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독서노트 다시읽기

옛독서노트 다시읽기; 아름다운 흉터/이청준

햄릿.데미안.조르바 2025. 6. 11. 20:18

 

세월이 흘러 부끄럽기만 하던 나의 흉터들이 거꾸로 아름답고 떳떳한 자랑거리로 변해갔다.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참음 위에, 힘들게 지탱되어가야 하는 부채인가를 배우게 하였다.

가족들의 연속적인 죽음들이 어머니로 하여금 오히려 그 비정스런 삶의 진실을 익히게 하였다.

 

 

형은 책의 곳곳에다 그곳을 읽을 때의 느낌을 간단간단히 기록해두거나 때로는 상당한 분량의 독후감 같은 걸 별지에 적어 끼워두고 있었다.

형은 죽었지만 살아있었다.

아니, 나는 형의 죽음과 부활로 인하여 사람이란 원래가 육신의 죽음만으로 끝나지 않는 또 다른 생명이 있음을 보게 되었다.

 

 

베푸는 자의 은밀한 오만심이 맘속에 싹트게 마련이었다.

능력이 자라주지 않으니 베풀고자하는 욕망은 제풀에 공연한 부채감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우리 모두에게 까닭없는 죽음의 쫓김의 계절, 사람이 사람을 가장 못믿고 쫓기며, 끝없이 두려워해야했던 악마의 계절이었다.

 

 

산은 항상 변함이 없고 온화하고 고요하여 어진 사람의 마음을 끈다. 仁者樂山

 

 

공부해서 벼슬 얻을 생각하지 마라.

위에 서서 사람들을 다스리려 하지도 말고,

어는 한쪽 사람들 편에 끼어 살려고 하지도 마라.

 

 

요즈음 사람들 가운데는 작은 상처나 흉터 하나 지니지 않으려함은 물론, 남의 아픈 상처 또한 거기 숨은 뜻이나 값을 한 대목이라도 읽어주지 못하는 이들이 흔해빠진 현상이다.

아무쪼록 자기 흉터엔 겸손한 긍지를,

남의 흉터엔 위로와 경의를, 그리고 흉터 많은 우리 삶엔 사랑의 찬가를 함께 할 수 있기를.

 

 

삶으로 맺고 소리로 풀고,

유년의 땅에 와서는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는다.

잃어버린 것 가운데서도 순수한 공포감 같은 것을 되찾게 된다.

까닭없는 공포감.

까닭이 없으니 공포감은 순수하다.

그러니 내가 유년의 땅에서 순수란 공포감을 되찾아가는 것은, 잃어버린 옛날의 순수 자체를 되찾아가고 있는 것 한가지인지 모른다.(여름의 추상중에서)

 

 

그리운 것은 이제 잘 꿈을 꾸지 않는다.

어리석고 유치한 것도 꿈을 꾸지 않는다.

꿈꾸지 않는 대신 우리들 생활에서 이미 귀중한 어떤 것들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왜냐하면 꿈이란 원래가 질서없는 무의식의 작동현상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그 꿈은 우리의 현실경험과 그 의식의 축적 위에서 보다 활발히 가동되는 무의식의 의식이므로 해서 말이다.

 

 

----이청준의 인생/이청준 산문집,2004.7.25.비.

소설이 글 쓰는 이의 생각을 퍽 우회적으로 담아내는 형식인데 비하여,

수필류 산문은 그것을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글쓴이의 숨결이나 생각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있어 그 책임을 피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소록도의 꽃

‘선생님이 제 젊음을 빼앗아 가버렸으니 책임지세요?’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으니 염려하지 마세요. 오히려 전 제 삶으로 더 많이 바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예요.’

‘이 섬만 해도 제 삶이 꽃피기에는 너무 호사스런 것 같아요’

어느 종합병원의 약사가 ‘당신들의 천국’을 읽고 소록도로 근무를 바꾸고 나서 한 이야기.

 

 

세상에서 제일 비싼 소철분 이야기

‘아니, 자네가 저걸 사 들여갈 능력이 있을까, 자네들 능력으로는 아직도 내가 내놓으려는 값을 감당하기가 어려울텐데...’

‘그럼, 여기 선생님댁에 그냥 놔두고 해마다 와서 구경이나 하고 가지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제 아닌게아니라 다음 해부터는 아내와 나의 삶의 성장과 조그만 안정이 모습 지어진, 그 삶이 누려온 은혜와 성장의 내력이 담겨진 그 소철분을 보기위해서라도

다음부터는 해마다 세배를 거를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전 나와 아내의 결혼식 주례사를 다 끝내고 가족들을 대신해서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오늘 하루로 축복의 마음을 주지 마시고, 이 어리고 힘없는 두 사람의 앞날을 두고두고 함께 지켜보고 살펴주시기를 이 주례와 함께 마음속 깊이 다짐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인간문화의 근원 요인 중에 사람의 죽음을 빼고는 그 영향력이 性을 앞설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서방문화의 문학이나 연극, 미술, 음악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동기나 소재가 많은 부분, 인간의 성과 성 욕망에 뿌리하고 있으며,

