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며느리손주들에게

2002.4.21.일...사랑하는 둘째 형보에게

햄릿.데미안.조르바 2013. 1. 31. 15:55

 

2002.4.21.일.

사랑하는 둘째 형보에게,

며칠 전 형에게서 편지가 왔다. 군대생활 21개월째를 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편으로는 많이 성숙해졌으나 또 한편으로는 장래에 대하여 조금 불안한 모양이더라.

어찌되었든 형이 엄마.아빠에게 제 느낌을 편지로 알려준데 대하여 아빠는 매우 기뻤고, 조금이나마 형의 생각방향에 도움이 될까싶어서, 오늘 아빠생각을 적어보냈다. 형보 네게도 만날 수 있는 고민일 수 있으니,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형보, 시간이 나는대로 노무현의 홈페이지 'www.knowhow.or.kr'이나 'www.nosamo.com'에 들어가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만났으면 한다.)----------------------------------------------------------------------------------------------------------

2002.4.21.일.

사랑하는 내아들 형민에게,

오늘은 일요일. 아무리 늦장을 부려도 아무도 이 자유로움을,이 편안함을 비난할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 거실 앞 베란다에는 때 맞춰 화초들이 꽃을 피웠다. 그 향기가 주인을 닮았는지 부끄러워 하는듯 하나 정말 은근하고 달콤하기까지 하단다. 누군가는 가꾸어지는 꽃보다는 바람찬 들판의 들꽃이 훨씬 아름답다고 하였지만 오늘은 우리집 꽃들도 못지않게 아름답다.

계속 게으름을 피울까 그러다간 낮잠을 자게 되겠지 그러면 한 주일이 무거움으로 시작될텐데 하며 오늘을 어찌 보낼까 망설이다가 엄마와 우면산의 봄 풍경을 만나러 가기로 하였다. 아빠는 갔다와서 '노무현 홈피'를 보고, 엄마는 골프연습을 하는 것으로. 골프연습장이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아 한번 칠려면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우면산 가는 길에 골프채를 우선 갖다놓고 올라갔다 오면 기다리지 않고도 바로 칠 수 있을 거같아 엄마가 가끔 써먹는 방법이다. 너희 엄마도 머리 기똥차게 재빠르게 돌릴줄 안다아.

우면산은 이미 봄이 아니었다. 벌써 여름이 다 되어 있었다. 계절이 이렇게 빨리 바뀌는 것이냐? 지난 주에는 나무잎들이 아직 활짝 소리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겨울을 뚫고 어린 봄을 시작하고 있었단 말이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나무들은 조심스럽지 않고 확실하게 여름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빠의 마음과 몸도 금방 땀을 흘리며 계절의 빠른 흐름을, 자연세계의 법칙을 받아들여야 했다. 자연은 정해진 속도와 순서대로 가고 있을 뿐인데 인간인 나만이 빠르니 어떠니 하며 호들갑떠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엊그제가 네나이 대학생인 거같은데 벌써 머리는 하얗고 나이는 오십이 넘었으니 세월 참 빠르지? 얼마 전부터 세월이 엄청 빨라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아빠의 시계가 빨리 가고 있는 것이다. 마음은 아직도 네나이 대학생인데, 하고싶은 일들이 아직 많은데....

네 편지를 받고 아빠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네가 짐작할 수 있겠냐. 이녀석 이제 철이 확실히 들었구나 이제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제 갈 길은 제가 알아서 잘 헤쳐 가겠구나 느꼈기 때문이다.

언제나 고민을 시작할 것인지 '나'는 누구인지 대학은 무엇하는 곳인지 인생은 무엇인지 '나'는 장차 무엇이 될 것인지 등등 근본적이고 원론적인 의문을 품어야 하고 또 자신에게 질문해 보아야 하고 그리고 해답없는 답답함과 지겨움과 그로인한 당연한 불안함에, 고민 갈등 번뇌하면서 젊은 시절을 시작하고 보내야 하는데.....옆에서 아빠는 조마조마 잔소리 하고파서 그동안 안달이었단다.

