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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도 성인봉 가는 길은 꿈 길이었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04. 7. 14. 21:06
독도도 보고 싶고, 성인봉도 올라가고 싶은데,
어디로 갈까?
둘 중 하나, 자유선택 여행을 해야 하는데, 양손의 떡이었다.

‘성인봉으로 합시다.’
독도는 늙어서 힘없을 때도 갈 수 있지만, 성인봉은 지금 가지 않으면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모른다, 이번 기회에 성인봉을 가자, 우리집 '그냥'씨의 결론이었다.

7월 10일, 아침 7시 10분.
숙소 뒷길로 하여 성인봉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아침안개가 깔린, 후덥지근한 전형적 여름 날씨가 우리부부를 환영하고 있었다.
울릉도에서는 1년 365일 중 햇볕이 있는 날이 잘해야 5-60일 정도라는데,
울릉도에 들어온 지 오늘로 3일째, 한번도 비가 오지 않았으니 우리들은 정말 축복받았음에 틀림없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오지만, 나갈 때는 마음대로 나가지 못한다는 곳이 울릉도라 하지 않았는가. 그만큼 비가 많고 바람이 많다는 곳인데 우리가 머무는 동안은 전혀 평소의 울릉도답지 않았으니 하는 말이었다.

성인봉 가는 숙소 뒷길은 매우 가파른 아스팔트길.
울릉도의 평균 경사가 25도 정도라고 하였는데, 이곳의 경사는 느낌상으로는 4-50도가 되지 않을까, 발걸음 옮기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백운대 가는 도선사의 아스팔트길은 이 길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평소 도선사의 아스팔트길을 얼마나 원망하고 저주까지 하였던가.
이곳 울릉도에 와서까지 아스팔트길을 통하여만 등산을 해야 한다니 서글픈 생각과 더불어, 괜스레 짜증까지 겹쳐서 더 힘들었다.

이미 산 속에 들어왔는데도 레미콘과 굴삭기까지 동원되어 여기저기 공사판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후부터는 일반인들의 통행이 금지되니 내려올 때는 다른 쪽으로 하산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울릉도 산 속도 이미 개발의 마술에 걸려 있음에 틀림없었으나, 난 어쩐 일인지 전혀 박수쳐 줄 마음이 아니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자연환경은 우리가 잠시 빌려 쓰다가 다시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라는데, 정말 이렇게 깊은 산 속까지 파헤치고 부수고 해야 우리들 생활이 정말 더 좋아지는 것인가.

아이러니라 해야할 것이었다.
아스팔트로 발걸음이 무겁고 가슴이 답답해도, 굴삭기로 귀가 멍멍해지고 레미콘으로 눈이 흐릿흐릿해져도,
이곳의 자연은 흐트러짐 없이 의젓하게 도시의 낯선 손님, 우리들을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꾀꼬리가 구슬 같은 소리로 우리 부부를 환영하고, 뻐꾸기는 조금 구슬프게 그 존재를 알려왔다. 어미소와 새끼소는 큰 눈만 꿈벅거리고 입으로는 되새김질하며 무엇을 반추하고 있을까?
닭장 속의 닭들과 돼지우리 속의 돼지들은 어쩐지 답답하게 보였을 뿐, 그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욕심이 없어 보였다. 개들은 사슬에 묶여 있었지만 컹컹 짖어대며 훨씬 자유로웠다.
이들은 이미 순서를 정해놓은 듯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제 소리들을 내면서 우리부부를 환영해 마지않는 어떤 의식을 하는 듯 하였다.
심지어 공사판의 소음까지 덜커덩 뚝딱 텅텅 툭턱 거리면서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고 더해지면 이것은 분명 숲 속의 교향악이 되고도 남았다.
지휘자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완전한 숲 속의 교향악단이 아니던가.

발아래 가까운 가파른 산비탈에는 여기저기 밭을 일구어 갖가지 밭작물이 푸릇푸릇 소리를 내고 있었다.
길가 군데군데는 이름 모를 꽃들까지 저마다 존재를 소리 없이 알리고 있었다.
다만 내가 잘 알아듣지 못할 뿐, 몰라주는 것을 그들은 짜증내지 않고 있을 뿐, 우리들 인간들하고는 다르고 또 달랐다.
그 중에서 내가 알아보는 것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자신만만하게 반짝거리는 동백, 처음 만나는 특이한 빛깔의 보랏빛 수국 그리고 거침없이 뽐내는 샛빨간 장미, 이들도 소리지르지 않고 효과음 크게 내는 것들, 교향 악단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있을 것이었다.

