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녹자불견산! 축녹견산? 사슴을 쫓는자 산을 보지 못한다. 사슴을 쫓으면서도 산을 볼수있다? 종주에 매달리면 지리산을 잘 보지못한다? 종주는 산세흐름에 맡기면.. 산과 호흡을 같이하면 지리산이 보인다? 종주는 마라톤과 같으니 산흐름에 맡겨라? 전문산꾼들이나 산악동호회처럼 굳이 걷는 속도를 바람소리 휙휙 나게 할 필요가 있을까 오늘 중으로 세석대피소에 가면 그만 아닌가 그러나 구름이 끼고 흐린날씨라 탁 트인 시원한 전망구경은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서둘러 걷지 않으니 부담되지 않아서 우선 좋았다. 누구는 걷는 속도에서 보는 것이 가장 잘 보이고 가장 아름답다 하였다. 걷는 속도로, 사람의 눈높이에서 보는 것이 가장 잘 보이고 가장 아름답다 하였다.
어느 지점에서였을까? 토끼봉? 시계를 보니 얼추 11시. 오늘(9.20) 세석대피소에서 하룻밤 자야하는데... 오후6시까지는 그곳에 도착해야하는데....??? 인터넷으로 숙소예약을 하였으므로 잠자는데는 문제없지만... 벽소령대피소를 늦어도..오후 3시30분(동절기 오후2시30분)까지는 통과해야한다고 하였다. 종주코스 지도상으로는 노고단-토끼봉 7.5키로 물론 도상직선거리이다. 노고단대피소 출발시각이 6시 5시간에 7.5키로를 걸었으니 시간당1.5키로... 노닥거리며 걸었다 해도...그다지 좋은 속도는 아니었다. 토끼봉에서 벽소령까지는 6.6키로 노고단에서 토끼봉까지의 난이도에 비하면 다음 벽소령까지는 더 힘들 것이다. 시간당 2키로 걷는다면 오후 3시경 늦어도 3시반까지는 벽소령대피소 도착, 통행제한시각 3시반까지는 맞출 수 있겠다싶었다. 그러나 결코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곳까지는 이제까지의 산세에 비하여 난이도가 훨씬 높기도하고... 나의 신체적콘디숀이 지난밤 기찻속 선잠때문인지 그다지 좋지않기때문이었다. 서둘러서 토끼봉을 떠나고 벽소령까지 남은 길을 해찰부리지않고 착실하게 꾸준히 걸어야했다. 문제는... 노고단대피소 아침식사때 옆자리 나이고운녀성동무님들과 어찌 헤어지느냐였다. 이 깊은 산중에 그대로 고운여자들끼리만 걷게하기가 여간 내키지않았다. 최소한 나만한 착한사내가 동반하면서 있을 수 있는 대소사를 챙겨주어야 마땅한 노릇일 것이었다. 어찌해야 좋을 지 고민고민되었다. 아,이럴 때를 일컬어 진퇴양난이라 하는구나 싶었다. 이곳 토끼봉까지 그다지 많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산행 내내 동고동락해왔는데 막상 헤어지려고하니 착하기만한 나같은 사내입장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김밥도 얻어먹고 맛있는 과자까지 얻어먹었으니 조금만 더 친해지면 분명 친구가 될 것인데...비겁하게도 사내녀석이 저만 잘먹고 잘 살겠다고 불쑥 도망간다 할 것 같았다. 더군다나, 툭툭 둘러치며 해나가는 이야기마다 어찌된노릇인지 주파수가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나! 전혀 충돌잡음이 끼어들지 않는 것은 물론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산행의 어려움이 별로 느껴지지않기도 하지않았나! 그러나 어찌하리오... 이 야속하고 냉엄한 현실을... 나는 기어코 오늘 오후3시반까지 벽소령을 통과하고 세석대피소에 늦어도 오후6시까지는 도착해야 했다. 이 냉혹 냉정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이를 꼭 지키지않으면 아니되었다. 큰뜻을 세워놓고 펼치고 꼭 이루어야할 사내의 마음이 흔들리면 큰일이었다. 내일의 큰뜻을 위해 오늘 재미를 과감히 버려야했다. ‘세운 뜻이 있어 여기서 헤어져야하옵나이다. 너그러이 용서양해해주시옵소서! 낭자들 인연이 닿으면 또 만나겠지요!흑흑흑’ 나는 분연히 박차고 떠났다. 누군가 묻고싶을 것이다. ‘으잉 이거 실화야 소설이야?’ ‘왕구라 피는 거쥐응?’ 나;‘뻥이요 뻥!’