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상사(주)에서(1980-1995)

해태를 떠나면서 6; 처음 해보는 ‘강제 휴갓길’, 지리산.해남 땅끝마을.보성옛집을 다녀왔다.

햄릿.데미안.조르바 2019. 2. 13. 10:22

/해태를 떠나면서 6; 처음 해보는 ‘강제 휴갓길’, 지리산.해남 땅끝마을.보성옛집을 다녀왔다.

 

나는 회식다음날로, 지리산.해남땅끝마을.보성옛집을 돌아보는 남도7일 여행길에 나섰다.

지난날들을 하나하나 정리해보고, 앞으로 만나게 될 하루하루를 미리 들여다보면서,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도, 구드신으며 걸었던 뱀사골달궁 그리고 힘들여 천천히 올라갔던 성삼재, 땅끝마을 그리고 나의 옛집이 눈에 어른거린다. 나는 이후 나에게 어떤 중요한 변화가 있으면, 이 길들을 다시 걸었다. 지리산의 깊고 넓은 품에 나를 맡기고, 남도끝까지 가보고, 내가 태어나 자란 보성옛집을 다녀가면서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훗날, 환갑을 맞이하면서, 나는 1박2일 지리산종주를 하면서 향후 10년.20년 삶을 기대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종합상사 ‘금호실업’에 입사하여(1977.10), 해태상사로 이직한 것이 1980.3.1이었으니, 해태상사에서의 파란만장하고 휘황찬란하기만 했던, 겁 없이 뛰어다니고, 끝까지 파헤치고, 결국 모두 이루고말았던 15년 생활에 일단락을 짓게 되었다.

(내인생 전반부를 ‘화려하게’ 마감하고, 이젠 후반부를 향하여 내딛는 ‘힘차고 야망가득한’ 발걸음이 되었다.)

몸무게가 10여키로나 빠지는, 힘든 방콕생활도 있었지만, 하고싶은대로 일을 거침없이 해왔고, 많이 배웠고 많이 겪었고...유부회장님 말씀처럼, 박수석처럼 회사생활한다면 못할 일이 어디 있으며 무슨 걱정거리가 있겠느냐 하셨듯이, 나는 해태상사에서 근무하면서 평직원으로서 하고싶은 모든일들을 '원없이‘’부담없이‘’거침없이‘ 해보았던, 첫 직원이었을 것이다.

물론, 방콕지사장 3년은 나에게는 굴욕의 시간, 어둠의 시간들이었지만 그 시간들까지 나에겐 큰보약이 되어 나의 앞날에 크게 도움주었으니, 나의 해태시절은 내 인생 전반부를 마감짓는 ‘좋은 보금자리’였다.

(막상 동양그룹에 가보니, 해태시절의 내가 얼마나 축복받았는지 알수 있었다. 동양에서는 나의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 무슨 일을 하려고해도, 소위 말빨이 먹히지가 않았다. 해태에서는 내가 무슨말을 하면 모두가 경청해주었고 무게감을 실어주었는데, 동양에서는 들은척만 했다고 할까 도통 실행이 되지않았다. 과장 하나 데리고 오려고해도 기술적인 ‘방해’가 끼어들어 일을 이루지못하게 하였다. 여우를 피하니 호랑이가 내앞에 나타났다고 할까? 재벌회사, 큰기업의 불합리한 경영을 타파하려고 했다면, 새직장‘동양’에서 할 것이 아니라, 미운정고운정이 다들어있던 ‘해태’에서 끝까지 부딪쳐봐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