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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8.수-5.10.금..2박3일 외박(보성산소.대원사 템플스테이)여행기

햄릿.데미안.조르바 2024. 5. 11. 15:24

2024.5.8.-5.10...23일 외박여행기

510일은 어머님 기일이다..지난 2011.4.3()에 돌아가셨으니 벌써 13주년이다.(아버님 모셨던 생가 가까운 박씨선영에  함께 모셨다..풍수지리상으로 새가 앉아있는 곳이니 무거운 돌등 비석을 세우지말라는 유언에 따라, 단촐하고 소박하게 상석만 깔았다. 대신 상석은 제법 넓직하고 크게 만들어놓았다.(부모님 기일만 쓰고 손주들이 너무 많아 번잡스럽다하여 8남매 이름만 간단히 적어두었다.)

최소 1년에 한번은 찾아뵈어야하나 멀리 있다는 핑계로 어쩌다 찾아뵙곤한다.
 
올해들어 나는 여러모로 생활페턴을 조금씩 바꿔보기로 하였다. 70초반을 넘어 70 중반에 드니 하고싶은 것도 많지만 또 그러려면 너무 많은 것을 하려면 또 하던일들을 줄여서 새로이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남는 시간, 여유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골프하는데 썼던 것을, 올해부터는 그 골프를 대폭 줄이기로 하였다.
필드라운딩은 주 2회, 1달 8회 정도를 1달 2-3회로 줄이고 연습장에는 가지않고 이미지스윙으로 대체하였더니 하루 시간보내기가 널널하여졌다. 책읽기도 늘어났고 글쓰기도 늘어났다.
시간나는대로 짬을 내서 국내여행도 늘려보기로 하였다.
마침 어머님 기일이 눈에 들어왔다..골프일정을 잡지않으니 여행일정 잡기가 쉬워졌다…그러나 막상 어머님산소 일정을 잡으려하니, 이일저일이 겹쳐서 간단치가 않았다. 특히 교통편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광주형제들과도 상의해야하니 날짜 잡기가 쉽지않았다..날짜잡히고 SRT 예매를 하려하니 모두 매진..생각지않은 복병을 만나게 되었다…며칠전이면 예매가 간단할 줄 알았는데 좋은시간대 자리가 없었다. 어머님기을을 2일 앞당기는 것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꼭 기일 하루전에 가야하는 것은 아니려니 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제1일 5.8.수. SRT 기차. 수서08;30-광주송정 10;56
오랜만의 여행이어서인지 지난밤 잠을 설치게 되었다. 전전반측하다 잠이 들고 6시쯤 알람에 일어났다. 가볍게 아침을 챙겨먹고 여유있게 출발..집에서 7시쯤…걸어서 남부터미널역까지
수서역에 도착하니 7시45분. 아직 출발시각 08;30까지는 여유가 있어서, 안내소에 가서 오는 차편의 변경과 취소가능여부를 상담하였다.
제3자에게 선물받은 승차권은 수요자가 직접 출발전 창구에서 가능하다는 답이 돌아왓다. 그러면서 핸폰에 SRT앱을 깔아주었다.
 
ㅁ.광주송정역에서 보성역까지

-광주송정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헐레벌떡 경전선 발권창구로 뛰어갔다. 계단을 오르내려야하니 무릎이 아우성쳤지만 10시34분 출발하는 보성행 열차를 타기우ㅢ해서는 다른 방버이 없었다.
다행히, 간신히..차표을 구매하고..보성행 열차를 탈수 있었다.4분전? 군대시절 유격훈련때, 공수훈련때 해보았던 달리기였다.
 
보성에 11시56분?에 도착한다하니 광주에서 보성까지 1시간 30여분? 옛날 3시간 정도 걸리던 때를 생각하면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나는 그 시절, 내가 보성에서 광주로 유학하였던 그시절 1964-1969로 돌아갔다…13살이던 1964년에 광주서중에 합격하고 광주에서 자취생활과 입주가정교사로 광주생활을 하였으니 얼마만인가? 60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내 앞에 와있었다.
그때는 한달에 한번꼴로 보성에 내려와 다음 한달 먹을 쌀과 반찬된장을 싸들고 기차를 타얗팼다. 때로는 김치국물이 흘러서 기차안에 김치냄새를 피워 혹시 여학생들 눈치를 봐야했지만 뭐 별 도리가 없었다. 낑낑거리며 집에서 보성역까지 또 광주역에서 내려서 자취집까지 쌀푸대와 김치통을 옮겨야했다. 어떻게 힙들게 그일을 했나 싶지만 그렇게 살았다…왜 집앞의 보성중에 보내지않고 낯설은 광주서중에 보냈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알수 없지만…참 딱한 노릇아닌가싶다. 보성중에 들어갔으면 힘든 고생을 광주에서 하지않아도 되니, 내가 또 다른 사람으로, 남의 눈치보지않는 더 대담하고 큰인물로 컸을 수도 있다 싶은데 한편으로는 참 안타깝기도 하고..그것이 나의 운명이려니 또 운명론, 운명탓을 하고 넘어간다.(광주유학생활에 겪는, 다른 애환이야기는 나의 블로그 ‘광주서중.일고시절’에서 더 볼수있다.)
광주에서 보성까지 달리는 시간을 짧아졋지만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어쩐지 서글펐다..사람들이 많이 보이지않고 그래서그런지 농촌이 쓸쓸해보였다.
기차안도 그때는 3인좌석이 마주보며 양쪽에 있었는데 지금은 2인석이 양쪽에 자리하고 열차진행방향으로 놓여있다.
터널을 지나면 석탄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지금은 아무 거리낑없이 굴을 지나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