그러한 작품은 성 욕망의 순화와 해방의 과정, 나아가 성 자체를 인간 존재와 삶의 한 핵심적인 정서가치로 수용하여, 그것을 문화예술의 힘차고 아름다운 단계로까지 고양시켜 나가는 과정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일상생활속에서도 옷 입고 맵시내고, 춤추고 노래하고 노는 것, 심지어는 남녀간의 대화법이나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필경에는 의식주와 가정생활, 사회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그 성이나 성 욕망과 관계된 광범위한 문화적 양식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옛 사람들에게라고 성이 없고 성의 욕망이 없을 리 없는 일이고 보면,

나름대로 그 성과 성 욕망을 관리하는 방법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로되,

그것이 대개는 인간 삶의 보편적 가치체로의 고양과 일반화의 길로 나아가지 못하고, 어두운 밀실의 비밀스런 유희술로 의뭉하게 잠복해온 꼴인 것이다.

누릴 건 누리되 점잖은 척 밖으로는 위장하며 은폐시켜온 성, 그 성은 아무런 문화의 씨앗도 싹틔우지 못하고 오로지 성 자체, 원초적 본능으로서의 성욕자체로, 혹은 부도덕하고 불결스런 밀실의 비밀 유희거리로 남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리라.

남녀상열지상, 춘화도 이야기.

 

 

깨어진 상처로 완형을 이룬 그릇.

당시 사람들이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을 구별짓는 방법으로 일부러 그렇게 깨뜨린 것이니까요.

도굴꾼들은 그것을 모르고 그냥 내버리고 갔지만, 그러니까 이것은 깨어진 그대로가 완형인 셈이지요.

깨어진 것이 그릇의 원래의 모습이라니, 그 깨어짐을 통하여 그릇이 비로소 완형을 이루게 된 경우라니,

아니, 깨어짐이 있어야 깨어짐을 통하여, 그 깨어짐의 상처로 하여 비로소 제 그릇의 이름에 값하는 완형을 이룰 수 있다니!

그 상처와 상처의 내력으로 이루어져가는 것, 그것은 우리의 역사도 아마도 그런 식이 아닐까.

세상이 더 나아지자면 오늘과 내일간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그 갈등을 해소하고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선 이런저런 상처들이 빚어지게 마련일 터이다.

그러니 범박한 표현으로, 우리는 그 상처와 흉터들을 평가하고, 그 사연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써 나가는 것이 바람직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거절을 용납하는 도량;

‘허허, 젊은 사람이 어려운 말을 했어요.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으니, 내 불찰을 깨우쳐 주었으니, 이젠 이 일에 더 이상 신경쓰지 말고 그만 가봐요. 허허’

언짢아하거나 노여움을 품기보다 선선한 웃음 속에 자신의 처사를 민망해하면서 나를 외려 위로하고 격려까지 해주는 것이었다.

노련한 빈말과 허세가 아닐까? 의심도 해보았다.

 

 

하지만, 자기 능력 밖이거나 크게 도리를 벗어난 경우라면, 그 당장 거절과 불응의 뜻을 분명히 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이로우리라 생각된다.

‘알아봄세, 기다려 보게’,애매한 치레성 응대로 헛기대를 걸게 하거나,

‘내 힘껏 애써볼 터이니 나를 믿고 안심하게’ 따위의 허세성 다짐으로 마음을 놓게 했다가, 그것이 한낱 헛시간 끌기나 제 풀에 지쳐 물러서게 하기 술책쯤으로 결말이 날 경우,

그 상대방에겐 일을 망치게 한 이외에 배신감에 수모감에, 다른 방책을 구해볼 기회마저 잃게하는 이중삼중의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드러운 것과 강한 삶;

꽃을 핑계로 한 그 옛 친구들과의 행운과 축복의 술자리는 이제 끝이 난 것이었다.

나는 허전하고 슬프기 그지 없었다.

세상살이가 왜 이리 각박해져 가는가.

사람들 사이가 왜 어째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가.

만났다간 헤어지고 가까워졌다간 멀어지고, 내가 주위에 원망같은 것을 심어왔단 말인가.

그 원망으로 저들이 나를 용서하지 못함인가.

나 역시 그러는 저들을 용서할 수 없음인가.

다시 화해를 도모할 길은 없는가.

 

 

부드러운 이해와 용서와 감쌈, 어떤 내세움이나 주장보다도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부드러움이 단단한 것보다 힘있고 강할 수 있는 것이다.

