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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바그너: 3막 전주곡 & 부드럽고 그윽하게 [트리스탄과 이졸데]

햄릿.데미안.조르바 2018. 12. 28. 22:10

 바그너: 3막 전주곡 & 부드럽고 그윽하게 [트리스탄과 이졸데]

Richard Wagner: Act.3: Prelude & Man hoert einen Hirtenreigen 3막 전주곡 & 양치기의 피리소리 [Tristan und Isolde] "Mild und leise wie er lächelt" (부드럽고 그윽하게 미소 지으며: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 Waltraud Meier (Soprano), Orchester der Bayreuther Festspiele / Daniel Barenboim (Cond.)

        3막 전주곡... 사랑의 격정이 휩쓸고 지나간 허허로움에, 아직도 불협과 미완의 코드로 끈적대는 욕망, 갈등, 고뇌. 운명. 그것은 베젠동크 저택의 온실에 갇혀 먼 남국의 고향을 숨죽여 그리워하는, 한 그루 초목과도 같은 '식물적 동경'이다. 바다 언덕에선 양치기 소년이 피리를 불며, 쿠르베날의 부탁으로 먼 바다에 배가 오는지 지켜보고 있다. 꿈결에서 들려오는 듯한 양치기의 잉글리시 호른 소리에, 트리스탄이 비몽사몽 의식을 회복하고 쿠르베날에게 자신이 아직 살아있음을 탄식하며 이졸데를 찾는다. 반색하는 쿠르베날. 주인님, 깨어나셨군요. 저번 때 최후진술하고나서 멜롯의 칼에 뛰어들었던 것, 기억하세요? 다행히 돌아가시진 않으셨지만, 치명상입니다. 제가 구출해서 주인님의 고향 집으로 모신 겁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지금 이졸데 마님이 주인님을 치료할 약초를 구해서, 배를 타고 바삐 오고 계십니다. 주인님도 아시다시피, 이졸데 마님은 중국의 신농선생 버금가는 약초의 달인 아니신가요. 이졸데가 오고있다는 소리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트리스탄. 거의 착란적으로 그 기쁨을 노래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중환자에게 절대안정은 필수이거늘, 비틀거리며 붕대까지 찢어버린 트리스탄은 계속되는 출혈과 흥분상태로, 잠시후 이졸데가 가쁜 숨 몰아쉬며 도착했음에도, 그녀의 품에 안겨 숨져버린다. 한편 밀회현장 목격후, 브랑게네가 뒤늦게 털어놓은 미약에 숨겨진 사연을 듣게 된 마르케 왕이 트리스탄에 대한 후계자로서의 신뢰를 회복해주고 그와 이졸데를 부부로 맺어주려고, 이졸데보다 한 발 늦게 트리스탄의 고향집을 찾아오지만, 넋이 나간 이졸데는 트리스탄의 시신을 끌어안은 채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쿠르베날 역시 트리스탄의 죽음과 마르케 왕에 분노해서, 그들을 공격하여 멜롯을 죽이고 자신도 죽어버린다. 피로 얼룩진 무대에서, 별빛에 싸여 밤하늘로 오르는 트리스탄의 영혼을 향하여 부르는, 이졸데의 '사랑의 죽음'. 그것은 슬픔의 절규가 아니라, 밤과 죽음, 어둠과 적막을 사랑의 안식처로 여겼던 그들의 '마지막 연가'였으며, 동시에 사랑의 '법열'에 전율하며, 또 다른 '변용'(變容. transformation)을 이룬 기쁨의 '열반송'이었다.


        트리스탄, 이졸데, 그리고 쿠르베날... 내가 사랑했던 세 사람이 그렇게 모두 한 자리에서 떠나갔소. 살아남은 마르케 왕과 나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몇일을 보내다가, 정신이 좀 들어 장례를 치뤘지. 그 시절엔 왕족의 장례를 치룰 때면 저렇게 조각배에 다비목을 쌓아놓고, 그 위에 시신을 눕혔다오. 그래서 썰물때를 기다렸다가 배를 바다로 띄워 보내고, 불화살을 쏴서...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함께 나란이 눕힌 배를, 나 혼자 울며불며 꽃단장을 했지. 신혼부부 웨딩 카처럼 이쁘게. 얼굴에 정성스레 화장도 해줬는데.. 두 사람 얼굴,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 진정 화사하고 행복한 얼굴입디다. 불화살은 마르케 왕이 직접 쐈는데, 왕의 얼굴도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소. 몇백년 세월이 금방 지나고, 조선땅 진천 장날에 국밥집에서 한 술 뜨는데, 어떤 굴비장수가 술이 잔뜩 취해서 그럽디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아가페를 완성했다면,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서로의 품에 안겨서 에로스를 완성했다고. 멀쩡해 보이는 양반이... 고거이 시방 뭔 소리여?? 담번 장날엔 이쁘게 차려입고 나갔다가, 그 굴비장수 또 만나면 막걸리 한 잔 사주고 물어봐야지. 혹시 알어? 굴비장수 양반이 내가 브랑게네인 줄 알아보고 반색하면, 그날밤 나도 실로 몇세기만에, 주막집 뒷방에서 살 떨리는 에로스 한 껀 완성해 보려는지?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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