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를 떠나면서 5; 농산부 직원들 모두와 소주한잔씩, 하늘과 땅이 어우러져 흔들렸다.
해태상사에 입사한지 15년(금호실업 3년포함, 대학졸업후 18년여)째, 파란만장했던 나의 전반기 생활을 일단락 짓게 되었다.
‘마포나루’
그때 농산부 직원들이 30여명? 고맙게도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해태상사를 떠나야하는 나의 마음을 모두 공감해주었다. 비록, 본부장을 시켜준다해도 떠난다고 고집부리는 나를 십분 이해할 수는 없다해도, 그 당시 해태그룹의 경영방향은 직원들의 불만을 많이 사고있던 터라, 어쩌면 그들은 나의 새로운 선택에, 자신들의 희망을 감정이입시키고 있었는지 몰랐다.
(다른부서의 몇직원들은 이미 동양글로벌로 직장을 옮겼다. 우리 농산부의 어느 직원이 사직서를 낼 때, 나는 그가 동양에 이직한다는 것을 느끼고 ‘너 동양가지?’ 하였더니 그는 ‘노’하였었다. 그는 나의 농산부방침에 전혀 따라오지못하고 의욕이 없던 친구였다. 속으로는, 그곳에 가서는 제발 딴 생각하지말고, 매사 열심히 네가 할 일을 찾기를 바란다하였지만, 그는 또 나를 거기서 만나는 야릇한 ‘운명’을 갖고 있었다. 그는 몰래 내가 편집하여 만든 ‘무역실무편람’을 몰래 복사하여 가지고 갔다.)
그들은 나를 떠나보내는 조건으로, 직원들 모두의 잔을 받고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조건아닌 조건을 붙였지만, 술을 잘하지못하는 나에게는 치사량에 버금가는 양이었고 아주 가혹한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때가 때이고 마음이 마음인지라 거절할 수 없었고 기꺼이 직원모두의 잔을 버리지않고 모두 마셔주었다.
무슨말이 오고갔는지 도통 기억에 없고, 단지 기억나는 것은, ‘마포나루’를 나올 때, 하늘과 땅이 어우러져 흔들렸었고, 집에 와서는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소리소리 내지르며 불러댔다는 것.
지난 1976년 어느날 군대제대하며, 쫄병들과 제대기념회식때 만취해서,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내려왔다 올라갔다하던 때와 거의 비슷하였다.
그만큼 쌓였던 감정들이 복받쳐왔을 것이고, 새로 가야하는 길이 결코 간단한 길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었다.
직원들은 섭섭해하면서도, 마치 자기일처럼 ‘잘되었다’고 축하해주었고, 나의 새로운 앞날을 축복해주었다.
(회식을 했던 ‘마포나루’는 내가 회사손님들, 특히 외국손님들과 편하게 스스럼없이 자주 갔던, 보통 한식집이었다. 어찌나 음식이 푸짐하고 맛깔스러웠던지, 훗날 ‘대평원’이 신규사업을 추진할 때 마포나루를 본떠서 ‘송파나루’ 음식사업을 하려고까지 하였을 만큼, 우리 농산부의 단골밥집이었다.)
'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태를 떠나면서 6; 처음 해보는 ‘강제 휴갓길’, 지리산.해남 땅끝마을.보성옛집을 다녀왔다. (0) | 2019.02.13 |
---|---|
해태상사를 떠나면서 4; 동양그룹의 현재현회장을 만났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0) | 2019.02.11 |
7해태상사를 떠나면서3; '가지않은 길3'...‘농산.식품사업 본부장 2’를 맡을 수 없다하고, 그 날로 ‘사표’를 냈다. (0) | 2019.02.10 |
해태상사를 떠나면서 3; 해태상사(유사장)는 나에게 ‘농산.식품사업본부장 2’를 맡으라고 하였다. (0) | 2019.02.09 |
해태상사를 떠나면서 2..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는데, 잊고있었던 ‘동양’에서 연락이 왔다. (0) | 2019.0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