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무대보다 못하고,무대는 삶의 현장에 미치지 못합니다.(디오니소스 극장의 비극)
시지프스의 비극과 까뮈의 실존주의를 밤새워 토론하며, 그것은 그리스 노예제를 위한 변명이라고 질타했던 20대의 설익은 담론들이 아득한 추억의 저편에서 다가온다.
피투성이가 된 손발로 바위를 산꼭대기로 굴려올리면 다시 평지로 굴러내리고 마는 절망의 무한궤도,
과연 우리는 그 절망으로부터 도전과 책임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을 삶의 가치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수긍할 수 있는가.
그리스 비극은 그 플롯이라는 극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비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담보하고 있는 사회성에 먼저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그리스의 비극에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뛰어난 메시지가 담겨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바위에 결박된 채 매일매일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다.
절대권력에 대한 인민의 도전, 귀족에 대한 평민의 저항, 곧 민주주의의 선언.
프로메테우스= 미리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건설해야 하는 것이며, 또 그것을 위협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하여 ‘미리 생각하는’, 곧 미래에 대한 선취를 역설하는 것.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민주주의라는 형식보다는 내용에 관하여 보다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국법을 어긴 오라버니의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게 하는 크레온왕의 명령을 안티고네는 무시한다. 오라버니의 시체가 썩어가고 들짐승들에게 뜯기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티고네의 비극은 사람이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인간선언.
그리스 비극은 신과 영웅과 왕들에 대한 저항의지를 결의하는 시민철학의 대장간.
삶의 현장에 구조화되어 있는 빈부와 성과 계급간의 갈등이 키워 온 갖가지의 소이를 대동화하는 용광로가 바로 디오니소스 극장.
무대와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연극은 그것이 아무리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고 하더라도 삶의 현장에서 부단히 직면하는 현실과는 역시 아득한 거리가 있는 것,
연극의 한계이며 무대의 환(幻)
TV는 배우들의 육성과 코러스가 울려퍼지는 무대보다 훨씬 왜소하고 감동도 미미하다.
TV는 무대보다 못하고 무대는 삶의 현장에 미치지 못하는 법.
시지프스의 비극과 까뮈의 실존주의를 밤새워 토론하며, 그것은 그리스 노예제를 위한 변명이라고 질타했던 20대의 설익은 담론들이 아득한 추억의 저편에서 다가온다.
피투성이가 된 손발로 바위를 산꼭대기로 굴려올리면 다시 평지로 굴러내리고 마는 절망의 무한궤도,
과연 우리는 그 절망으로부터 도전과 책임의 의미를 자각하고 그것을 삶의 가치로 받아들이라는 요구를 수긍할 수 있는가.
그리스 비극은 그 플롯이라는 극적 요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비극이라는 장르 자체가 담보하고 있는 사회성에 먼저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그리스의 비극에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뛰어난 메시지가 담겨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바위에 결박된 채 매일매일 독수리에게 심장을 쪼이는 형벌을 받는다.
절대권력에 대한 인민의 도전, 귀족에 대한 평민의 저항, 곧 민주주의의 선언.
프로메테우스= 미리 생각한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건설해야 하는 것이며, 또 그것을 위협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하여 ‘미리 생각하는’, 곧 미래에 대한 선취를 역설하는 것.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민주주의라는 형식보다는 내용에 관하여 보다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국법을 어긴 오라버니의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게 하는 크레온왕의 명령을 안티고네는 무시한다. 오라버니의 시체가 썩어가고 들짐승들에게 뜯기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안티고네의 비극은 사람이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법이 사람을 지켜야 한다는 인간선언.
그리스 비극은 신과 영웅과 왕들에 대한 저항의지를 결의하는 시민철학의 대장간.
삶의 현장에 구조화되어 있는 빈부와 성과 계급간의 갈등이 키워 온 갖가지의 소이를 대동화하는 용광로가 바로 디오니소스 극장.
무대와 무대 위에서 상연되는 연극은 그것이 아무리 진한 감동을 안겨준다고 하더라도 삶의 현장에서 부단히 직면하는 현실과는 역시 아득한 거리가 있는 것,
연극의 한계이며 무대의 환(幻)
TV는 배우들의 육성과 코러스가 울려퍼지는 무대보다 훨씬 왜소하고 감동도 미미하다.
TV는 무대보다 못하고 무대는 삶의 현장에 미치지 못하는 법.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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