저 무위의 철인 老子도 물과 어린애를 도에 가장 가까운 표상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여자는 그 부드러움과 감쌈과 받아들임과 너그러운 사랑으로 하여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힘있는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큰 집을 짓는 사람;

집일과 자기 삶에 대한 노인의 특이한 결벽성과 엄격성,

자기는 이날까지 남의 집만 지었지, 자신이 살 집이나 자식들이 들어살게할 집을 지은 일이 없어, 그 자식들에게 한평생 자기가 해온 일이 어떤 일이었는지를 한 번은 보여주어야할 것 같다고 해서...

80세 생일잔치를 자기가 지은 이 큰 집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잇속도 챙기지 않는 대신에........마지막 부탁하나 들어달라고 하였다.

 

 

글장이의 여편네;

‘저앤 참 이상해졌어. 자기 처지가 변변치 못하니까 주눅이 들어 남의 안방문도 제대로 열지 못하고 쭈볏쭈볏거리잖아.’

‘설마 기가 질려서 그럴려구. 차라리 좋은 집보고 질투가 나서 그랬다면 몰라두’

 

 

‘난 아무리 새집이라도 남의 집 안방까지 열어보기가 뭣해, 예의로 그랬는데, 그게 그렇게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예요.

요즘은 화려한 침대로 꾸려놓은 침실도 보아주고, 장 속의 보석과 밍크 오바까지 구경해주고 부러워해주는 것이 예의인가 봐요.‘

 

 

농부가 되신 옛 선생님;

청소년 시절엔 공부와 학비 마련에 쫓기느라 엄두를 못냈고,

이후에도 이런저런 핑계로 좀처럼 기회를 만들 수가 없었다.

50대를 넘어서면서, 하얀머리를 하고 고향을 찾았다. 이미 난 삶의 쇠락증을 느끼기 시작한데다, 곰곰 헤아려보니 선생님의 나이가 어언 70이 다 되시어 더 이상 미루었다간 영영 그 일이 벗을 수 없는 마음의 빚으로 남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겪어오신 지난날의 희비영욕을 돌이키는 어조에서도 전혀 마음이 흔들림이 없이,

모든 것을 그저 하찮고 부질없어하시는 식이었다.

그 때의 봄철 운동회까지도 젊은 시절 한때의 꿈 장난놀음이었듯 범연스러워하실 뿐이었다.

싱그러운 삶의 향기는 시종 선생님을 지키고 앉아 잔잔한 미소 속에 여전히 옛 모습을 잃지않고 계신 그 늙은 누님같은 사모님의 애틋한 모습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자, 그럼 다시 또 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자리를 일어서세나. 난 오늘 해지기 전에 들에 나가 해야할 일이 있으니까’

훌쩍 자리를 일어서시는 당신을 따라 몸을 일으키면서도 마음이 그렇게 밝고 가벼울 수가 없었다.

‘무어, 네가 노년? 삶의 피로? 그저 농사꾼으로 조용히 늙어가시는 선생님의 담담하면서도 힘찬 삶을 좀 보시지!’

 

 

일생 갚아야 하는 빚;

‘이 돈 몇 푼 갚을 생각말고 공부 열심히 하시오’

어느 날 과외공부를 마치고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값이 없어 군밤장수 청년에게 차비를 빌렸는데, 버스비보다 많은 100원짜리 하나를 주면서 그 청년이 하는 말이었다.

그 돈을 갚으려는 것이 그 청년에 대한 배신처럼 여겨졌을 만큼 진지하였다.

살다보면 애초에 갚을 수가 없거나 아무리 갚아도 줄어들 수 없는 필생의 빚을 안게 되는 경우가 생기곤 한다.

 

 

한 손님이 내게 차 한잔을 시켜놓고 나가신다.

소리없는 격려와 질책이 함께 서려있다.

‘글 잘 써 이 친구야, 내 항상 너 지켜보고 있어’

 

 

이따금 불가피한 경우를 당하여 되갚을 길 없는 평생의 빚을 지곤 하는데,

만원짜리를 냈는데 거스름 돈이 없어 기다리다가 바꿔타야하는 정거장이 다가오는데, 그냥 내릴 수도 없고하여 난처할 때, 옆자리의 할머니가 잔돈을 주면서 그냥 내려 차를 갈아타라고 하실 때,

김밥과 소주가 생각나서 포장마차에 들어갔는데, 주머니를 셈해 보니 집에 갈 차비밖에 남지 않아, 시켜놓은 음식을 물리려 하자,

그냥 드시고 나중에 이곳에 올 기회가 있으면 갚던지 아니면 그냥 안 주셔도 된다고 할 때,

나중에 갔더니 이미 철이 지나 없어지거나 단속에 걸려 더 이상 장사를 하지 않을 때,

평생 빚을 지게 된다.

 

 

생명의 섭리;

식물인간, 자식으로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결정은 누군가 옆에서 마음을 함께 해줘야 한다.

