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나는 어느 결혼식에 갔다.
고3 때 같은반친구, 주관이 너무 뚜렷한 독특한 개성의 소유자.
자신의 기본원칙과 다른 경우 때로는 세상현실과의 불화도 마다않는 뱃짱에 황소고집불통.
그러나, 순수하고 소박해서 나는 그의 팬이 되었다.
그의 예비의사 아들결혼식이었다.
어느 대학 동문회관이었다.
나는 결혼식에 가는 것이 괜히 즐겁다.
누가하건 어디서 하건 새로운 한쌍의 새로운 시작을 직접 챙겨보는 것은 그야말로 그냥 즐거움이다.
거기에 덤으로, 두식이넘 한끼를 해결할 수 있어 또 좋고, 거기에 또 추가덤으로, 오랫동안 못보던 옛친구녀석들을 만날 수 있으니 또 좋고, 우수리 덤치고는 넘치고 또 넘치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그런지 결혼식 가는 길은 나도 모르게 덩달아 설레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가끔, 몇몇 결혼식에서는 즐거움보다는 조금 허허로워질 때가 있다.
식장입구의 너무 많은 화환들이 갑자기 나를 휘둘러대는 것 같아서....
또 무작정 고급스럽기만한 식장이 혹 나를 초라하게 하지는 않은가 괜히 돌아보게 해서....
가끔가끔 뻘쭘멋적을 때가 있다.
내심 즐겁게 설레이던 마음이 어색해지고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어지는 것을 간신히 달랠 때도 있다.
정성스레 준비해온 축의금 두께가 혹 얇지는 않은지 얄궂게 쓸데없는 속셈을 하게 하기도 해서 여간 불편하지 않을때가 있다.
그날
나는 하다보니 평소보다 1시간여 일찍 식장에 도착했다.
시간적으로 여유가 빵빵했다. 잘 되었다 싶었다.
마침 날씨도 화창한 봄날
모처럼 느긋한 토요일
혼주에게 축하하기전에
대학캠퍼스 곳곳도 둘러보고
따사한 봄볕도 쏘여보고 냄새도 맡아보자!
오랜만의 대학은 역쉬 그냥마냥 좋기만 하였다.
특히 자연의 봄 냄새가 가득한 대학,
여기저기 청춘의 발걸음 총총듬뿍물씬거리는 그 대학!
대학의 자유, 젊음의 자유가 곳곳에서 소리지르는 것 같았다.
대학을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좋고 또 좋았다.
대학에서의 결혼식은 아무래도 대학의 자유분방함에다 아직은 세속에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어서 더 좋을 것이다.
나는 왠지 요란하게 분칠해댄 화려한 호텔식보다는 밋밋하나 수수한 대학의 식장이 더 좋기만하다.
잔뜩 과시하고싶어 안달거리며 방자하게 치장한 여인 보다는 차라리 수수밋밋해도 다소곳하게 정성들여 꾸민 수더분한 여성이 더 좋듯이.......
식장은 아직 한가하였다.
축하손님들이 아직 밀려들 시간이 아니었다.
예의 장난기가 발동, 식장 여기저기를 둘러 보았다.
그날의 혼주는 역시나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얀머리도 염색하지 않은채 있던 그대로 보여주었다.
오늘만큼은 조금 화려하게 색깔있는 넥타이로 바꾸어볼만도 한데 여전히 평소의 수수함 그대로였다.
오히려 노타이차림을 고집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구두는 어떤가.
우리 가난한 학생시절 신었을 듯싶던 서민풍가득담긴, 그것도 약칠도 변변하게 하지않은듯한 놈!을 자랑하듯 하나 떡 걸치고 있었다.
의사아들 장가보내는 것이니 한켤레 고급으로 장만해도 좋으련만 아니나다를까 나의 존경하는 친구는 그고집을 쇠고집으로 옹고집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병중인 아내가 휠체어에 앉아 손님들의 축하를 받고 있었다.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손님들을 맞이하는 그의 병중 아내는 말은 하지못해도 우리가족행복하다고 나는 오늘 너무 즐겁다고 얼굴로 말하고 있었다.