조금 더 떨어진, 산비탈 끝에는 새로운 항구가 들어선다 하니, 반쯤 열린 방파제는 바쁘게 바닷물을 끌어들이고 있고, 나머지 방파제가 없는 쪽에는 바닷물과 노래를 부르며 노닥거리는 듯 한가롭기 그지없이 보였다.

저 멀리 바라보이는 바다는 아예 하늘과 맞닿아서 큰 화음을 벌써 웅장하게 만들어 버린 모양이었다.
바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해 하늘을 향해 달려 뛰어들었는지,
기다리다 지친 하늘이 바닷물의 열정 속으로 빨려들어 흠뻑 빠져버렸는지,
바다와 하늘이 맞붙어서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어디부터가 하늘인지 우리들 인간들이 알 수 없는 모습을 하며 우리를 반갑게 손짓하는 듯 하였다.
구름인지 바닷안개인지, 희뿌연 것들이 움직이는 듯 그냥 멈추어 있는 듯,
온통 바다와 하늘을 뒤덮어, 우리들 인간들이 어찌 알아볼 수 없는 그림을 그려놓고 있었다.
다만 드넓게 굽어지는 듯 펼쳐지는 일자형 수평선만이 바다와 하늘을 가르는 경계선이려니,
우리들은 짐작할 뿐이었다.

숲 속의 교향악이 펼쳐지는 배경으로 누군들 이렇게 완벽하게 꾸밀 수 있을까?
보이지 않는 자연의 손이 아니면, 전지전능한 조물주의 셈 법이 아니라면 이런 공식은 없을 것이었다.
축복을 받지 않고서야 우리 부부가 어찌 오늘 이 숲길을 걸어갈 수 있단 말이더냐?

자연과 인간 그리고 기계,
하늘과 바다 그리고 구름과 안개,
비탈진 산의 밭작물들과 푸른 숲의 나무들,
빛나는 동백, 보랏빛 수국 그리고 뽐내는 장미,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해',
모든 것들을 한데 어울리게 하며, 더 자연스럽게 뛰어 놀게 만들어주는 바탕,
'보이지 않는 해‘는 오늘 이 '숲 속의 교향곡’의 숨은 공로자이며 연출자였을 것.
우리 부부는 그 한 가운데 서서, '숲 속의 교향곡'을 황홀하게 넋을 잃고 감상하고 있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1 시간 여,
가파르고 힘든 아스팔트 고갯길이 끝나고 이제야 비로소 성인봉 가는 본격 산길이 나타났다.
‘굽은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곧게 할 수 없다’
강원도 비탈이 울릉도에 놀러 왔다가 울릉도 비탈을 보고서는 그냥 울고 갔다는, 울릉도의 비탈길을 오르는 산행객들에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일까?
성인봉 가는 길이 크게 굽어지고 또 가파르니 쉽게 가려하지 말고, 그저 우직하게 꼿꼿이 끝까지 오르라는 것일까?
아스팔트 길이 끝나는 마지막 외딴집의 마루 위, 빛 바랜 액자 하나가 어울리지 않게 한 마디 하고 있었다.

아침 8시,
안평전,
성인봉까지 3.2 Km.

이정표를 막 지나니 산비탈 텃밭 속에서 장끼와 까투리가 후드득 날아갔다.
모처럼 데이트를 방해하지 않았나 미안하면서도 모처럼 꿩들을 보니 내 몸 속에 있던 찌들은 도시의 공해가 함께 날아갔으면 싶었다.

우와, 캡이다 캡!
어떤 인물에 대한 극존칭 또는 어떤 사물의 최대값을 표현한다는,
저절로 요즘 아이들 표현이 터져 나왔다.
■캡■ ■짱■

산길,
그것은 오솔길이었다.
자욱한 안개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성인봉 가는 산 전체를 홀로 차지한 것이었다. 전산 전세.
일요일의 북한산이나 청계산, 관악산과는 하늘과 땅의 차이였다.
그런데 오르는 길이 '지그재그'로 나있었다.
가파른 비탈을 오르는 최선의 선택 아닌가.

산으로 들어온 지 벌써 90여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무와 나무 숲 사이로 언뜻언뜻 바다가 보이고,
귀를 열어 기울이면 파도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산비탈의 기울기가 그만큼 가파르다는 것이고 지그재그로 올라와도 바다와는 직선거리로 그다지 멀지 않다는 것이리라.
늘씬하게 쭉쭉 뻗어있는 나무들 속에서 우린 하나의 키 작은 나무가 되어 자연스럽게 숲 속의 일원이 되어 버렸다.
해는 보이지 않고 옅은 안개만 자욱할 뿐, 숲 속은 우릴 이미 속세의 인간으로 여기지 않으려 하였다.