말기지병환자의 생명연장에 대한 사회적 논란, 의료수가와 죽음의 존엄성, 옳고 그름, 우리 생명의 섭리와 온당한 종말에 대한 생각,

6.25를 겪은 무신론자, 터져나오는 배 창자를 다시 상처 속으로 집어넣으려 발버둥치다 눈을 감는 그 참혹스런 죽음 앞에 저절로 절규가 터져 나오곤 했지요.

하느님, 당신이 저 생명을 창조하셨다면 그 생명을 다시 걷우어 가시는 모습이 어찌 그리도 잔인스러울 수 있단 말입니까?

 

 

짦은 글귀의 매력;

‘길이 없으면 만들며 간다/여기서부터가 희망이다’, Imf 시절 ‘고은’

 

 

'아침이면 종소리처럼/저녁이면 가로등처럼/나날이 새로 피는 삶‘

‘영혼에는 빛이 있고, 말에는 향기가 있다.‘

--이청준

 

 

찾는 이 없다고

꽃을 피우지 않으리

살구나무 한 그루

빈 골목길을 훤히 밝혀

오는 이 없다고

그리움마저 피지 않으리.

--김영언의 살구꽃 핀 세월 중에서

 

 

젊은 시절의 글 읽기는 문틈으로 달빛을 엿보는 것 같고

중년의 책 읽기는 뜰 가운데에서 달을 바라보는 것 같으며

노년의 독서는 동산 위에 올라 달을 구경하는 것과 같다.

--중국의 장조, 청나라 문장가, 의 일부를 줄여서,

 

 

이청준의 ‘연’

이른 봄 마을 뒷녘 하늘에 먼 여행을 꿈꾸는 작은 새처럼,,,,,,,,,,,,중략

‘꽃이 핀들’

조로롱 조롱.....어디선지 저녁 산새 울음소리가 그늘진 나뭇가지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중략,

 

 

‘해변 아리랑’

시인은 늘 해변 밭 언덕가에 나와 앉아 바다의 시를 앓고 갔다.

중략.

 

 

삶의 향기, 말씀의 향기;

상추잎도 쑥갓잎도 꽃동이 쇠어 뽑혀 나가는 경우가 많다.

지나가는 이웃과 나눌 줄을 모른다.

마치 그 땅 가꾸기도 도회살이의 한 경쟁적 유행처럼,

우리 삶의 고갈이나 갈망은 느낄 수 있을망정 풋풋한 삶과 사람의 향기는 맡기가 쉽지 않다.

‘너 왔느냐. 귀한 손님이 왔다길래 무 배추 솎아서 가져왔느니라’, 풋김치거리 한다발을 던져놓고 가면서 동네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까짓것 가게문 닫고 한판 놀아봅시다. 나도 소리내다 말았는데 잘 되었네요’, 하면서 육자배기를 뽑는 것이었다.

 

 

기원의 손;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예수님이 열 두 제자에게 말씀하신 ‘너희 중에 나를 배반하는 자가 있으리라’는 뜻밖의 언표를 듣고 서로 놀라는 장면을 그린 것.

그런데 그 제자들이 충격을 받고 놀라는 표정이 각각 서로 다르거니와, 그중에도 마음속에 죄를 숨긴 가롯 유다의 마음은 그 어색한 손짓 위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고 한다.

 

 

입말을 대신하는 손말(수화)이 아니더라도, 우리 두 손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표현하는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반가운 사람과 악수를 나누고, 등을 두드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귀여움과 애정의 뜻을 표현하기도 한다.

노엽거나 화를 낼 때는 주먹을 부르쥐거나 세차게 내치는 손사랫짓을 보낸다.

어른 앞에서는 손을 맞잡아 겸양을 표현하고, 절을 할 때는 공손한 손 모음으로 공경심을 표현한다.

손가락을 거는 것은 굳은 서약의 표시.

손가락질은 남을 비방하거나 고발한다는 뜻,

여자가 남자에게 손목을 내주는 것은 순결을 허락한다는 뜻으로 읽히기도 한다.

이밖에도 손에는 나름대로의 표정이 있어, 그 생김새로 직업이나 재주, 삶의 역정을 짐작할 수 있고, 색깔과 차고 더움으로 그의 심성과 신병 유무를 알 수 있으며, 손금 모양으로는 미래의 운명까지 점을 치기도 한다.

우리 손에는 이렇듯 말과 표정이 있다.

 

 

미국의 무역센터 테러사건 속의 희생자 한 사람은 몸을 잃은 채, 두 손을 맞잡은 마지막 기구의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두 차례의 세계전쟁 등을 거치면서 미국인들의 희생은 건국 이래로 그 나라 정통성의 자랑스러운 뿌리를 이루어왔다.

이번에도 미국은 비극적인 희생을 나라의 긍지와 위엄을 굳게 다져 나갈 미국정신의 표상으로 힘있게 승화시켜 나갈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6.25 비극을 겪으면서도 남쪽과 북쪽에서 죽어간 이 땅의 수많은 희생자는 어찌하여 아직도 가해자와 피해자로만의 끈질긴 편가름 속에 양자간 어는 한쪽이 폄하되고 잊혀져야 하는 것일까.