그는 말못하는 병중 아내가 그리 안쓰러운지 또한 그리 사랑스러운지 연신 눈길을 보내주고 있었다.
누가 이들을 행복하지 않다고 할까?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뿌듯함과 보람이 가득가득 그날 봄날처럼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의사아들을 두면 이른바 열쇠 3개는 얻을 수 있다 하였는데 그는 어찌 이를, 우리시대 병적인 탐욕을, 다스렸을까?
옆집 신부네를 보았더니 소위 잘나가는 그 동네세상 가까이 가는 열쇠는 없는 듯 하였다.
아니야, 필시 신부네에서 열쇠 3개를 가져온다하였으나 그가 그 옹고집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하였을 것이다.
그의 신발이 그의 넥타이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가 자랑스럽고 또 부러웠던 것이 또 있엇다.
친구아들은 모든 조건 모두 뿌리치고 오직 사랑 하나로 살림을 꾸린다는 것이었다.
이사람 저사람들의 귀와 눈은 모두 상관하지 않기로 하였다는 것이었다.
이세상 속세의 아버지가 어디 그 사랑을 허락하기가 쉬웠을까?
어쩌구 저쩌구하는 계산놀음이 세상을 들었다놓았다 할 것이었는데
모두들 하는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 아닌가?
그 아들에 그 아버지였다.
둘도 없이 하나뿐인 사랑마음을 어떤 자리와 무슨 돈과 맞바꾸어 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점입가경은, 축가.
요즘 결혼식 팻숀중 하나.
식장마다 그럴듯한 무게를 담고 그럴듯한 장중한 축가가 따라나온다.
때로는 유명가수들을 사서 나오게 하기도 한다.
점점 요식행위가 요란해지고 허영이 지나치고 허식이 또 늘어난다.
그런데 그날의 축가는 신랑이 직접 불렀다.
말하자면 신부에게 바치는 사랑의 연가!
계산속 밝은 세상모든이들에게 들으라는듯이 보란듯이 의사신랑은 직접 축가를 부르고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너무 기특하여서 자세히 보았더니
작달막한 친구아들녀석은 땀을 범벅으로 흘리며 그러나 씨익씩 웃어가며 노래를 부르는데...
오른손바닥 위에 놓인 가사쪽지를 보랴 축하손님들을 보랴 땀이 더 나는 듯 보였다.
저 애절함이 저 순수함이 끊이지 않고 연속되어 마무리 되어야 하는데....이제는 듣고있는 손님들의 마음에 땀이 솟는듯 하였다.
끊어질듯 이어가던 사랑의 노래가 갑자기 어딘가에서 끝이 났다.
일순간 식장은 조용해졌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나는 노래가 끝났구나 싶어서 '앙콜'을 크게 외쳐댔다.
어찌나 때묻지 않은 신랑이 자랑스럽고 대견해서 내자신을 대하듯 소리쳐 또 한곡 더 부르라 소리치고 만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신랑이 노래를 부르다가 가사적힌 종이쪽지를 떨어뜨렸다는 것이었다.
축하손님들은 무엇이 그리 즐겁고 좋은지 식장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었다.
의사신랑은 땀만 조금 더 흘릴뿐 조금도 당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천연덕스럽게 종이쪽지를 주어서 사랑의 노래를 계속하고 그 끝을 마저 내는 것이었다.
대체 언제, 어느 가수가 결혼식장에서 그렇게 우렁차고 힘찬 박수를 받아보았을까?
분명 그날이 처음이었을 것이고 아마도 그날 신랑이 마지막 그 가수일 것이었다.
모두들, 하객들 너나없이 모두가 나의 일처럼 즐거워하고 행복해했다.
나의 옹고집 친구와 그의 아들이, 결혼이란, 결혼식이란,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세상 만방에 '쇼쇼쇼'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 결혼은 사랑으로 하는 거야, 그래 결혼식은 이렇게 하는 것이야!'라고 모두들 직접 체험하고 갔을까?
참 신나고 즐겁고 너무나 좋은 결혼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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