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없는 사람 상팔자.=(제6회 상록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작)
오늘따라 손전화가 신나게 울린다.
우리 마님; 어디예요?
나; 3번 출구…
우리 마님; 아, 차 팔았다고 했지요 아유 잘 됐다, 오다가 케이크 하나 사오세요.
우리 마님은 나를 부려먹으면 그것도 돈을 쓰게 하는 일이면 신난다.
나는 제일 맛있다는 케이크 하나 사 들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우리동네 골목길을 휘젓고 걸어간다.
마음이 편해서일까 아무리 천천히 느리게 걷는다 해도 전철역에서 집까지 가는 시간은 금방 흘러간다.
오늘 사무실에서 집까지, 전철 타고 그리고 걸어서 1시간 정도 걸렸다.
손수 운전하며 퇴근할 때 보다 오히려 시간적으로는 덜 걸린 셈이다.
차가 막히는 경우와, 거기에 오며 가며 보는 재미를 더하거나 빼면 운전을 하지 않고 전철로 다니는 것은 분명 훌쩍 남는 장사 아닌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사무실을 나서면 나는 곧 전철역에 닿는다.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가장 비싼 차가 나를 위하여 준비되어 있다.
잘 훈련된 운전수가 제시간에 어김없이 몰고 들어온다.
전철 들어오는 시간이 맞지 않으면 기다리는 시간에 신문 판매대의 주간지를 훑어보면 그만이다.
연예인들에 대한 야한 선정적 제목을 훑어보는 것도 좋고, 선동적 정치기사의 속내를 짐작해보는 것도 좋다.
짧은 시간, 좁은 공간이지만 지하철역에서는 여러 군상들을 만나게 된다.
한가한 듯 바쁜 듯 저 많은 사람들은 어디서 모여드는 것이냐 저들은 어떤 인생을 살까 쓸데없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출근길에 바삐 뛰는 발걸음의 젊은이들을 보면 나는 곧 사회초년병 때로 돌아간다.
나는 그 때로 소환되어 그 옛날의 젊은 시절로 빠져들고 혼자 속으로 빙긋하며 웃는다.
이미 만원이 된 전철을 비집고 들어가야 할 때는 몸싸움을 해야 한다. 덜컥 난감하기도 하지만 내 몸을 흐름에 맡기고 그대로 따라가면 된다.
가끔 어쩌다 젊은 여성 가까이 서게 되면 나이를 잊는 행운이 덤으로 따라온다.
출퇴근 시간대에 지하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거의가 젊은이들이다.
나처럼 머리가 하얗게 빛 바래고 나이든 사람은 좀체 찾기 힘들다.
배꼽을 내놓는 이도 있고 허리띠를 엉덩이에 살짝 걸친 이도 있다.
가슴을 보여주는 건지 감추는 건지 아니면 나 어때요 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질문하는 이들도 있다.
보거나 말거나 아니 보란듯이 착 달라붙어 있는 커플들도 있다.
무슨 고민이 있는지 넥타이를 풀어 늘어뜨린 채 담담하게 걷는 중년들도 있다.
손수 운전을 하였다면 결코 만날 수 없는 그림들이다.
붐비지 않는 시간대에 전철을 타면 내 앞에 앉아있는 젊은이들의 자세 변화를 보는 것도 재미있다.
아예 잠을 청하는 눈감는 배짱이도 있고, 어찌해야 하나 속내를 감추고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모르는 순진이의 표정을 보는 것도 재미있다.
그러나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해주는 녀석을 만날 때는 오히려 내가 민망해진다.
서둘러 강하게 주저앉혀보지만 막무가내 도망가는 놈은 어쩔 수 없다.
이제는 이력이 나서 내가 먼저 멀리 떨어져 미리 그 민망한 순간을 모면한다.
그것도 재미있다.
전철을 기다리면서, 전철을 바꿔 타려고 걸어가면서, 또는 마을버스를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잠시 잊는다.
때로는 팔자에 없는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사는 대로 생각할까, 생각하는 대로 살까?’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지 못하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보이는 것들이 다르고 또 흐르는 속도가 다르니 생각하는 방향과 또 생각하는 속도도 다를 것이다.
