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해태상사를 떠나면서 4; 동양그룹의 현재현회장을 만났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2. 11. 23:50

/해태상사를 떠나면서 4; 동양그룹의 현재현회장을 만났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동양글로벌의 채사장으로부터 또 전화가 왔다. 동양그룹 현회장과 차한잔 마실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차한잔’하는 것이야 뭐 어떻겠나 싶어서, 현회장과의 차한잔 약속을 하고말았는 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것이 나의 실수였다. 현회장을 만난다는 것은 곧 ‘동양’에게 내마음을 준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인데, 나는 덜컥 약속을 하고만 것이었다.

(또 사족을 달아보자.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현회장과의 ‘차한잔’을 하지말았어야 했다. ‘차한잔’을 한다는 것은, 동양그룹에 들어가겠다는 잠정적인 의사표시가 아닌가?)

현회장을 만나보니, 그런 신사가 없었다. 사업이야기는 하나도 하지않은 채, 일반적인 세상돌아가는 이야기, 한국의 경제전반과 그속에서의 재벌회사들의 역할등등...해태그룹에서는 느껴보지못했던 그룹총수의 분위기였다...내가 바람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던 것일까?...지금 그는 영어의 몸인가? 풀려나와서, 망각의 길로 가고있는가? 운명의 신은 참 혹독하다.

검사재직중에 동양그룹 창업자 이양구회장의 맏사위가 되어, 동양의 총수가 되었는데, 재계의 신사로, 동양그룹을 지휘하던 그가 검찰수사를 받고 패가망신하였으니, 인생 알다가도 모를 일 아닌가?)

(‘운명’은 그렇게 또 찾아들고 있었다. 운명은, 당사자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때로는 합리적이지 않고 논리를 떠나서, 불시에 찾아드는 것이었다. 맞다.)

 

나는 현회장을 만나고 나서, 곧 채사장에게 ‘동양글로벌’의 농산.식품사업본부장을 맡겠다고 확약을 해주었다.

채사장은 뛸 듯이 좋아하면서, ‘동양글로벌’은 이제 막 신설된 종합상사이니, ‘농산.식품사업본부’(등기이사, 본부장)를 맡아서, 해태상사에서 해왔던 것 이상을 실현해달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내가 얼마나 순진한지, 그때 동양그룹에 조인하면서, 아무런 사전 흥정을 하지않았다는 것. 내가 해태상사에서 ‘수석부장’이고, 나의 경력이나 업적이 한국내 동종업계에서 최고.최상이었으니, 신설무역상사에서는 최소한 ‘상무’급이상을 요구해도 좋을 것이었는데, 아무런 사전보장없이 갔더니, ‘등기이사’를 준다하였고 나는 그것이 무엇을뜻하는지도 모르고 오케이하고 말았다. 내마음 저쪽에서는, ‘동양’에서 얼마정도 오래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사면 어떻고 상무면 어떠냐, 직급 가지고 줄다리기 할 필요 없지않느냐 싶기도 하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나보다 훨씬 경력도 약하고 실적도 없는데도 ‘이사’‘상무’로 입사하는 것을 보고, 나는 헛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채오병사장의 뜻은 아니고, 삼성물산출신 기획실장을 하는 유모실장의 농간이 크게 작용하였다. 그는 두고두고 나의 동양글로벌 생활을 방해하였고 그의 순수하지못한, 직.간접적인 견제로 인하여, 나는 동양글로벌의 ‘농산.식품사업본부장’을 1년여만에 그만두고 ‘창업’의 길로 나서게 된다.)

 

채사장 얼굴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그 좋아서 어쩔줄 모르는 표정이라니...나보다 15여년 선배(서울대 경제학과)이니, 그때 환갑이 다 되셨나 나이를 잊고 좋아하던 표정이 지금도 새롭기만하다.

(‘운명’은 그렇게 또 찾아들고 있었다. 운명은 때로는 합리적이지 않고 논리를 떠나서, 불시에 쳐들어온다. 그것이 운명이다.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