그 엄청난 희생자의 이름과 영혼들이 다 함께 이 나라의 정통성의 뿌리가 되고, 자존과 위엄의 역사적 표상이 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머물고 간 자리;

사람이 떠나갈 때는 뒷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댔다.

그 뒷모습이 아름다우려면 그가 머물다 떠나간 자리가 깨끗하고 아름다워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니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지난 한 해를 살고 떠나는 우리의 뒷모습은 어떤가.

묻지 않아도 그 소이와 허물이 어디쯤에 있는지 우리는 대충 알고 있다.

 

 

속도와 위력에 걸맞는 가치관과, 우리 영혼을 실은 삶의 중심 정보의 생산은 게을리한 채,

다만 물질적 정보의 유통과 생산성에만 열중해온 느낌이다.

하여 이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몰가치적 물신주의, 물질만능의 이기적 풍조에 빠져 거꾸로 휘둘리는 경향이다.

이런 풍조, 이런 가치 둔감성, 보이지 않는 그 정보 유령들의 장난질 속에 불의한 일들이 활개를 치고, 우리 뒷모습이 그렇듯 오손된 게 아닌지 모른다.

 

 

허물어지지 않는 이웃;

이민을 가는 사람들 중에는 ‘이 고생하면 어디간들 못살겠나.........이런 식으론 자식들 공부시키기조차 힘들고, 내몸 한밑천으로 내던져 아이들 앞길이라도 열어줄까 해서.......’

아쉽고 섭섭하지만 어찌 막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다른 이민행은 이런 절박한 사정 때문이 아닌 경우도 없지 않다.

자기 희생의 각오에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보다 더 나은 삶의 성취와 누림을 위한 경우가 있다.

대개 성취욕이 강하고 진취적인 기질의 사람들이다.

그냥 이 땅에 머물러 살아도 남에게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재력과 활동성을 지닌 사람들이 태반이다.

혹 어떤 좌절을 겪은 뒷사연이 있다해도, 한 때는 남 앞선 힘을 누리고 지내던 사람들도 여기에 속한다.

결국 남과 ‘같이’ 살기보다 남보다 ‘낫게’ 솟아올라 살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직장 맺어주기, 서로간의 ‘필요’를 연결지어줄 기회가 종종 있었다.

양쪽에 서로 좋은 일이었다.

친구들 중 사람을 구하는 경우가 간혹 생기기 시작하였고, 시골에서 일자리 알아달라는 부탁이 있으면, 서로 맞추어주면 되었다.

 

 

산성화하는 아이들;

그렇게 나는 바다를 살고 산을 살고, 마음은 물새가 되고 산새가 되었다.

먼 수평선은 갯바람을 타고 넘고, 뒷산 봉우리는 구름을 타고 넘었다.

그런 어린 날의 체험은 지금까지도 계속 나의 피로한 삶의 산성화를 막아주는 생명의 중화제 혹은 재생제의 역할을 맡아주고 있는 것이다.

땅김 한줌 쐴 수 없는 시멘트 천지의 삭막한 도회 공간과 奸智로 발효되어가는 중년의 나이로 인해 하루하루 심한 마모를 겪고 있는 자기 삶의 산성화 기미를 느낄 때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시절의 삶의 원형적 추억들에 잠겨들곤 해온 것이다.

거기서 어떤 마르지 않는 생명의 힘과 맑고 신선한 바람기를 슈유받아 내 삶 속의 피곤한 酸基를 씻어내곤 해온 것이다.

 

 

이에 비해 애초 도회에서 태어나 시멘트 바닥 위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그 삶의 체질이 일찌감치부터 산성화되어갈 게 분명한 일이다.

한데도 이 아이들의 산성화 현상을 막아줄 방도가 마련되지 않고 있는 것은 적지않이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어 보인다.

아이 자신에게 몹쓸 산기를 씻어낼 체험적 중화제가 지녀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아이들에 대한 어른들의 처방도 바람직스러워 보이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처방이 바람직스럽기커녕은 오히려 그것을 부채질하고 있는 듯한 작금의 세태다.

요즘 아이들 지내는 것을 보노라면, 녀석들은 차라리 어른들의 부푼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가엾은 인질 신세가 되어가고 있는 듯한 잔인스런 느낌마저 금할 수 없어진다.

아이들은 부모들이 과욕과 부교재 공급원의 알뜰한 인질이 되어, 심신이 급속한 산화현상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서글픔에 앞서 두려움까지 든다.

그럴 지경이면 차라리 엿장수 흉내를 내고, 경비원을 꿈꾸는 아이들의 놀이가 세상을 위해서는 더 건강한 처방이 될는지도 모르겠다.

