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기별/김훈
바다의 기별
1.광야를 달리는 말;
-불에 타는 듯한, 다급하고도 악착스런 울음이었다.
-슬픔도 시간 속에서 풍화되는 것이어서 30년이 지난 무덤가에서 사별과 부재의 슬픔이 슬프지 않고, 슬픔조차도 시간 속에서 바래지는 또 다른 슬픔이 진실로 슬펐고, 먼 슬픔이 다가와 가까운 슬픔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인데, 이 풍화의 슬픔은 본래 그러한 것이어서 울수 있는 슬픔이 아니다.
-내 아버지는 공회전과 원점회귀를 거듭하는 한국 현대사의 황무지에 맨몸을 갈았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좌충우돌하면서 그 황무지를 건너갔다.
건너가지 못하고 그 돌밭에 몸을 갈면서 세상을 떠났다.
-신문 연재소설이나 대학 선생자리를 얻으려고 쇠고기 몇 근을 사들고 권력자를 찾아다니는 자들의 가엾은 몰골을 연민했으며, 소인잡배 들끓는 한국문단을 버러지처럼 경멸했다.
-아버지는 늘 예고없이 오셨기 때문에, 차가운 구들을 덥히려면 날이 훤히 밝을 때까지 아궁이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불을 때야했다.
-모두 잠들어서 아버지가 적어도 당분간만이라도 이 세상을 괴로워하지 않은 그 짧은 동안을 감사했고 안도했다.
-‘광야를 달리는 말이 마구간을 돌아볼 수 있껬느냐?’ ‘내말이 어려우냐?’
-아버지는 자상하지 않았고 가정적이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가난했고 거칠었으며 늘 울분에 차 있었다. 아버지에게 광야란 없었다. 아버지는 그 불모한 시대의 황무지에 인간의 울분과 열정을 뿌리고 갔다. 나는 언제나 그런 아버지의 편이었다. 내가 너무 아버지편을 들어서 늙은 어머니는 지금도 내가 못마땅하지만 어쩔수가 없는 일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온전히 이해하려면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야 하는 모양이다. 아버지의 육신도 이제는 풍화가 끝나서 편안할 것이다.
아버지의 죄업과 아버지의 방황과 아버지의 울분도 이제는 풍화되었을 터이다. 지난 한식때 새로 심은 잔디가 잘 퍼져 있다.
2.무사한 나날들
-내 빈약한 이야기는 그 무사한 그날그날에 대한 추억이다. 행복이라기보다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첫 월급ㅇ로 사 온 휴대폰을 나에게 내밀때, 딸아이는 노동과 임금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잇었고, 그 자랑스러움 속에는 풋것의 쑥스러움이 겹쳐 있었다. 그때 나는 이 진부한 삶의 끝없는 순환에 안도하였다.
-진부하게 꾸역꾸역 이어지는 이 삶의 일상성은 얼마나 경건한 것인가. 그 진부한 일상성 속에 자지러지는 행복이나 기쁨이 없다 하더라도, 이 거듭되는 순환과 반복은 얼마나 진지한 것인가. 나는 이 무사한 하루하루의 순환이 죽는 날까지 계속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내 모든 행복으로 삼기로 했다.
-여자의 태는 순환과 반복을 거듭하며 생명을 빚어내는 슬픔의 요람이었다.
-이여자아이가 또 여자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또 여자아이를 낳을 것이다. 나는 이 진부하게 순환되는 삶의 일상성 속에서 기적과도 같은 경이를 느꼈다. 삶은 느리고도 길게 계속되는 것이고, 무사한 그날그날 속에서 젖을 토하던 아이가 다 큰 여자로 자라는 것이다.
-휴대폰 내미는 딸을 바라보며, ‘아, 살아 있는 것은 이렇게 좋은 것이로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혼자 기뻐했다.
3.생명의 개별성
-죽음의 보편성과 생명의 개별성에 대해서 생각했다.