라고 한다면...너무 재미없지않을까??? ggg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그대들도 어서 한번 지리산종주를 해보시라! 그러면 분명코 좋은 일이 있을 것이고 세상이 달리 보일 것이나니...’ ----- 토끼봉-3키로-연하천대피소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하니 12;20경. 1시간반쯤 걸려서 3키로... 노고단-토끼봉보다 더 험한 길을 걸었으니 생각보다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런 속도라면 벽소령대피소 통과제한시각 3시30분은 지킬 수 있겠다 싶었다. 혹시 모르는 일... 조금이라도 시간확보를 위하여 점심식사는 벽소령대피소에서 하기로하였다. 너무 빈속으로 움직이는 건 좋지않을 것이고 때가 되었으니 그래도 뱃속에 기별은 해야했다. 쵸코렛하나, 비스켓 한조각 그리고 사과 1/4 조각을 입안에 넣었다. 꿀맛으로 다가왔다. 사람의 마음이라니.... 연하천대피소는 샘물이 바로 지척에 있었다. 물통에 물을 가득 채우고 벽소령을 향했다. 12;30; ------- 연하천대피소-3.6키로-벽소령대피소 왜이리 힘이 드는고야? 왜 이리 험난하고 가파른 고야응? 왜 이고생을 하는거쥐? 무릎에 조금 무리가 오는 것같아서 무릎보호대를 껴입었다. 불편하였지만 갈길이 아직 멀고 만만치 않으니 선제적조치를 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하이고 다리얏! 오메 힘든거! 드디어 벽소령대피소 오후2시 30분경. 연하천대피소에서 가득 채운 물통이 바닥이 나버렸다. 샘물터 가는 길 표시를 따라 얼마쯤 내려갔더니 '산아래 70미터'라 표시되어 있었다. 단 70미터가 까마득하여 천리길보다 멀리 느껴졌다. 70미터가 아니라 분명 7키로의 무게였다. 결국은 물채우는 것을 포기했다. 남들이 이해가 될까? 나도 이해가 잘 되지 않은데.... 이럴줄 알았으면 연하천대피소에서 물통하나를 더 채울껄...후회해본들 이미 떠난 배였다. 또한편으로는, 뱃속에서 아우성이었다. 밥을 달라 그렇지않으면 여기서 그만둘 것이다! 급하게 민생고를 해결해야 했다. 따뜻한 밥은 없고 딱딱 굳어빠진 콩떡인절미를 들이밀었다. 꾸역꾸역 입속에서만 맴돌았다. 목넘어 뱃속으로는 진입하지 않으려하였다. 물이라도 집어넣어 흘러보내면 좋으련만 물도 없고..... 김치라도 있었으면....쩝쩝쩝 적고 거친 식사와 ‘고행’의 찰떡궁합? ‘고행’에는 딱 맞는 궁합이었다. 무릇 ‘고행’에는 고통과 즐거움이 함께 있다는 누구의 말을 믿어주기로 하였다. 때맞춰 젊은산꾼 둘이 왔다. 그들은 오자마자 배낭을 풀고 코펠과 버너를 내놓고 늦은 점심을 준비하는 것 아닌가. ‘진수성찬’을 준비하는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는 이것저것 예의체면 따질 겨를틈이 없었다. 체면몰수나;물 좀 얻을 수 있을까영?...저아래 샘물터는 도저히 갈 수가 없고여...(거의 반죽어가는시늉하면서) 젊은그들;(속으로..으잉 왠무차별공격하삼?) 우리도 물이 많지 않은디... 체면만구긴나;(흐미 그러면 그렇지잉 산속에선 물한방울이 피한방울과 같지비...포기...포기)..... 젊은천사; 조금만 드릴께여...조금 더 가면 선비샘이 있으니 거기서 보충하세여... 복받은나;감사감사 하늘만큼 땅만큼...복많이 받으실꺼요,젊은이님!(나는 호들갑을 떨면서 나의 체면을 숨겼다) 물이 입속으로 들어오니 입속에서 몽그작뭉그적거리던 콩떡인절미들이 좋다고 난리부르스들을 쳐댔다. 만세만만세! 이 매정한 세상에도 따뜻한 사람들 또한 있다는 것 죽으란 법은 없다는 것 그러나, 배낭무게를 조금 줄이려고 연하천대피소에서 물통하나에만 물을 채운 어리숙하기만한 나의 약싹빠른 속셈법. 70미터 ‘고행’을 멀리하고 결국 체면몰수 피반병을 갈취한 나의 철면피. ‘지리산종주’ 역사속 한페이지 기록으로 남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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