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라바야 공항을 이륙하고 1 시간 여 비행,
자카르타 공항에 도착하였다.
벌써 어둠이 깔리고 자카르타 시내로 들어오는 도로는 주차장.
어디를 가나 대도시의 교통난은 풀리지 않은 숙제.
그래도 밤이 시작되는 자카르타는 아름다웠다.
대낮에는 무덥고 느릿하고 건물들은 무뚝뚝하기만 한데,
밤은 도시의 밋밋함을 감추는 화장인가,
시골색시처럼 수줍게 눈부시고 있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려는데, 뭣인가 허전하였다.
이번에는 무엇일까요?
아뿔4, 자켓을 수라바야 호텔 옷장에 놔두고 몸만 빠져 나온 것이었다.
현지에서 물품검수하러 다니는데 자켓이 거추장스러워 남방차림으로 움직였고,
비행기 시각에 맞추느라 주섬주섬 이것저것 한꺼번에 짐가방에 넣어 호텔을 빠져 나왔는데
옷장 속에 자켓을 홀로 남겨두고 온 것이었다.
크게 값나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나의 땀과 수택이 묻은 것인데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인도네시아 거래선은 또 바빠지기 시작하였다.
직원들에게 전화하여 확인 또 확인시키고 있었다.
조금 지나니 호텔에서 보관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일단 자카르타로 올려 보내라 할까 하다가 호텔에 그냥 보관하고 있도록 하였다.
곧 다시 한번 더 가야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쯤되면 정신건강에 좋은 것이야 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을까?
지난 97년이 마지막이었으니깐, 7년 만에 잊혀진 애인을 만나는 것이니,
홀라당 정신이 나간 것일까?
사실 오랜만에 만나는 인도네시아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90년초에 시장을 개척하여 성가를 올리다가 아이엠에프 외환위기로 거래선이 끊겼었는데,
이번에 다시 보니 엄청 달라져 있었다. 외견상으로는.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느 순간, 얼마 동안 보지 않다가 다시 보면 몰라보게 달라져 있는 것처럼, 자카르타는 코 흘리개 계집애에서 이제 성숙한 여인이 되어 있었다.
이제 조금 걱정이 된다.
아무리 정신건강에 좋다고 둘러대도,
인도네시아의 성숙한 여인이 건망 자주하는 하얀머리 한국아자씨를 좋아할 리 없잖은가?
우리집의 '그냥'씨는 그거 잘 되었다,
이제부터는 자기를 데리고 출장다니라고 하는데 이일을 어찌 할 것인가,
이거야말로 큰 일 아닌가?
아니, 이거야말로 잘된 일이고 신나는 일 아닐까?
다만, 남들처럼 유럽이나 미국등 선진국이 아닌 후진국 농촌지역 여행이어서 '그냥'이 견뎌낼까?
'엄마아, 여기 종점인데..............'
버스가 다니지 않으니 늦었지만 엄마가 차를 갖고 와서 데려가 달라는 우리집 큰돼지놈 고3때의 전화,
90년초 분당에 살 때인데, 서울로 학원과외 끝나고 집으로 오는 버스 속에서 골아 떨어져 왕왕 종점까지 가버리고,
늦은 시각이라 더이상 버스는 없고, 할 수 없이 어둠속 종점까지 모시러 가야했다.
일주일에 한두번은 한밤중에 우리집은 시끄러웠었다.
'마누라님,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는데...... 나좀 데리고 가라....................' 할 날이 멀지 않았다.
난 우리 큰 돼지놈의 무사태평함이 좋다. 무슨 일에 크게 괘념하지 않는다.
애비처럼 악착스럽게 욕심부리지 않는다.
내가 지금 그 애처럼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나쁘지 않은 것인데,
나의 정신건강에 좋은 것이고, 이제야 한쪽에 너무 치우쳐있던 마음의 중심추가 균형점을 찾은 것은 아닐까?
사람이 종종 잊어버리고 잃어버리고 사는 것이지, 기계처럼 빈틈없이 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5학년 홧팅,
건망 홧탕,
박통 팔팔 홧팅!
출처 : 68 기러기
글쓴이 : 박동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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