-창세기이래로, 인간은 죽음으로써 지구를 구해냈을 것이다. 다들 죽어없어지지 않았다면, 또 다들 살 자리가 없어서 죽었을 터이다. 그래서 죽음이야말로 인간이 세계와 후손을 위해서 베푸는 가장 큰 보시이며 은혜일 것이다.
-나는 산 자들의 그 어떤 위업도 그 죽음이 베푸는 은혜만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산 자는 필멸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해도 보편적 죽음의 개별적 죽음을 설명하거나 위로하지늠 못한다.
-소각로 바닥의 흰 뼈를 들여다보면서 나는 알랐다.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 죽는 것이다. 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 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장모의 초상을 치르면서 그 절대적인 개별성에 경악했다.
-소독약은 우월성의 냄새를 풍긴다. 병원은 환자보다 우월하다는 냄새를 소독약은 품어낸다.
-병은 나자신의 생명 속에서 발생한 실존적이고도 사적인 현상이다. 내 병은 나의 생명현상인 것이다. 나는 나의 병을 나 자신의 몸으로부터 분리시키지 못한다. 나는 나의 병을 객관화하지 못하고 대상화하지 못한다.
-나의병은 나의 개별적 생명현상인 것이다.
-종양의 MRI 사진은 무서웠다. 반딧불같은 종양의 불빛들이 깜박거렸다. 생명 속에는 생명을 부정하고 생명에 반역하는 또 다른 생명이 서식하고 팽창한다. 이 반역은 생명현상인 것이다. 나는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생로병사는 생.로.병.사로 따로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한 덩어리로 포개져서 흘러가는 것임을 알았다.
-죽음과 싸우지않고, 죽음을 인도하는 것이 의업의 길이며, 그 길은 생로병사에 거역하는 길이 아니라 생로병사와 함께 흘러가는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어른다룰 것이다.
-병의 실체는 보편적이거나 획일적일 수 없다는 깨달음이 병의 구체성ㅇ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었던 것이다.
-고대 중국의 명의 편작은 ‘몸속의 병은 겉으로 드러나서 감출 수가 없다’고 하였다.
4.칠장사 기행
5.글과 몸과 해금
-그래서 리듬은 비논리적인 것이고, 오직 시간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글을 쓸 때 나는 작곡을 생각한다. 글은 몸 속의 리듬을 언어로 표현해내는 악보이다.
6.시간의 무늬
-인간과 시간의 관계는 인간이 끝끝내 시간을 짝사랑하는 일방적 관계다. 시간은 인간 쪽으로 눈길 한 번 주지않는다. 인간은 시간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이 소외는 대책이 없는 소외다. 가을 물이 마르고 강이 마르고, 여름새가 가고 겨울새가 온다. 시간은 그렇게 인간과는 무관하게 인간이 속해있는 공간을 드나든다. 시간은 인간과 놀아주지 않는다.
인간은 시간으로부터 제외되어 있다. 시간으로부터 제외된 인간이 그 시간에 관하여 말할 때, 인간의 말은 인간을 데리고 가지 않으려는 시간을 따라간다.
-시간 밖에 주저앉은 인간이 흘러가는 시간을 향해 주절거린다. ‘그림자도 없이 시간들이 소리를 내며/물과 같은 하늘로 저렇듯/눈부시게 흘러간다’
이 주저앉은 인간의 꼴은, 언어의 힘으로 흘러가는 시간 위에 올라타서 잠깐 함께 흐르다가 다시 시간 밖으로 쫓겨난 자의 모습이다. 그 쫓겨난 자의 주절거림은 가엾고도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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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1.기다려라, 우리가 간다/인간에게 다가오는 인기척
-다가오고 있는 인기척, 그것이 인간의 희망인 것이다.
-사회가 고도로 조직화되고 세분화될수록 인간은 고립되게 마련이다. 다들 제각기 아파트와 오피스텔과 자동차와 밀실 안에 들어앉아있다.
