라,
이것이 최상팔자가 아니면 무엇이 최상팔자일 것인가.
세상사람들이여,
얻으려거든 버리소서, 차를 어서 버리소서.
자유가 오시고
건강이 오시더이다.

금요일이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슬쩍 일탈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좀처럼 밤시간에 술약속을 하지않는 나지만 가끔 쏘주 한잔이 생각난다.
비가 오는 날은 그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급기야 누군가를 불러내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혼자서 쏘주 한잔에 얼굴과 마음을 붉게 물들이는 경우도 생긴다.
어쩌면 천지개벽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니, 차를 팔지 않았으면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덤'이요 부수입일 것이다.

그런 날이면 전철역에서 집까지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그냥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걸어가는 20여분은 나의 절대적 자유시간이 된다.
밤늦은 그 골목길은 나를 20대의 대학생이거나 30대의 사회초년병으로 돌려놓는 절대적 자유공간이 된다.

‘보리밭’과 ‘고래사냥’을 목놓아 부르지는 못해도 벌써 발걸음은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
마음은 흥겹게 휘파람 불며 보리밭을 지나고, 그 神話 속의 예쁜 고래 한 마리를 잡고 만다.

이제는 자유이고 행복이어라.
차를 타지 않고 걸어가는 길은 정말 좋다.
걸어가면서 보이는 세계가 가장 아름답다 하더니,
나는 그 아름다움을 만났으며 자유도 만났고 행복도 만났더라.

나는 富者.
나는 自由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