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이야기 3...나는, 신입사원인 그를 나 대신 해외출장길에 내보냈다.
/J 이야기 3
앞서도 이야기하였듯이, 내가 맡고나서 우리 해태상사 농산팀의 입찰사업은 날로 번창하였다. 정부 입찰에 들어가면 반드시 최저낙찰이 되었고, 입찰규정에 따라 정부의 물품검수관을 대동하고 현지에 출장가서 물품선적확인을 해야했다.
가뜩이나 일손이 없는, 농산팀에서는, 어찌할 다른 길이 없었다. 처음에는, 맨처음 중요한 계약의 경우는, 내가 직접 현지에 출장가서, 어떤 실수라도 발생하지않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성공적으로 선적이 이행되도록 하였지만, 계속되는 모든 계약에 내가 현지출장 갈 수는 없었다.
그 대안으로, 아니 다른 대안이 없었다. 나는 그를 현장에 투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갓 신입사원 티를 벗어났지만, 상사맨으로는 초년병은 초년병이었다.
제대로 갖추어진 회사의 실무부서라면, 과장이나 선임고참직원과 함께 견학삼아서 현지출장을 몇 번 가보고, 정부의 공무원을 현지안내하고 또 현지공급자들과 상담하여야 바른 현장실습과정이겠지만, 그때 우리 농산팀의 형편은, 그런 전통적인 정통과정을 밟을 겨를이 없었다.
난 구두로 현장교육을 대신하고, 바로 그를 중국현지출장하여, 정부물품검사원과 중국공급업자를 상대로, 중국산참깨의 선적확인업무를 처리하도록 하였다.
(앞서 영어숙식연수교육을 받게 하였다고 하였는데, 바로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게 되엇으니, 그로서도, 회사로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나 개인적으로는, 훗날 직원들의 구전되는 평가는, 박부장님의 머릿속에는 모든 것이 들어있고,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하는지, 상사생활의 모든 것이...그의 머릿속에 모두 들어있다고 하였다...내자랑 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어떻게 신입사원이 곧 해외출장을 가야할지 알고...외국인 숙식영어연수를 시키고...가깝고 먼 장래의 일들을 모두 익히 알아내고 미리 준비하고 실행해 옮기게 한다고...과장아닌 실제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그의 업무실행능력은 날로 향상되어 갔다.
영어말하기도 일취월장하고, 대학전공인 장롱면허 중국어도, 현장출장을 자주하면서, 제법 중국어말하기도 곧잘 하였다.
신입사원 2년차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제법 상사맨티가 났다.
해태상사의 모든 직원들의 부러움이 따라왔다.
농산팀이 하듯 신입사원을 교육시키고, 현장출장시켜서...직원들의 업무능력도 향상시키고, 회사가 추구하는 해외시장개척에 매진하라는 것이었다.
회사 경영진의 찬사와 격려가 매 회의때마다 넘쳐났다.
그는 틈만 나면 해외출장길에 나섰다. 회사생활의 거의 반이상을 국내외출장에 소비하였을 것이다.
국제경쟁입찰의 특성상, 정보의 흐름이 빠르고 민감하며, 때를 놓치면 치명적인 결과를 감수해야하므로, 지휘부의 빠른 판단은 절대적이다. 따라서, 내가 본사 사무실을 비우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하는 일이었다. 국내외 상황을, 국내외에서 흘러가는 입찰상황을 본사로 집중하고, 해외 공급자가 신속히 움직이도록 통괄지휘해야 하는 임무가 나에게 있는 것이므로, 내가 함부로 본사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는 나의 대신 노릇을 해외출장에서 수행하게 되었다.
팀장인 나는 신규시장개척하는 경우, 신규바이어.공급자를 찾아나서는 경우가 아니면, 이미 계약이 된 업무의 경우는, 내가 출장가지않고 부하직원들을 현장에 투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앞서 이야기한바대로, 내가 지휘부 성격인 본사자리를 비우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되었고, 그는 내대신 해외출장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나는 중국참깨공급자를 처음 개발할 때, 홍콩에 출장가서, 중국양유공사 책임자를 만난 것이 전부였고, 중국출장의 경우는, 나는 딱 한번, 중국양유공사 책임자와 한국정부 참깨입찰에 참여하기로 합의하고, 첫계약을 하고 최초 중국산참깨 선적확인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출장은 그의 몫이 되었다.)
(다른 출장의 경우, 중국참깨가 아닌, 새로운 시장이나 품목을 개발할때도 마찬가지였다. 맨처음 해외공급자를 개발할 때 그리고 첫계약 선적확인을 할때를 제외하고는, 실제 선적확인때는 나는 출장을 가지않고 그가 모두 나 대신 업무를 실행하였다. 농유공입찰이나 타피오카입찰 비즈니스가 아닌, 다른 업무인 경우는, 그 품목 담당자가 그가 했던 것처럼, 내 대신 업무를 실행하였다.)
이러한 나의 부서업무추진방침은, 부하직원들로부터 전폭적인 환영을 받았고, 다른부서의 부러움을 샀다.
다른 부서의 경우, 직원이 해외출장을 한번 나가려면, 여러 어려움이 많았고 심지어 신입사원이 해외출장을 하면서 현장업무를 배울 기회는 거의 없었는데, 농산부는 이런 불문율을 깡그리 없애버렸으니, 직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좋은가?
외국바이어와 상담해보고 싶고, 해외에 나가서 현장실습을 하고 싶은데 어디 기회가 있는가? 기회가 있다해도 좋은 것은 모두가 윗사람이 독차지해버리고 밑의 부하직원까지 내려온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농산팀에서는, 부장이 계약도 많이 가져오기도 할뿐더러, 해외출장기회를 부장이 가지않고 밑의 부하직원들을 시켜서, 실행을 해나가니...너나없이 입이 있는 사람들이면 농산팀을 본받아야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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