-그 수많은 세포들의 틈새에 재난은 복병처럼 숨어 있다. 밀실에 고립된 인간들은 재난을 돌파하는 능력이 전혀 없다.
-소방대원들이 그 밀실을 깨고 들어가 인간을 구한다.
2.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김지하의 출감
3.고향과 타향
-나는 고향이라는 어휘가 물고 늘어지는 정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진화할 수 없는 비논리성이 그 정한의 바탕을 이루는 듯싶다.
-나는고향도 없고 타향도 없는 세상이 좋다.
-나의 어머니는, ‘너 걔네들 말버릇 따라하지 마. 왜가리 짖어대는 것처럼 말하지마, 반듯하고 조용히 말해라. 조용히 말해야 남이 듣는다’고 타이르셧다.
어머니는 종결어미가 불분명한 말을 싫어하셨고 늘 대하는 이웃집 아낙네들에게도 말꼬리가 분명한 존댓말을 쓰셨다.
-신시가지 공사가 시작되자 턱없이 낮은 ‘보상가격’으로 내쫓기는 원주민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그들의 삶 전체가 가격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햇거니와 그 가격은 미래를 포함하지 않는 것이었다.
4.무너져가는 것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것/오치균은 묻지 않고 다만 그린다.
-길들여지지 않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한다.
-나는 세상과의 관계를 매끈하게 유지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그리고 이 세상이 옷을 너무 많이 입고 있다. 나는 옷이 불편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이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과 같아야 할 이유가 없다. 나는 나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그리고 아름다움을 변용한다.
-재료를 장악하고, 그 재료를 육체화해서 재료를 마소처럼 부릴 수 있는 자만이 예술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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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사물
1.회상
-19세기 낭만주의 영시/워즈워스, 셀리, 바이런, 키츠,...예이츠등, 영국의 낭만주의
-낭만주의 문학은, 인간의 세상은 신의 섭리와 자연의 조화로 가득 차 있는 것이고,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소망은 반드시 미래에 실현이 되는 것이다.
-그 시들은 낙관적이고 조화로운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문학이었지만, 인간의 모든 소망이 미래에 실현된다는 것을 예언하는 점에서 매우 혁명적인 문학이기도 하였다.
-그 시들은 배고프고 억눌린 청년들의 영혼을 그야말고 아편처럼 매혹했다.
-동시에, ‘난중일기’와의 만남
--그 절망의 시대에서 헛된 희망을 설치하고 그 헛된 희망을 꿈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 절망의 시대를 절망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서 통과해가는 한 인간의 모습이 거기 그려져 있었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낭만주의 문학이라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원대한 이상을 표현한 문학이지만 이것이 인간의 현실 전체를 말하기에는 매우 빈약하구나, 한 반쪽 정도밖에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난중일기’를 처음 읽던 20대 초반부터 37년이 지난 어느 날, 돌연 연필을 들어 ‘칼의 노래’라는 소설을 써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소설을 두 달만에 다 써버렷다.
-내 삶의 슬픔과 고통과 더불어 잘 성숙되어 있었던 것이다.
-내가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이순신의 그 리더쉽이나 그의 덕성이 아니라, 사실에 입각하는 그의 리얼리스트 정신이었다.
-당파성에 빠져있는 자들의 눈에는 현실의 올바른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자기의 당파성이 지향하는 바의 노선 또는 이익, 그것을 정의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요즈음 신문이나 저널을 읽기가 너무 어렵다. 왜냐하면, 언어가, 이 사회적 담론이 의견과 사실르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사회의 지배적 언론과 담론들이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해버리는 거예요.
-내 유년의 가장 큰 비극은 물론 한국전쟁이었다.
-이렇게 인간끼리 동족끼리 서로 죽여서 우물에 파묻고 돌멩이를 매달아서 바다에 던지고 도시를 부수는 그 자체의 야만성, 그것이 문제일 뿐이다.