그 산화과정 속의 아이들이 수많은 과외공부를 익히고 배우는 것이 그의 삶의 창조성의 개발이나 상승의 과정으로서보다, 추호의 베품이나 양보가 없는 이웃과의 경쟁에 피나는 싸움, 혹은 압도적인 지배와 쟁취를 위한 칼갈음질에 다름 아녀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에서 닳거나 지워지지 않는 산성화 방지의 귀중한 중화제,

초등학교 시절 소풍날,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한 한 아이에게 자신의 도시락을 넘겨주고, 자신은 선생님들 속에 끼여들어 그럭저럭 시장기를 채우시던 선생님의 얼굴이 떠오른다.

 

 

상상력은 아름답다;

상상력이 빈약하거나 누추한 삶의 공간에 갇히고 보면 삶도 그만큼 초라하고 적막함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나이들어가는 몸매에도 그 나이대의 깊은 아름다움과 삶의 축복이 있다.

여자의 늙은 몸에서도 깊은 삶의 아름다움과 정조를 읽어내는 화가의 눈,

그 아름다움이 어떤 것이고 그 삶의 깊이가 얼마나한 것인지는 굳이 따져 물을 필요가 없으리라.

다만 그것이 이 세상과 인간의 삶에 대한 그의 예술가다운 사랑의 선물이자 웅숭깊은 상상력의 축복임을 헤아릴 수 있으면 그 뿐..........

 

 

유적답사 여행길,

생가나 유물, 주변 환경이 매우 범상하고 싱겁기조차 하다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유적, 유물에 어린 선인의 꿈과 애환을 읽지 못한 소리일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은 어느 면 우리 삶 뒤채기의 꿈, 더 정확히는 좌절한 자기 꿈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꿈, 혹은 좌절한 삶의 꿈은 현실 공간이 아닌 문학의 상상적 정신 공간에 자리하면서 거기에서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워지게 마련이다.

현실공간과 문학공간의 차이는 바로 그 꿈의 성취와 좌절 간에 경계선이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그 꿈을, 더욱이 좌절한 삶의 아픈 꿈을 누구나 쉽게 읽어낼 수는 없을지 모른다. 어쩌면 아예 읽고 싶어하지도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사람의 삶은 그 상상력의 문을 잃은, 그래서 그 삶이 끝없이 답답한 현실 혹은 현실의 야박한 꿈에 갇혀버린 가파르고 척박한 일상이 되지 않을까.

 

 

소유와 지배 욕망;

유치원에서나 초등학교에서나, 아이들의 그림 공부는 주어진 그림 종이를 무엇으로든지 가득 채워내는 것을 기본 원칙처럼 배우고 익히게 한다.

요즘 아이들의 그림에는 그래 여백이라는 것이 전혀 없다.

인간이고 자연이고 막론하고, 자기 바깥의 세계를 가능한한 객관화하고, 그 대상 세계에 대해 강한 자기 표현력을 행사하여 그것을 일반적으로 대결과 소유와 지배의 관계로 이해하려 해온 서양적 사고와 세계관의 지적.정서적 전통 위에서는 무척 당연스런 요구라 할 것이다.

 

 

동양화에서의 여백의 표현,

그것은 대상의 세계를 완전무결하게 소유하거나 지배해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 대상의 세계 속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 자신을 포함한 이웃의 인간들이 거기 함께 끼여들고 귀의하려는 공존과 조화와 화해의 공간으로 남겨진 자리가 아닐는지,

서양식 그림 교육의 정신바탕이 우리의 세계 이해방식을 소유와 지배의 수직적 상하관계로 유도해갈 수 있다면, 동양식 그림의 정신바탕은 조화와 화해의 수평적 공존 관계로 이끌어갈 수도 있으리라는 이야기다.

 

 

세계의 이해와 인간관계를 수직적 지배의 상하관계로 이끌어가려는 위험스런 징후이자 현상,

우리 사회가 지나친 배금사상과 권력지향의 풍조에 휘말려가고 있지 않은지,

바로 그 배금주의와 향권력성이야말로,

대상 세계에 대한 소유와 지배 욕망의 구체적이고 단적인 표출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 금력과 권력추구 현실자체를 사회적 병폐로 무조건 타매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재력이나 권력에의 욕망은 제정일치의 씨부족 사회로부터 인간의 삶의 양식을 규정지어 왔으며,

자기보존과 삶의 실현의 불가결의 가치나 질서의 수단이 되어 왔다.

그것은 차라리 인간 사회와 그 삶의 원리적인 숙명의 하나인 셈이었다.

인류사는 일면 그 재력과 권력을 강화하고 확대하며, 그것을 공평하게 분배하려는 노력과 투쟁의 역사였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그 재력이나 권력 자체보다, 한 사회 전체가 재력과 권력만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고 그것을 위해 그것 안에서만 자신들의 삶을 실현해가려는 풍조가 만연될 때일 것이다.