이 깊은 산 속에 웬 나무 사다리가 있단 말인가?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곳곳에 길 위에 나무 사다리가 놓여 있었다.
거무튀튀한 돌들 위를 올라가기 부담스럽지 않게 나무로 사다리를 만들어 오르는 계단이 되게 한 것이었다.
서울 근교의 아스팔트길이나 인조목 계단을 생각하면 이런 자연스러움과 호사스러움이 따로 없었다.
빽빽한 나무들이 조명하는 알맞은 어두움과, 낮게 깔리며 우리들 발 밑에서부터 우리들 키를 넘나드는 자욱한 안개 그리고 호사스러운 나무 사다리,
우리들은 나무 사다리를 타고 넘으면서 꿈나라를 여행하고 있었다.

숲 속은 꿈속이 되었으며, 우리가 걷고 있는 숲길은 어느새 꿈길처럼 변하고 있었다.
이 아름다움을 어찌하면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을까.
이 황홀함을 어찌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을까.
나의 머리 속 저장능력과 기억능력은 크지 않아 초라할 것인데, 어찌할 방법이 없을까.
부지런히 디카의 샤터를 눌러보지만 잡히는 것은 자욱한 안개와 하늘 따라 올라가는 쭉쭉 뻗어있는 나무들 뿐, 내밀한 저 아름다움과 내 마음의 황홀함은 도저히 담아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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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경.
지그재그 하기를 수십 번,
어느 정도 산비탈이 일단락 되었는지, 어느 중간 봉우리에 닿았다.
드디어 해를 만날 수 있었다.
그 동안 해는 하늘에 있었지만 우리가 숲 속 깊이 나무들 속에 있었으므로 안개만 만났을 뿐이었는가.

반대편으로 확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저기 보이는 것이 바다인가, 하늘인가.
안개인지 구름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그로 인하여 바다일지 하늘일지 알 수가 없었다.
해가 떠있던 봉우리를 지나 다시 숲 속으로 들어가니, 이런 일이라니!
우리가 지금 바다 속에 있는지, 숲 속에 있는지 잠시 헷갈리고 말았다.
앞을 봐도 뒤를 봐도 옆을 봐도 모두가 푸르고 푸른 숲뿐이고,
쭉쭉 하늘로 뻗어있는 나무들을 따라 얼핏 하늘을 보면, 해는 보이지 않고
저 파랗다가 하얗기도 한 것이 하늘인지 바다의 수면 위인지,
정말 혼동하고 착각되고도 남았다.

바람등대.
성인봉까지 800M

성인봉에 가까이 갈수록, 땅에서는 멀어지는 것이고, 하늘과는 더 가까워지는 것이리라.
같은 숲 속이었지만 이제는 햇볕이 들어차 있었고, 안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쭉쭉빵빵한 나무들의 자신만만함이 보였으며, 햇볕에도 전혀 부끄러워 않고 그 자랑스러운 나신들을 뽐내고 있었다.
이곳은 원시림의 군락지.
너도밤나무, 섬피나무 그리고 우산고로쇠나무들의 원시세계.

9시 50분 경.
숙소로부터 160 여분.
드디어 聖人봉 정상, 해발 984M.

다시 해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검푸른 나비 한 쌍도 우리를 환영하는 듯 우리들 주위를 왔다 갔다 하였다.
울릉도에만 서식한다는 산나비, 몸 한가운데에 샛파란 띠가 둘러있는 '제비 나비'는 우리들의 성인봉 정상 도착을 축하하고 환영하는 것이 분명하였다.
성인봉,
한자를 파자하면 듣고 말하는 것이 임금처럼 할 수 있으니, 못할 것이 없고 부러울 것이 없게 되었으니, 이제 모든 일들을 마음먹은 대로 순리에 따라, 편안하게 맞이하거라, 아닐까?
성인봉까지 가파른 비탈길을 힘들여 올라왔으니, 세상사 아무리 어려운 일인들 못 이겨낼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아닐까?
속세의 일들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이제 남은 세월, 성인들이 해왔듯이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듯 하지 않는 듯 살아가면 어떨까, 아닐까?

성인봉에서 20M 정도를 더 내려가면 전망대.
울릉도 사방이 보인다는 전망대는 오늘따라 시야가 안개 속에 갇혀 버렸다.
날씨가 좋을 때는 97Km 멀리 독도까지도 볼 수 있다는데, 오늘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늘의 전망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망대가 되었다.
건너편에 보이는 산봉우리 하나가 보일 듯 말 듯, 무슨 손짓을 하는가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그곳이 안개 속인지 구름 속인지 바다 속인지 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눈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들어오지 않았지만, 가슴속으로는 뿌듯한 충만감이, 끝모를 자유로움이 가득 차서 들어앉았다.
제비나비는 언제 왔는지 허허로이 한가롭게 자유롭게 우리들 주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이제 천천히 하산하심이 如何, 아닐까?