-어느 쪽이 옭고 그름을 따지기에 앞서서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주는 이 말할 수 없는 야만, 거기에 나는 절망해버린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계 악이라는 것이로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죠.
-이 세계의 바탕을 이루는 펀더멘털 베이직 Fundermental basic 이 만약 있다면, 나는 악과 폭력이 그 바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꽃이 피었다’는 꽃이 핀 물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진술한 언어이다. ‘꽃은 피었다’는 꽃이 피었다는 객관적 사실에 그것을 들여다보는 자의 주관적 정서를 섞어 넣은 것. ‘꽃이 피었다’는 사실의 세게를 진술한 언어이고, ‘꽃은 피었다’는 의견과 정서의 세계를 진술한 언어이다.
-수사, 형용사, 부사가 하나도 안 나오고 밋밋하고 재미가 없지만, 부하를 죽였다는 문장과 바람이 불었다는 문장 사이에서 그의 문장은 삼엄한 긴장에 도달한다.
2.말과 사물
-소통이 목적이 아니라면 언어는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우리가 의견과 사실을 구별하지 않고 말을 해버리면, 이런 언어는 인간의 소통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단절을 심화시킨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언어적 비극은 듣기 Hearing 가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채팅만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듣기가 안 되니까 청각장애인들이 다 모여 있는 것이다.
-인간의 언어에는 네 가지,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가 있는데, 말하기는 쓰기와 같고, 그것은 나를 드러내 보이는 행위./그리고 듣기는 읽기와 같고, 이것은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는 행위.
-지금은 채팅만이 있고 듣기가 전혀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
-또 하나 비극적인 것은 의견과 사실을 뒤죽박죽해서 말한다는 것.
-신념의 언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자기 주변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태도.
-젊은이들은 자기 주변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힘이 부족하다. 우리 젊은이들은 자기 주변과 세계를 정서적으로인식하는 성향이 강하다. 세계를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던 아이들이 자라면 그 아이는 대개 그 세계를 이념적으로 이해하는 그런 인간이 되어버린다.
-세계를 과학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어떤 현상이나 사태를 보고 이것은 무엇이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일 것이다.
-‘이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제기하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모색하는 것이다.
-한국어는 조사 하나에 의해 의견의 세계와 사실의 세계가 바뀔 수 있다.
-서양말은 조사가 없다.
-그 모호한 조사안에 많은 자유의 여백이 있고, 많은 창조의 공간이 있다. 저에게는 저런 모호한 것들이 어렵고 힘들다.
-한문이 갖고 있는 포괄성, 개념을 규정하는 힘은 놀라운 것.
-독일어 문법의 구조는 강고한 논리의 틀이 있는 것이다.
-법전에는 아주명석한 개념과 간결한 문장과 혼란이 없는 논리적 세계가 드러나 있다.
-이것은 내가 모국어를 폄하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모국어가 지금 당면한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동어반복의 지옥을 벗어나서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모습을 직접 포착하고 그것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전혀 경험하지 못한 놀랍고 낯설고 새로운 시간들이 매순간 밀물처럼 우리의 생명 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는 것.
-이것은 경이로운 사태이자 놀라운 혼란이고 신바람이다. 우린 그 위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하루는 사람의 한 일생과 맞먹는 시간이다.
-동어반복에 갇히면 우리는 거기서 평생 헤어나지를 못하고, 우리 인식의 영역을 넓혀나갈 길이 없는 것.
-우리는 매일매일 인간의 야만성에 절망하면서 또 거기에 동화되면서 사는 것.
-인류가 겪은 수많은 혁명은 아마 인간이 약육강식의 질서에 승복할 수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사태일 것./볼세비키 혁명, 갑오농민전쟁, 프랑스혁명
-소설을 쓴다는 것은 불완전한 언어로 불완전한 세계에서 사는 불완전한 인간에 대해서 쓴다는 것./2009.1.15.노트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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