그러한 풍조는 말할 것도 없이, 그 사회 개개인으로부터 발생하고 위임된, 공권력의 사유화에 의한 무책임한 남용에 의해 또는 재화의 공익성과 사회적 책임을 망각한 부의 독점적 향수와 금력만능주의적 재력 행사 현상들에서 유발되고 촉진될 것임은 두 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회는 궁극적으로 대개 지닌 자와 못 지닌 자, 힘이 있는 자와 힘이 없는 자들만이 남게 되는, 수직적 상하 관계의 단겹 사회를 낳게 되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그 소유욕과 권력욕은 그 책임과 공익성을 망각할 때 대개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속성을 지니게 되는 데다, 그것이 지향하는 바는 완전한 소유, 완전한 지배에 그 목적이 있게 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다른 모든 삶의 수단이나 가치가 배척되고 오로지 그 금력과 권력에 의한 소유와 지배의 상하관계로 일원화되고 단겹화된 사회가 되어버릴 때, 그 사회는 다양한 가치 체계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두꺼운 겹으로 이루어진 사회에 비하여 힘이 약화되고 위태로워질 것은 당연한 이치다.

단겹의 사회는 내부의 변화와 외부의 충격에 탄력과 적응력을 거의 발휘해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 비해 여러 가지 다른 가치의 세계가 공존하고 그 다양한 가치들로 겹겹이 두껍게 겹이 싸이고, 그 힘이 분담된 여러 가치의 기둥들로 굳게 떠받쳐진 사회는 정치나 경제, 사회, 문화 어느 한 겹이 약화되거나 벗겨지고 어느 기둥의 힘이 약해진다 하더라도, 남은 겹과 기둥들에 의하여 의연히 지탱되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여 한편으로 우리 인류의 근대사는 그 소유와 지배의 수직적 상하관계의 단겹 사회 형태에서, 보다 다양하고 겹이 많은 사회로 그 가치의 덕목들을 분화하고 확대하여, 우리의 삶을 보다 자유롭고 풍성한 여러 가치관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수평적 인간 관계의 세계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투쟁의 역사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요구하고 나타나게 된 것이 우리의 삶과 그 수단 또는 가치관의 프로화 현상일 것이다.

나름대로의 분야 속에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나름대로의 가치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실현해 나가는 것,

그것을 다른 사람과 사회 전체의 공익의 덕목으로 승인받고, 그 전체 사회 속에 고유의 가치로 조화롭게 공존하며 발전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들이 꿈꾸고 실현시켜 나가야 할 겹이 깊은 사회요, 지향해 나가야 할 바 민주사회일 것이다.

 

 

그 민주주의 사회란 바로 그런 다양한 가치관의 수평적 공존과 조화로하여 우리 개개인의 삶과 사회 전체를 안전하고 풍요롭게 하는 사회제도이며,

그 삶의 실현방법과 가치의 겹이 다양하고 두꺼울수록 그것은 다시 더욱더 민주적인 것으로 발전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우리 사회의 팽만해가고 있는 금력과 권력 지향의 독점적 성향이야말로 역사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우리사회와 삶의 퇴행현상의 작출이 아닐는지,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각개 분야의 고유화하고 확고한 가치관의 정립과 각자의 삶과 삶의 방법에 대한 상호 승인의 요구가 그만큼 증대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여기서도 물론 재력과 권력이 우리에게 무용하다거나 무조건 타기할 악덕에 불과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의 방법이 아무리 다양화해가고 사회적 덕목과 가치의 세계가 분화되고 확대되어 나가더라도, 책임있는 공권력과 공익성의 재력은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아니 사회가 분화되고 삶의 방법이나 그 가치가 다양화해갈수록 그것은 더욱더 필요한 가치의 덕목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당한 공권력은 그 다원화된 수평적 사회집단의 제반 가치들과 이해관계를 그만큼 공평하고 조화롭게 조절해 나가야 할 책무가 있는 것이요,

사회적 공익성을 도외시하지 않는 부의 축적은 그 사회의 다원적 삶의 가치를 높고 풍족하게 실현시켜 나가게 할 현실적 수단의 기능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만 위임된 권력으로서의 공권력이나, 사회적 공익성을 망각하지 않은 재력이라도, 그런 책무와 역할을 담당하는 하나의 사회 기능이나 가치의 분야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책무와 기능을 감당하고 누군가가 거기서 자신의 삶을 실현하고자 할 때, 그것은 다만 그의 직업이요 그의 지향하는 가치의 실현의 길이라는 것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뿐 그것은 우리 누구나가 지향해 나갈바 지고의 가치요, 삶의 방법이나 목적의 전부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에게는 누구나 우리대로의 삶이 점지되어 있고 거기에 우리가 지향하고 실현해나갈바, 삶의 가치와 방법의 선택도 주어지고 있음은 자명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서로 아끼고 존중하며, 너와 내가 우리 사회 속에서 조화롭게 함께 실현해 나가야할 삶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자신과 이웃에게 언제나 그럴 결의와 아량을 지니고 살아가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도 우리는 그 우리 어린이들에 대한 그림교육, 그림교육을 포함한 배타적인 경쟁의식을 고취하는 모든 교육방법을 한 번쯤 다시 생각해봄직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가치관의 다원화에 관련한 직업의 전문화와 그에 대한 수평적 가치승인의 결의도 되풀이 다짐을 해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 전체가 권력과 금력 만능에 의한 정치 일원화의 단겹사회로 위태롭게 약화되어가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먼저 위임된 권력으로서의 공권력 담당자들의 자제와 책임, 그리고 사회적 공익성을 동반하는 재력 소유자들의 자기 관리와 금력행사 방법들이 일차적으로 문제되겠지만,