성인봉에서 그냥 오른쪽으로 떨어져 달리면 나리 盆地.
원시림도 만나면서 화산구의 나리분지를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4.5Km.
1시 30분까지 도동항 여객선 터미널, 오후 3시발 묵호행 한겨레호에 맞추기는 무리,
다음 언제, 꼭, 다시 성인봉에 오르고 나서 나리분지로 내려가리라.
하늘 아래,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하였지만, 나리분지 가는 길의 원시림은 아직 Virgin Forest라 하지 않던가?
바람등대에서 만난 모 대학 회화과 여학생들이 부럽고 또 부러웠다.
나리분지를 지나 오늘 중으로 천부리까지 가면 된다하니, 그들의 젊음도 자유도 밝고 티없음도 모두가 부럽기만 하였다.
아, 그 옛날이여.
아, 그 젊음이여.

도동항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안평전에서 성인봉 가는 길하고는 많이 달랐다.
지그재그 길이 하나도 없었다. 산비탈을 내려가는 것이야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경사가 있을 터이지만, 그냥 산허리를 휘감으면서 돌아 내려가는 지, 크게 가파르지 않으면서 심리적으로도 훨씬 편하였다.
맨발로 내려가도 좋을 만큼 산길은 촉촉하고 포근하였다.
너도밤나무, 우산고로쇠 나무 그리고 섬피나무들이 여전히 우리들을 맞이하고 있었으며,
뻐꾸기와 매미까지 소리내어 우리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제비나비가 또 나타났다.

작은 등대 11시 45분경.
약차를 파는 노부부는 한가로웠다.
이 세상 부귀영화가 무엇인지, 잘나고 못난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모른다고 하였다.
다만, 마지막 내려오는 길에 차 한잔 마시면서 잠시 쉬었다가, 산행의 끝을 잘 마무리할 시간을 주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행복하였다.
우리들은 칡, 당귀, 천궁, 마가목, 복분자, 박하 그리고 감초가 들어간 ‘약차’와 함께
성인봉 정기를 몽땅 들이마셨다.

황소 두 마리가 알 듯 모를 듯한 눈망울로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인간이 걸어가는 속도에서 사물을 보았을 때만 보인다.‘
‘우리들의 속도를 자연의 속도에 맞추었을 때 사물이 아름답게 제대로 보이며, 또한 소위 스트레스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은 본래 직립 보행하는 것으로 태어났는데 어찌하여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연의 속도를 무시하는 것인가?
오늘날 인간들은 자연을 버리고 기계 속에 틀어박혀서 인간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울릉도에서는 식당마다 그 밥맛이 모두 다르다 하였다.
쌀이 자급자족되지 않으므로 육지에서 들여다 먹는데, 들어오는 날의 파도 높이에 따라 쌀이 스트레스를 받아 쌀 본래의 특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 하였다.
자연의 속도를 버리고 기계의 속도에 따라 맞추었을 때 자연과 인간은 힘이 든다는 것 아닌가.

산길, 흙길이 끝나가는 마지막 즈음에 솔잎이 흐드러지게 퍼져 있었다.
동백나무는 이제는 꽃이 없지만 잎새만큼은 반짝반짝, 자신만만하게 그 짙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소나무를 휘감고 꼼짝 못하게 하는 수국등나무, 그는 소나무를 휘감고 사는 것이 살아가는 방법일 뿐, 너무 비난하지 말라고 하였다.
강원도 비탈이 놀러왔다 울고 갔다는, 그 울릉도의 비탈이 저 건너편에서 비탈밭이 되어 푸른 밭작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인간들의 욕심은 비탈을 그냥 비탈로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을 인간 속으로 불러들이는 사랑이었다.

흙길이 끝이 나고, 이제 아스팔트길이 다시 괴물처럼 나타나서 우리들을 압박 또 압박하였다.
비탈이 어찌 가파른지 제대로 걸어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지그재그 발놀림으로 가파른 아스팔트길을 가로질러야 하는, 대원사까지 내려가는 30여 분은 우리들에게 놓여진 마지막 인내심 시험이었다.
인간과 자연을 접속하는 길이 아스팔트 외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인가?

황소 두 마리가 눈을 끔벅끔벅 거리면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하였는지 이제는 알았느냐, 우리들에게 묻는 듯 하였다.
인간이 만든 기계를 우리들의 자연 속에 알맞게 집어넣어 우리들 인간의 마음대로 활용하면 될 것, 아닌가?
인간의 속도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입니까?
우리들은 그들에게 되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