뭐가 뭔지 잡히지 않고 불안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네 앞에 무엇이 떠억 나타나서 확정적으로 '너'는 이제 무엇이 될 터이니 지금부터 무엇만을 하여라 하고 확인해 준다면 네 인생이 얼마나 썰렁하고 싱겁고 가치없겠느냐? 대신 모든 것이 네 앞에 놓여 있다. 네 하기 나름으로 네가 만들어가는대로 너는 무엇인가 만들 수 있다. 모두 네 몫이다라는 것이라면 더 해볼만 하지 않겠냐. 물론 넘어지고 깨지고 헤매고 허둥대고 실패하고 때로는 좌절도 하고 절망속에서 울부짖을 때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거야. 고뇌하면서 큰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오늘 벌써 제한되어 '작은 나'가 되는 것보다는, 번민하면서 20년후 '더 큰 나'가 되는 것이, 남보다 많은 재능을 네게 준 하늘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다.

너는 자꾸 부정하려고 하더라만 네게 주어진 잠재능력을 충분히 활용하여 네 자신과 너를 길러준 사회를 위하여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겁먹을 필요없다. 무슨 대단한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니까. 그냥 하루하루 자유롭게 네 하고싶은대로 생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말했듯이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무슨일이든 하고자 하는대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불안한 것은 불안한대로 그냥 받아들이고, 딱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고 지금 작정이 안되면, 네가 말했듯 일반잡지도 보고 영어공부도 하고 조중동도 훑어보고(조중동은 헛소리를 많이 하니까 주의를 가지고 보겠지?) 네가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을 부담없이 하면된다. 그러다보면 어느사이 우면산의 풍경이 일주일 사이에 바뀌듯, 네 안목이 바뀌고 불안감은 봄날 안개 사라지듯 네 앞에서 없어져 버린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을 것이다. 어느사이 몰라보게 커져있는 네 몸과 마음을 만나게 될 것이다.(한동안 되었다싶으면 어느사이 새로운 고뇌가 오고 또 불안해지고 또 절망하고......너를 다시 시험하게 되고 너는 번뇌하면서 그것을 극복해나가고.....이런 과정이 내용과 크기가 달라지면서 네 삶 과정 과정에 일어나게 된다. 삶이다. 인생이다. 나이를 먹고 머리가 하얗게 되고,, 마음은 아직 대학생인데, 하고싶은 일들이 아직도 많은데....하며 너도 네 아들에게 이런 편지쓰게 될 날이 오게된다. 인류의 반복되며 발전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네 편지를 받고는 하고싶은 이야기가 봇물처럼 터질 거같았는데 막상 쓰다보니 또 '잔소리'가 되었구나싶어 아빠 마음은 편지 받을 때만큼 기쁘지 않다. 네가 잘 소화해서 네 앞날 설계에 좋은 방향으로 참고했으면 한다.

경쟁사회에서는 보다 잘 자신을 가꾸고 경쟁하며 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기계획을 세우고(Plan),실행하고(Do),반성해야(See) 한다고 한다. 하루, 1주. 1달, 1년, 3년,5년,10년 후 계획을 한번 생각해 보아라. 20년 후를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10년,20년 후를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느냐고 하겠지만 한번 미리 어설프게 그려보는 것과 먼 장래의 일이라 알 수 없다고 그냥 지나치는 것하고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아빠도 비슷한 경험이 실제로 있다.)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하고자 하는 일이 만들어진다'고 했었다. 50이 넘은 나이임에도 앞으로 30년을 어떻게 생활할 것인가를 계획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시간을 다룰 줄 아는 자, 세월의 흐름을 다룰 줄 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를 자신에게 알맞게 조정할 줄 알게 된다. 네가 입대한지 벌써 21개월째라니, 시간들은 네 앞에 항상 왔다갔다 한다. 네가 그것들을 다루어야 한다. 관심만 가지면 시간은 쉽게 너와 친구가 되어 네 것이 될 것이다.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너에게서 도망을 가고 너는 불안해 할 것이다. 엄마가 와서 자꾸 귀를 만지고 아빠 눈을 들여다 보면서 키보드를 잘 친다고 놀린다. 집중력이 좋다고 띄운다. 자판 두드리는 것을 시작한지 얼추 1년여, 많이 늘었다. 얼마나 어설프고 겁나고 하기 싫었는데 맨처음에는. 그래도 해야 할 것같아서 시작했더니 요즈음 인터넷이 재미있다. 노무현의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또다른 기쁨이고 행복이다. 너도 시간나는대로 www.knowhow.or.kr이나 www.nosamo.com에 들어가 보아라. 좋은 세상을 바라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너무 길었나? 또 편지할 거지? 여름같은 늦은 봄날 일요일 낮잠을 자지않고 더 즐거운 월요일을 만날 수 있게 된 박형민 박형보 아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