그 재력과 권력을 삶의 목표나 실현의 방법으로 선택하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자신으로부터 발생하고 그가 위임한 그 공권력의 무책임한 남용이나, 금력 만능의 독점적이고 방만스런 재력의 행사는,

이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책임이 뒤따라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일 것이다.

 

 

기성세대 소질;

곧잘 자기 나이를 팔아서 젊은 놈 기를 죽이곤 하였다.

하지만 요즘은 어른이 나이를 파는 대신 젊은층 쪽에서 살아보지도 않은 나이를 파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당신은 기성세대라서.........’

‘기성세대는 이해를 못한다’

‘기성세대와는 말이 안 통한다’

 

 

불신시대, 노소간의 불신의 표현.

상투적인 기성세대 매도 현상이야말로 지극히 무기력하고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성세대란 이를테면 이미 틀이 잡혀 완성되어져버린 세대, 창조성이 소멸된 경직된 의식집단의 세대,

특징적인 것은, 이 세대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지극히 안주지향적이고 방어적.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利害 때문에 理解하기를 싫어하는 것.

노회하고 견고한 기성세대의 그런 방어벽 앞에 감춰진 비밀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없이 그저 일방통행식의 비방과 매도만 일삼는 것은,

그러므로 기성세대의 젊은이들에 대한 ‘관용의 애걸’이 아니면, 그 기성의 벽을 허물어뜨리고 새로운 삶의 장을 열어 나가야 할 자기 창조의 노력을 포기하는 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일방적인 매도나 외면이 아니라, 적극적인 이해와 교류 필요, 힘찬 창조성과 자유로운 정신고양 필요.

획일적이고 상투적인 이분법적 사고의 위험성,

나이를 팔아 일어선 자, 반드시 나이로 망한다.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상투적인 태도에서는 젊은 창조성커녕 오히려 일부 기성세대들보다 더 단단히 굳어버린 의식의 벽과 획일적으로 기성화된 도식적 사고의 냄새가 물씬거리기 때문이다.

 

 

빼앗긴 부끄러움;

재난과 불운의 원인을 따지기 앞서 자신의 덕없음과 박복을 먼저 부끄러워하곤 하였다.

그것은 일종의 자기양보와 겸양의 아름다운 덕목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그런 부끄러움의 기미를 찾아볼 수가 없다.

언제나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자기 허물을 돌아보기는커녕 남의 그것을 따지기에 바쁘다.

더욱이 분수 없게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고 이름과 힘이 될 수록 널리 알려지기를 소망하는 경우마저 허다하다.

 

 

자기 회의나 망설임의 기회가 전혀 안 보이는 사람들의 달변, 일도양단식으로 세상사를 재단하여 일면의 진실을 전면적인 진실로 당당하게 내세우는 일부 직업적인 논객들의 주장들,

그런 데서도 우리는 자주 그 부끄러움을 잃어가는 세대를 읽는다.

 

 

‘저 같은 게 뭘’

‘저에게까지 뭘’

멈칫거리고 뒷자리로 물러서려는 사람은 어디서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그야 요즘은 세상 자체가 그런 자기 자랑과 과시의 시대이기는 하다.

세상이 아예 그렇게 되어 있다. 신문과 방송도 어떤 면으로는 자기를 내세우고 과시해 보이는 공공의 장치요, 마당인 셈 아닌가.

그래 우리는 아마 이런저런 시류와 사회적 장치들의 힘에 이끌려 즐겁게 자기 부끄러움을 잃어가고 있는 듯싶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부끄러움뿐아니라 남의 그것까지 빼앗고 있는 것이다.

시류의 요구가 아무리 그렇고 사회적인 장치가 그렇더라도 우리에게 얼마간 부끄러움의 소질을 남겨두는 여유는 있어야 할 것이다.

부끄러움이 없음은 곧 뻔뻔스러움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데에서 비로소 양보와 겸양의 아름다운 덕목이 잉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끄러움도 없고 양보심도 없이 그저 완고한 주장과 자기 과시욕에 취해 사는 우리의 뒷날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