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자와의 연대;
사람들은 분명히 알고 있엇다. 이 땅에서 억울한 kfka들이 수없이 죽었다는 것을. 이 땅이 학살의 땅이었다는 것을. 일제 강점기에 이은 분단과 전쟁.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일이 불가능한 시대였다.
학살의 기억은 살아있었고, 사람들은 집단 속에 숨어 침묵을 지키는 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터득했다.
특히 양심.정의.인권.인간성은 단호하게 멀리 해야했다. 독재자들은 ‘잘 살아보세’라는 구호 아래 성장과 개발의 논리를 펼쳐나갓고, 사람들은 점차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을 신원하지 않은 채 하루하루 일상을 채워나갔다.
갚을 수 없는 부채의식을 물신에 몸을 맡기는 것으로 대신 채웠는지 모른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내주었듯이 사회구성원들은 물욕에 몰입하기 위해 인간성을 물신에 팔아버린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은 ‘옳게 산다’는 것과 점점 더 멀어졌다.
물신에 몸을 내맡긴 삶이 몸만 편한 게 아니라 마음까지 편하다는 점을 차차 알게 되었을까?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과 억울한 죽음ㅇㄹ 신원하는 것이 인간성 회복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조차 외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반인간적 행위로 점철된 과거에 대한 제대로 된 청산은 커녕 과서‘사’ 청산조차 이뤄지지 않앗다.
아무튼 나이 육십이 되엇는데도 누가 떠다민 적 없는,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의연하지 못하다.
설령 세상의 공식이 변한다해도 내 삶의 방식이 변할 게 아니라면 어차피 상관할 게 없으련만 사람들 앞에서 의연하지 못하다.
오직 그들이 찾아오는 거기서만 의연하다. 오직 그들만이 나의 존재감을 스스로 확인하겠다는, 불온한 자유인으로서 나 자신을 확인하겠다는 선언을 어린애 응석받아주듯 순순히 받아주기 때문이다.
-긴장;
어느 날 갑자기 전혀 다른 가치를 따르는 것을 변절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가치관이 바뀐 것이 아니라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했르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동물;아리스토테레스.
인간은 ‘합리적 동물’이라기 보다 ‘합리화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고, 그래가 우리가 내면화하고 일상화한 합리화의 속살은 대개 ‘현실적 성공’과 ‘명분’이라는 떡을 양 손에 쥐겟다는 욕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1930년대 후반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했던 2만여명에 이르는 스페인의 사회주의자들과 공화주의자들은 프랑코 독재가 30년 넘게 지속되어 70년대 중반까지 조극에 돌아갈 수 없었다.
청장년이었던 그들은 하나 둘 눈을 감았고 프랑스 땅에 묻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그래, 우리의 인생은 실패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평온하게 눈을 감을 수 있다...
분노해야 할 것에 분노하는 것도 ‘불온’이 된 탓인가? 사람들은 농민의 억울한 죽음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피눈물하는 절규에 눈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 놀라운 조로현상인데, 사람들이 늙은 것인지, 사회가 지친 것인지 분간이 잘 안된다. 이땅에서 현실은 더욱더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으ㅗ 남고, 우리가 바꾸어야 할 현실이란 의미는 사라진다. 여기에 사람은 망각이란 편리한 삶의 방식을 가진 동물이라는 점이 보태진다.
어는 소설의 주인공은 말했다. 역사는 아주 더디고 지루하게 조금씩 바뀐다고.맞는 말이다.
그래서 변화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한 삶인가에 대한 선택이 스스로를 지켜내는 힘이 될 수 있다는 점도 거듭 확인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않으면 지쳐버리고 말테니까ㅓ. rm 주인공인 말했듯이, 인간에게는 나를 나이게 만드는 어떤 것이 있나 보다. 그렇게 살지 않을 때 죽음과도 같은 생존만이 남는다는 그 어떤 것 말이다.
흔히 유혹은 밖에서 온다고 하지만, 실은 바같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은밀히 키워진 것들이 간단치 않은 현실을 구실삼아 실체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라고.
좋은쪽으로의 변화는 무척 어려운 반면에 나쁜 쪽으로의 급격한 변화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세상을 바꾸려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권력을 장악하기 전에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스스로 바뀌고, 또 권력을 장악한 뒤에는 더 바뀐다.
세상은 바뀌지 않은 채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만 바뀌는, 이 조화는 어디에서 비롯한 것일까?
권력은 비민중적이며, 따라서 ‘민중권력’이란 말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권력은 지배의 일상속에서 자기성찰의 계기를 갖기 어렵고, 따라서 성찰하지 않는 권력은 그 지위의 일상성 속에서 의식이 점차 변해가듯이 점차 반민중적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긴’=줄어듦
‘장’=베풂
긴장은 ‘줄어듦’과 ‘베풂’이 합쳐진 것으로...그 사이의 균형이다.
침묵은 때로 타인의 잘못된 선택에ㅐ 편승해 열매를 탐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내면에 감춰진 자신의 욕망에 대한 면죄부가 되기도 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기 위한 유보가 되기도 한다.
나는 엄혹했던 시절이 끝날 것 같지않다는 절망감에서 침묵했다. 순수한 인간성을 빙자한 교묘한 침묵을 꾀하기도 했다. 내면에 침잠하며 낭만적인 절망으로 포장하고 침묵하기도 했다. 룸팬이나 되는 양 자신을 학대하며 고뇌의 의미를 퇴색시키기도 했다. 무력감과 자괴감으로 ‘창백한 지식인’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얻기도 했다. 냉소라는 무기로 제구실을 하지못한 것에 대한 추궁에서 자신을 방어하기도 했다. 얼마나 놀라운 자기 합리화의 귀재
인가?
‘내 삶의 최종평가는 나 자신’/1.2010.12.27...2.2012.4.22//2012.5.21.월.노트정리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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