생각하는 속도가 승용차의 속도에서 사람의 걷는 속도로 바뀌는 것일까
생각하는 관점이 직립인간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일까
걸어가는 속도에서 사물을 보면 더 잘 보일까
요즈음 해가 많이 짧아졌다.
퇴근길 전철에서 내리면 벌써 어둠이 찾아와 있다.
집까지 걸어가는 골목에는 여기저기 여러 좌판들이 옹기종기 들어선다.
마치 우리의 재래시장 같은 소박하면서 푸근한 분위기를 만나게 된다.
그 좌판들 속에 1인 붕어빵 생산공장 손수레차가 하나 있다.
알맞게 어둠이 깔린 데다가 마침 붕어빵 굽는 냄새가 야릇하게 구수하다.
나를 마구잡이로 옛날로 끌어드린다.
‘어떻게 해요?’
‘3 마리에 천원입니다.’
전혀 장사꾼 같지 않은, 은퇴나이는 아니고 아마 명퇴한 듯한 중년사장님께서 밋밋하게 대답한다.
천 원 한 장을 주니 붕어빵 4 개를 준다.
하나를 더 넣어 주면서, 지난 번에 헛 탕을 치셨잖아요 한다.
붕어빵 사장님의 손익계산은 내가 배운 것과는 달리, 풋풋한 인정을 더해서 계산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붕어빵 4 마리를 낚아서 신나게 집으로 달려간다.
‘어, 웬 일이에요?’
우리 마님은 이상한 눈으로 나의 위 아래를 훑어본다.
하던 짓을 안하고 갑자기 아니 하던 짓을 해오니 순간 당황스러웠던 것 그러나 곧 잠깐 깜빡이더니 싫지는 않은 모양이다.
나는 이제껏 퇴근하면서 무엇 하나 사 들고 간 기억이 없다.
손수 운전하며 퇴근하니 어디 들리기가 쉽지 않다는 형편을 탓하면서 버티고 넘겨왔었다.
그 동안 뭔가에 쫓기고 괜스레 바쁘기만 한 도시생활에서 정작 필요한 기본꺼리들을 잃고 또 잊고 살아왔다는 반증이었다.
한낱 기계에 불과한 자동차의 편리함에, 인간인 나를 너무 무시하고 홀대하며 살아왔다는 것 아닐까
다음 어느 날에는 잊혀진 순대를 사서 우리집까지 한번 뛰어가 보려고 한다.
‘저 양반 왜 저러지, 미쳤나 봐’
‘그럴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뭐 또 그러면 어때?’
그 날은 몹시 추운 날이면 더 좋겠다.
차 없이 살아가는 불편함보다는 잃어버렸던 것들을 되찾고 오히려 좋은 것들을 더 많이 얻게 되었으니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누가 나에게 이런 호사를 주는가.
또 다른 부수입과 즐거움은 또 있다.
금요일이거나 비가 오는 날이면 슬쩍 일탈의 유혹을 받기도 한다.
영원한 비주류인 나도 그럴 때는 못이기는 척 그 유혹을 받아드린다.
쏘주 3잔이면 나는 이미 무아지경속에 들어가 있다.
전철역에서 집까지 걸어 들어가는 길은 나의 절대적 자유공간이 되고 나는 그곳에서 절대적 자유시간을 갖는다.
그 골목길은 나를 20대의 대학생이거나 30대의 사회초년병으로 되돌려 세워놓는다.
‘보리밭’과 ‘고래사냥’을 소환하고 만다.
목놓아 부르지는 못해도 발걸음은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 마음은 흥겹게 휘파람 불며 보리밭을 지나고 있다.
벌써 3등 완행열차를 타고 동해바다까지 간다. 기어이 신화 속의 예쁜 고래 한 마리를 잡는다.
나는 富者이며 나는 자유인이다.
나는 더 부러울 것이 없고, 나는 이제 두려울 것이 없다.
차 없이 살아보니, 차 없는 사람이 상팔자였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